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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3 00:44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2)윤양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583  

사람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굶어죽고 얼어 죽어갔다. 거리와 마을의 쓰레기장과 역전들에 주인 없는 시체들이 널리기 시작했다. 질겁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기가 아니면 가족 누군가가 저 자리에 시체로 누워있을 수 있다는 위구를 몸서리치게 느끼며 적자생존을 위한 필사의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돈을 위한 살인, 절도, 사기, 강도행위가 난무했다. 일제 강점기에 살 길을 찾아 떠나던 북간도행이 해방 50년이 되는 때 다시 이어졌다.

 

그 때는 그래도 남편의 등과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의 머리에 괴나리봇짐이 있었고 고향을 떠나 이국땅으로 가는 설움에 눈물을 지으며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넜다. 그러나 지금은 살길을 찾아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는 것 자체가 배신이라는 대죄로 총구를 피해야 했다. 구사일생으로 강을 건넌 사람들은 이국땅에서 짐승처럼 이리 팔리고 저리 팔렸다고 한다.

엄마 나 배고프단 말 안할게 가지 마하는 어린 자식의 말을 뒤로 남기고 떠나온 여인들은 성을 빼앗기고 짐승처럼 팔려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시체가 되어 강물에 떠내려 간 이인들 얼마나 많으랴,

 

이 나라 역사와 함께 흐른 유구한 강이여

너는 또다시 눈물의 강, 수난의 강으로 그 이름 흐려지노니

, 강이여 백성의 눈물을 실은 강이여 대답해 다오

조선아 너의 앞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그렇지만 나는 그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그냥 조국이 겪는 한때 시련으로만 간주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 된지 이 년이 지났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이 년이었다. 내가 남편과 함께 죽음을 딛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 덕분이었다.

쌀이 나올 데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머니는 쌀독 밑바닥을 긁어서라도 쌀을 주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엄마는 딸의 결혼을 결사반대하지 못한 것을 다시 후회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행동이 정말 싫었다. 내가 가지 않으니 어머니가 직접 쌀을 구해가지고 왔는데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사랑에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가 가지고 오는 쌀은 지배인인 아버지의 공장 경리과에서 남 몰래 가져다주는 두 명분의 쌀을 끼니를 건너며 절약해서 주는 쌀이었다. 언제까지 철없이 부모님 몫을 빼앗아 제 입에 넣을 수 없었지만 혼자서는 똥오줌도 건사하지 못하는 남편을 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만은 고난의 행군의 비정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고 싶었던 나는 몰래 옷가지들을 팔아 예전처럼 밥상에 반찬 가지 수를 줄이지 않았다.

 

 이 울타리 안의 평온은 남편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광장을 그리워하게 하였고 어느 날엔가는 아이를 입양하기보다 내가 낳는 것이 어떻겠냐는 불륜을 부추기기까지 이르렀다. 남편이 힘겹게 꺼낸 이 말은 부모가 다 남이기보다 엄마라도 제 어미이기를 바란 것이겠지만 나는 내가 암캐냐고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밖에 나와 턱을 괴고 앉아 그 말의 뒤를 이어봤다. 내가 여자이고 싶을 때가 많을 거라는 측은한 배려가 묻어있는 것 같기도 해 그 날 저녁 잠자리에서 여보 화를 내어 미안해요 하지만 남편 있는 여자보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잖아요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남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어떤 추잡스러운 짓거리를 걸쳐야 하는 지를 생각해 봤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남편에게 오히려 더 치욕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편도 내가 하지 않은 뒷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는지 더는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식량난은 더 심해졌다. 이대로라면 우리라고 가마니에 덮인 길거리 죽음이나 역전의 죽음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을 태운 삼륜차를 밀고 울타리 문을 나선 나는 늘 가곤 하던 역전 광장으로 갔다. 삶을 즐기는 사람들로 벅적대던 광장은 폐허처럼 썰렁했다. 남편은 낯선 광장에서 어젯날의 환희를 찾고 있는 듯 했으나 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삼륜자전거를 역전 방향으로 돌렸다.

 

 역전은 전기가 끊겨 들어온 기차가 나가지 못하고 들어 와야 할 기차가 들어오지 않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기차 시간을 알아보려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비닐 박막을 깔고 자고 있는 사람들, 주패(카드)와 장기를 두고 있는 사람들. 술을 먹고 까불어대다 매를 맞고 있는 젊은 녀석들, 두부 밥과 인조고기 밥을 파느라고 분주히 오가고 있는 아주머니들, 그들 속에는 군인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눈에 띤 것은 밥곽(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거지들의 측은한 모습과 가마니에 덮여 있는 주인 없는 시체들이었다.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해쓱하게 질렸다. 나는 내친걸음이라 이번에는 장마당으로 삼륜자전거를 밀었다. 생존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마당은 사람들로 붐비고 손님을 찾는 외침소리로 아수라장이었다. 목청으로 승부를 가르고 있는 경기장인 듯 자기 상품을 사라고 외쳐대는 소리, 흥정이 맞지 않아 다투는 소리, 싸우는 소리, 도적놈 잡으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 30대의 아주머니에게 매를 맞고 있는 구척의 50대 거지남자, 음식 바구니를 안고 단속원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여인들...

 

그 날 저녁, 남편은 이것이 조국의 현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가마니에 덮여진 시체와 거지들을 보는 것이었다고 말했을 때 나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의 행군에 대해 이러저러 이야기했다. 남편은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마도 천리마속도로 세계를 놀라게 하던 영웅의 나라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을 찾아보는 것 같았고 죽음이 우리를 비켜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절감한 듯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남편은 결혼식 때 부대에서 내주었던 텔레비전을 팔아 그 밑천으로 장사하겠다는 나의 의사를 침묵으로 승인했던 것 같다. 그 침묵의 승인은 연약한 여자에게 매달려 살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고통의 침묵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나는 장마당으로 나갔다. 남편은 괜찮겠냐고 물었다. 남편의 걱정은 매 대를 살 돈이 없어 단속원들의(시장에서는 때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예의도 인정도 없이 막돼먹어 최대한 천한 별명으로 모욕주기 위해 만들어진 별명)오만함은 도를 넘어 장에 나온 여성들에게 뇌물 대신 성을 요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자들에게 쫓겨 다녀야 하는 길바닥 또아리 장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남편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남편을 홀로 두고 나가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받고 강정을 담은 비닐소래를 안고 집을 나섰다

 

한 여름에 눈만 내놓고 온통 얼굴을 가린 나의 모습을 오가는 사람들이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며칠 전에 봐두었던 장마당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 쯤 해서 자리를 잡았다. 이 길은 지금은 장마당 길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우리 집과 시내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내가 걸음마를 뗄 때 자주 넘어져 어머니를 속상하게 했던 길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머리를 숙인 채 사줄 사람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 이 강정 파는 거요?” 하고 물으면 나는 그냥 머리를 숙인 채 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내가 보여서는 안 되는 흉측스러운 허물 때문에 얼굴을 가렸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얼굴을 가린 수건을 벗어 보일 용기도 없었다.

 

해가 있던 자리에 어둠이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이면 강정이 가엾은지 내가 가엾은지 모를 지경이다. 벌지 못하고 먹는 밥이 돈을 씹는 것 같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문제는 숨바꼭질을 하듯 하는 너울을 빨리 벗어 버리는 것인데 내게는 그것이 계급사회에서 어떤 주의에서 다른 주의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텔레비전을 판돈마저 들창날판인 어느 날 너울을 벗어버릴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에게 인간이 가장 나쁜 짓 중에서 남을 속이고 어떤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나로서는 너무 이른 전향이었으나 실은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너울 속에 숨어 강정 하나만이라도 누가 사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강정 소래가 누군가의 발길에 채여 나뒹굴고 뒤이어 길바닥에서 팔지 말라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의 임자가 누군가를 따져 볼 새도 없이 땅에 널려진 강정부터 줍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버려진 것이 강정이 아니라 돈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정을 줍기에 정신이 없는데 내 손보다 먼저 다른 손이 강정을 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손위에 내손을 덮었다. 나는 내 손에 덮인 손의 임자를 향해 머리를 번쩍 들었다. 항간에서 꽃 제비라 불리는 열 살 남짓한 때에 찌들고 햇볕에 타 흑인 같은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의 시선은 마치 땅에 떨어진 것인데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느냐는 당돌함이었다. 나는 소년의 부릅뜬 시선에 당황하여 잠깐 주춤했다. 그러자 소년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강정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나는 소년이 짓고 있는 만족한 미소를 보면서 오늘을 사는 방식을 읽었다.

 

 ‘고맙다 애야.’

다음 날 나는 위선의 너울을 벗어 던졌다. 장마당의 뭇 여인들처럼 머리를 번쩍 쳐들고 누구보다 높은 목소리로 외쳐댔다.

강정 사시오. 꿀 강정입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여인이 꿀 강정이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천연스럽게 웃으며 꿀 강정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여인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강정을 20개 사주었다. 나는 너무 고마워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이 날 친구들과 그들의 제자들 그 애들의 부모들이 앞 다투어 사주어 해가 중천임에도 강정소래를 비웠다. 그들은 떠날 때 일옥아 많이 팔아” “선생님 많이 파십시오.” 라고 사심 없이 응원해 주었다. 이런 날 돈 주머니가 불룩해서 퇴근길에 오를 때면 기쁨이 하늘에 닿아 온갖 시름이 다 달아났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길거리장사가 콩나물, 야채 장사에 이어 밑천이 많이 드는 순대장사로 이어졌다. 그건 전적으로 나를 찾아 장마당을 두 번이나 돌았다며 내 곁에 웃으며 앉아주는 이웃들과 학부모 덕분이었다. 이 인정의 유대도 언제인가는 끝나는 날이 있겠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나도 장마당 매상의 묘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타산에서였다. 내가 택한 순대장사는 남편에게 고기국물이라도 대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힘겨운 것은 다른 장사보다 몇 곱절이었다. 순대가 팔리지 않아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다음 날 팔 순대준비 때문에 장밤 새우고 장마당으로 나갔다. 어떤 날은 오가는 사람하나 없는 늦은 밤거리를 혼자 지키다가 남은 순대를 가지고 들어가면 남편은 많지 않은 걸 불쌍한 애들에게 주고 올 걸 그랬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애들이 가깝게 없었다고 말하지만 설사 있었다 해도 줄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야박한 장마당 인심의 모범생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나의 하루는 개 쫓기듯 때뚜들에게 쫓기는 고달픈 하루였다. 때뚜들의 발짓에 음식 소래가 뒤집어지고 땅바닥에 널려진 순대를 마구 짓밟을 때면 순대 썰던 칼로 그 놈의 배를 콱 찌르고도 싶었다. 고마운 것은 내가 곁에 없어도 말없이 견뎌주는 남편이었다. 힘들 때면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여보 너무 힘들어하는 대신여보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결혼 당시 당과 남편에게 다진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모든 걸 참고 견뎌왔다.

 

어느 날 남편이 순대 감을 준비해주면 속을 넣는 건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데 그 날 저녁 집에 들어가니 남편이 온 몸에 순대 속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넘어져있었다. 나는 여보하고 기겁해서 부르며 그를 안아 일으켰다. 남편은 격해지는 마음을 참을 때 그러하듯 입과 눈을 일그러뜨렸다. 사연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순대 속을 넣다가 부주의로 침대에서 떨어지며 순대 속을 담은 비닐 소래를 엎질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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