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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19 14:42
단편소설 서기골 로반(3) 김정애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017  

 

어제 철규는 이곳생활을 소개하면서 7시전에 반드시 식사를 끝내고 밖에 나서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만약 그 시간이 지나서도 집안에 붙어있는 날에는 한바탕 하늘땅이 맞붙는 난리가 일어나니 그것만을 꼭 지켜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었다. 그러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소동이 일면 종일 기분이 없을 테니 웬만하면 로반의 비위를 맞추자고 말했다.

 

순옥은 밥을 짓고 일꾼들은 소, , 오리의 사료를 주고 물을 긷고 마당정리며 개밥을 주었다. 식사 후에는 각자 장작을 패야 한다. 오후에는 로반이 수시로 작업량을 체크하며 잔소리를 하기에 눈치 빠른 철규는 누구도 욕을 듣지 않도록 장작무지의 크기를 비슷하게 조절하곤 했다.

설을 앞둔 서기골은 매일같이 장작을 실어 내리는 트라지(경운기)의 동음으로 퉁탕거렸다.

며칠이 지나 로반이 떠나갔다. 그는 보름동안 설 명절을 쇠러 간다면서 순옥에게 쌀과 된장, 김치가 있는 곳을 확인해 주면서 창고 한쪽에 놓인 나무궤짝은 절대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로반이 떠난 서기골은 금세 명절분위기가 되었다. 남자들은 소 사료로 쌓아놓은 옥수수단 밑에서 트라지(경운기)운전사들이 몰래 날라다 준 술통을 꺼내어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 토끼장에 나간 철규가 제일 큰 수토끼를 죽여 갖고 들어와 손질하기 시작했고 상길이는 오리장에서 날개가 얼어붙은 종자오리를 안고 들어왔다.

 

-로반이 없는 세상 얼씨구 좋구나-

상길의 이 빠진 입에서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새어나온다.

그물에 걸린 깨 까치도 안주 감으로 기름에 튀겨졌다. 눈부신 아침해살이 서산에 붉은 노을이 될 때까지 종일 서기골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새 닭은 몇 마리나 먹었나? 로반이 오면 한바탕 하늘땅이 맞붙을 텐데

족제비가 물어갔다면 될 걸 뭐, 걱정도 팔자다.”

땅크 중대 중대장 상길이가 불안해하자 철규가 별 안할 걱정을 한다며 퉁을 주었다.

 

듣기 싫어서 그러지. 족제비가 물어갔다면 로반이 그걸 곧이곧대로 믿겠어? 우리가 잡아먹었다고 길길이 날뛸 걸 생각하면 그새 맛있게 먹었던 살이 한꺼번에 쪽 빠질게다

형이요. 그건 내게 맡겨요. 간나 에미나새끼 정 쨍쨍거리면 멀찍이 나무에다 묶어버리지 뭐

, 농담이라도 그런 말마라. 지랄이고 뭐고 해도 여기가 당 서기네 산창이니까 우리가 여태 안전하게 있은 게 아니야. 오늘은 먹다 남은 오리뼈다귈 한 번 더 끓여먹고 말자

그래요. 제가 맛있는 비지장을 끓여 드릴게요. 오늘은 그걸로 먹어요.”

비지장? 소가 먹는 대두박을 끓여 먹잔 말이요? 우리가 소요?”

아이참. 대두박도 기름에 배추 볶다가 버무려 끓이면 먹을 만해요” 

 

아따, 중국 땅에서 별소릴 다 듣네. 우린 사람이요. 남들은 명절이라고 온갖 진주성찬에 배를 두드리고 있을 텐데 고작 오리 몇 마리 먹었기로 그리 떨게 뭐가 있소? 아직 남아 있는 게 삼백 마리가 넘는데. 우리가 찰떡을 먹었소? 돼지고길 먹었소? , 나 참

, 난 로반이 숨넘어가는 생매소리를 지를 때마다 심장이 멎고 살점이 떨어지는 것 같다. 먹을 게 흔한 중국 땅에서 두부나 달걀 때문에 저리 지랄난리 치는 건 여태껏 살다가 처음 본다. 그렇지만......”

 

상길은 두리번대는 철규의 꽁무니에 붙어 다니며 이젠 더는 잡지 말자고 사정사정 말린다.

토끼우리에 가서도 이젠 그만, 닭장에서도, 오리장에서도 철규의 팔소매를 부여잡고 우리 이러다 여기서 쫓겨난다며 울상을 지었다. 상길의 성화에 못 이겨 한참 돼지우리 앞에서 머뭇거리던 철규가 홱 돌아서며 버럭 역정을 낸다.

 

그럼 뭘 먹겠소. 숨어있는 몸이어도 허나 새나 설인데 뭐든 먹어야 할 것 아니요. 그냥 배추김치에 생된장만 찍어먹잔 말이요?”

, 그리 먹고라도 좀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 쌀밥이 있지 않니. 제발 좀 참자. 로반도 사람인데 돌아올 때 명절 뒤끝에 남은 음식을 좀 걷어다주겠지

형은 그래서 평생 안 되는 게요. 온갖 쌍일을 다하고도 제 것도 못 찾아먹으니 참. 형은 그럼 보기만 하오. 고기도 나만 먹고 욕도 혼자서 먹고 쫓겨나도 내가 쫓겨 날 테니까, 내가 여기를 관리하는 사람이니 책임도 내가 지면 될 거 아니오.”

 

순옥이도 날이 갈수록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일꾼들의 밥을 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잡아먹은 닭과 오리만도 여러 마린데 그걸 다 족제비에게 뒤집어씌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침마다 걷어 들이는 달걀도 알알이 세어보고 많다 작다 예민하게 굴던 로반이고 보면 벌써 머리칼이 곤두선다. 며칠 뒤면 곧 설명절이 끝나고 로반이 올라올 터인데.......

상황이 그런데도 무얼 잡을까 집주변을 빙빙 돌던 철규가 순옥이를 따라 창고로 들어섰다.

 

오늘은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열어볼까?”

철규는 덕만이까지 불러들여 나무함을 이리저리 살핀다. 궤짝엔 어른 주먹만큼 큼직한 열쇠덩이가 무겁게 매달려 있다. 처음엔 열쇠를 열지 않고 널짝을 뜯어낼 방법을 찾던 철규는 차라리 열쇠를 여는 게 좋겠다며 쇠줄을 찾았다. 가느다란 쇠줄을 구부려 이리저리 돌리는데 열쇠가 찰칵 열렸다. 나무궤짝에는 일인용으로 포장한 개고기봉지가 수북이 담겨져 있었다.

 

어랍쇼, 이게 웬 횡재요. 형님, 이거면 됐어요. 로반이 올 때까지 멋지게 명절을 쇱시다.”

철규가 너무 반가워 떠들썩하게 소리치는데 곁에 섰던 순옥이는 그만 울상이 됐다.

로반이 가면서 이 궤짝은 절대로 열지 말라고 저에게 신신당부했어요.”

, 아주마인 모른다면 끝이오. 이 철규가 다 꺼내 먹었다고 내게 다 미시우.”

철규는 신명이 난 얼굴로 포장한 개고기봉투를 다섯 개나 안고 휭 나간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철규는 또 덕만의 얼굴을 쳐다본다.

 

형님, 어제 좋았지. 우리 또 먹을까?”

글쎄.......에이 그만 둬, 철규는 먹고 싶어서 그랬다 쳐도 나이가 이상인 내가 있으면서 말리지 않고 같이 풍을 쳤다면 로반이 뭐라고 하겠어?”

뭐라고 하긴? 아무리 말려도 철규 이놈은 마이동풍이고, 형님의 말은 밑구녕으로도 듣지 않는 놈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면 그만 아니요. 그런 배짱도 없이 여기선 못 산다우.”

 

저녁에도 다음날도 개고기추렴은 계속되었다. 처음에 열고 잠그던 열쇠는 아예 궤짝위에 덩그러니 빼놓은 채다. 처음 다섯 개로 시작된 개고기가 나중엔 일곱 개, 여덟 개로 늘더니 약간 주저하던 행동거지마저 아무래도 욕을 먹을 걸 고길 다 먹고 먹는다는 심사로 바뀌어 당당해졌다.

산이 통째로 찢어지는 괴성이 터진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다. 그날 아침도 개고기를 끓여놓고 이제 로반이 오면 국물도 없다며 이때라도 배불리 먹자고 한상 펼쳐놓은 참이었다.

아직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로반이 이삼일 더 있어야 올 것이라 여겼던 서기골에 때 아닌 폭풍이 불어 닥쳤다. 약속된 날짜를 앞당겨 로반이 돌아오면서 상황이 난감하게 되었다.

로반은 남편의 건강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돌아왔다지만 산창을 돌아보던 서기는 일꾼들에게 요즘은 설명절에 임한 공안의 따스포 기간이어서 자칫 언제 탈북자를 찾아 이 골짜기를 칠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런 시동생의 말에 로반은 공안에서 제때에 피하도록 다 연락이 오게 돼 있어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 으스대며 창고로 향했다. 그러다가 뚜껑이 열린 채 비어있는 개고기궤짝을 발견하고는 고래고래 숨넘어가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마야, 여기 개고기 다 어디 갔어? 누가 처먹었어? ? 어느 귀신이 다 해치운 거야?”

서기 일행에게 인사하려나오려던 탈북자들은 로반의 고함소리에 급해 맞아 개울가로 산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다만 철규만이 무덤덤한 얼굴로 로반 곁에 다가갔다.

아이고, 날도둑이 들었네. 이걸 어쩜 좋아. 이 많은걸 누가 다 처먹었냐고? 누가?”

날카로운 로반의 고함에 시댁식구들도 제발 그만하라며 그녀의 등을 다독거렸다. 서기를 따라 조용한 산속에 여가를 즐기러 왔던 친구들도 딱한 표정으로 몸 둘 바를 모르고 서성댄다.

 

아주머니, 내가 더 많이 사드릴 테니 이젠 그만하세요. 여기 있은 사람들이 좀 먹었겠지요.”

서기가 개고기 걱정은 말라며 몇 번이고 달래서야 로반의 기세는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일꾼들이 피해있을 숲 쪽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끝내 일꾼들은 인사는커녕 숲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서기일행이 탄 차가 멀어질 때에야 주섬주섬 막으로 들어섰다.

 

이봐. 사람새끼들이 얌체가 있어야지. 그 비싼 걸 다 먹어치우면 어쩌자는 거야? 배터지게 먹어치우면 그만이다 이거야, ? 남편의 몸보신용인데 그걸 싹 다 먹어치워?”

로반이 송곳처럼 뾰족한 눈을 해가지고 어느 새 달려나와 일꾼들을 쏘아본다. 철규가 머리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이 말리는 걸 자기가 우겨서 다 꺼내 먹었다며 변명하다가 번쩍 고개를 쳐든다.

 

먹을 것이 흔해빠진 중국에서 개고기 몇 봉지 먹었기로 사람을 잡듯이 하는 건 또 뭐요?”

뭐야? 그게 얼마짜린지 알기나 해? 도적개가 코를 세운다고 뭘 잘했다고 택을 쳐들어?”

이윽고 고성에 반말이 뒤섞이더니 급기야 로반이 부엌에 내려가 밥주걱을 찾아들고 나온다.

야 이 새끼야 너 뭘 잘했다고 대답질이야? 남의 걸 도둑질해 먹고도 그렇게 당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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