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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3 00:53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3)윤양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678  

그리고 물개처럼 하반신을 끌며 쏟은 순대 속을 모으다가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의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눕힌 다음 집안을 거두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인생이 불쌍하여 흘리는 눈물이었다. 집안을 다 거둔 다음 그이 곁에 앉았으나 위로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곁에 누운 나는 오랜 침묵을 조용히 밀어내며 여보 낮에 그렇게 되었을 때 무슨 생각 하였어요?” 하고 묻자 그인 엉뚱하게 어렸을 때 친구들과 뛰놀던 생각과 즐거웠던 군사복무나날을 생각했다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내가 곁에 없이는 어떤 일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나날 속에 우리가 결혼 한지 4년이 되는 해 봄이 왔다.

 

 겨우내 웅크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초목이 싱그러운 봄 냄새를 풍기자 사람들은 활기를 느꼈지만 누구보다 봄은 역전과 쓰레기장에서 겨울을 이겨낸 꽃 제비들에게는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그들의 때에 찌들고 연기에 끄슬린 얼굴에 핀 환한 미소와 누더기팔소매자락을 활기차게 내젖는 모습은 그들처럼 삶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사람도 없는 듯 했다. 처녀의 봄이라고 불리는 이 계절이면 나도 들뜨는 마음이 되어 넘어지면 아프다는 것도 잊고 뛰어다니는 망아지 같은 애들을 보며 나도 결혼해 애를 낳았으면 이젠 저 만큼 컸겠구나.’ 하고 멍히 바라보았다.

 

 남편은 봄이 짙어갈수록 수심이 깊어가더니 어느 날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새 없이 장마당이 없는 농촌보다 여기가 살아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그럼 나는 있고 자기만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나는 그의 침대에 무릎을 꿇고 내가 잘못 한 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자 남편은 또 남편대로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나를 야속해 하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의 고향 행에 동의하고 말았다.

 

3

시어머니는 결혼식 때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직은 환갑을 멀리 둔 나임에도 얼굴은 주름으로 구겨지고 바람이 불면 휘청거릴 것 같이 여위어 있었다. 시어머니는 내손을 잡고 뒤뜰에 가더니 결혼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을 울음에 섞어 사죄하였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 믿고 살아왔는데 그 천금 같은 아들이 불구가 된 것이 억울하여 울었겠지만 어머니가 우니 나도 같이 울었다. 차를 가지고 역전에 마중 나왔던 군당간부들이 가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리위원회와 리 당 간부들이 가자 이어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이 광호가 왔다며?” “광호야,” 하고 부르며 들이닥쳤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영웅이 났다고 손 벽을 쳐댔고 남편의 소꿉친구들은 생일이 한두 달 앞섰거나 뒤선 걸 가지고 나에게 제수님, 형수님이라고 너스레를 떨어댔다. 나는 그들이 고마웠다.

 

그들은 제 마끔 가지고 온 음식을 들고 들어와 상을 차렸다. 장밤 술자리는 파할 줄 몰랐다. 정지에서는 사회주의는 우리거야란 노래에 흥부부부가 톱으로 박을 켜며 불렀다는 이 바가지 복 바가지의 노래까지 흘렀다. 노래에 흥미가 없는 윗방에서는 무명 잠방이를 입고 논일하다 버드나무 밑 휴식 짬이나 토방에 돗자리를 펴고 막걸리를 마시며 걸직한 육담을 해대고는 호탕하게 웃었던 마을토박이 조상들처럼 마라초(잎담배) 연기 속에서 무슨 이야긴가를 주고받고는 무릎을 쳐가며 웃어댔다.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던 시어머니가 마침내 못 견디겠는지 우리의 결혼식 때처럼 새날이라고 하며 그들을 쫓아 보냈다.

 

다음날 점심때가 되어 시아버지 친구인 관리위원장이 10키로 됨직한 흰쌀과 옥수수쌀을 달구지에 싣고 와 이것이 다 떨어지면 알리라고 하며 한숨과 함께 남편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려 주고 갔다. 나는 관리위원장이 왜 한숨과 함께 그이 어깨를 두드렸는지 알 것 같았으나 그인 떠나는 관리위원장에게 밝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였다. 그인 관리위원장의 속마음을 정말 몰랐을까. 그렇게 며칠 동안 손님을 치르고 난 다음 어느 날 나는 남편을 삼륜자전거에 태우고 마을구경을 나섰다.

 

양지 쪽 산 밑으로 문화주택이 길게 이어졌고 마을 앞 논벌 중심에는 논일을 하다가 휴식하기 좋게 버드나무속에 정각까지 지어진 논 바다 속의 섬 같은 공지가 있었는데 그 공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편이 물장구치며 고기잡이도 했을 크지 않은 강이 있었다.

 

 좌측멀리에는 영생탑(“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란 글이 새겨진 탑)을 중심으로 2-3층 건물이 있는 마을이 보였고 우측 멀리로는 끝없는 논벌이었다. 이제 논벌이 벼들로 푸르러지고 푸른 산이 갖가지 꽃무늬로 장식될 때면 무대 배경처럼 대단히 아름다울 것이었다. 스피커에서 불러대는 내 고향의 노래가 들려오자 나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내 나라의 산천은 좋아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사람마다 자유롭고 사람마다 행복스런 곳

~언제나 좋은 곳일세

~내 고향 어머니 품아

 

나는 노래를 부르며 웃었지만 마을의 빈집으로 개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 있던 남편의 표정은 침울했다. 그 날 저녁에 시어머니는 남편의 물음에 상철이네는 다 굶어죽고 종현이네와 치국이네는 살길을 찾아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낮에 멋대로 노래를 부른 것을 후회하였다. 밖에서 소쩍새가 구슬피 울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밭 일구러 가는 시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시아버님이 계실 때 일군 밭이라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시어머니는 혼자서는 힘에 부쳐 밭을 절반이나 묵였다. 시어머니는 밭을 정리하고 나는 묵은 밭을 다시 일구는 일을 했다. 그새 묵은 밭은 잡풀들의 뿌리로 뒤엉켜 괭이로 들쳐 내기가 여간 힘겹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다리가 나를 부축하는지 나에게 의지하는지 모르게 비틀거렸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리 당의 부름을 받았다. 리 당 비서는 그새 일이 바빠 가보지 못해 미안하다며 나의 하루 일과에 대해 물었다. 나는 며칠째 시어머니와 함께 밭을 일구고 있다고 하자 비서는 농사 일이 헐치 않지,” 하며 웃었다. 나도 그렇더라고 말하며 따라 웃었다.

일옥 동문 꽃을 가꾸어 본 일이 있소?”

 

비서가 물었다. 나는 꽃을 좋아해서 시집오기 전에도 시집와서도 꽃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럼 됐소. 실은 동무네 집 식량문제 때문에 관리위원회와 논의가 있었소. 합의를 본 것이 동무를 김정일화 온실 관리를 맡기기로 했는데 마침 꽃을 좋아한다니 다행이요.”

비서는 한 걱정, 덜었다는 듯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와 리 당에 갔던 이야기를 하니 시어머니는 농장에서는 그만한 일이 없다면서 시간 바쁘면 거기서 자면서 하라고 했다.

 

그렇게 되어 나는 김정일화 온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온실 좌측에는 꽃이 심어졌고 오른 쪽에는 오이, 토마토, 고추, 상추 같은 먹을 것들이 심어져있었다. 온실에 들어선 나는 먼저 꽃들에게 취임인사를 하였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주인, 아니 엄마야 그러니 아프거나 문제되는 것들을 주저하지 말고 다 말해야한다 알았지?”

꽃들은 나를 반겨 각각의 모양새로 웃어주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이야기를 나눠볼까

나는 먼저 봉선화 앞에 무릎을 꺾고 앉았다.

이 요염한 것아, 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웃고 있지?”

아름다움을 조금 숨기려고요

왜 숨기지?”

자기를 다 드러내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숨김도 매력이니까,”

 

들국화를 보고 말했다.

넌 꼭 방랑아 같아, 어디를 둘러봐도 네가 보이니 말이야

자유가 좋아서 그래요 구속 없는 생활이 얼마나 좋아요.”

하지만 꽃은 다 여자야 그러니 너무 야생적이면 안 돼

다음은 백일홍이다

 

우리, 아니 나의 남편이 너를 제일 좋아한단다, 그런데 네가 꽃피는 날이 꼭 백날이냐?”

그런 건 아니고 다른 꽃보다 오래 피니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아요

더 오래 피고 푼 생각은 없니?”

아니요 그렇게 되면 다른 꽃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요

그래 지나친 욕심은 나빠

나리꽃이 눈에 띄었다.

넌 왜 보기 싫게 온통 기미투성이냐?”

“‘나리꽃이란 소설을 못 보셨어요? 19세 어린전사가 끊어진 통신선을 양손으로 잡아 죽음으로 부대의 통신을 보장했다는 이야기. 그 소년 전사의 얼굴이 기미 투성이였어요.”

그 소년을 잊지 못해 기미를 가졌단 말이지 그래 장하다

 

코스모스를 보고 말했다.

넌 머리를 쳐들고 벙글거리기만 하는 게 꼭 멋없는 사내 같아

순수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가면 되지요

그래 찬성이다 제 아무리 뛰어났다고 뽐내도 죽어서 흙으로 가기는 마찬가지야 그래서 귓속말로 너에게만 하는 말인데 난 봉선화가 요염한 게 싫어

 

이번에는 높은 단상에서 뭇 꽃들을 위엄 있게 내려다보고 있는 김정일화 앞이었다.

넌 마치 왕좌에 앉은 모양새구나

그럼 내가 왕이 아니란 말이냐?”

나는 하인을 대하듯 하는 김정일화를 향해 말했다.

넌 그저 그 분의 이름을 가진 꽃일 뿐이야

어허 발칙하도다 그 분의 이름으로 된 모든 것은 다 그 분처럼 대하여야 한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 만약에 내가 잘못되는 날엔...”

나는 그가 하려는 뒷말에 주눅이 들었다. 온실이 생겨진 것도 이 꽃 때문이고 이 꽃이 병들거나 죽는 날엔 온실에서 쫓기는 것 말고도 그 책임 추궁이 엄할 것이었다.

 

나는 정성껏 꽃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꽃은 생각 외로 많은 손질을 요구했다. 일이 밀려 집으로 가지 못하는 때가 많았는데 그런 날 밤이면 탈의실 나무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잠들기 전 비닐 막을 뚫고 희미하게 비치는 반쪽 달을 보며 인생, 사랑, 고독에 대하여 생각하기도 했다. 인생은 허무하고 사랑은 순간이고 고독은 영원한 것 같았다.

 

그런 날 밤에는 자식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고 죽는 중국영화 이지러진 달여주인공의 겪는 쓸쓸함과 고독이 밀려들어 슬펐다.

 

날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온실 일을 하게 된 지 한 달이 되었고 내일은 4.15(김일성의 생일)날이었다. 오늘은 밤을 새며 영생 탑에 드릴 꽃바구니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꽃 배열을 잘하기 위해 도면을 그려놓고 꽃바구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바구니 중심에 국화, 목란을 다섯 송이씩 꽂고 목란 주위에 꽃들을 색 맞추어 배열하고 미술가들이 그렇게 하듯 멀리에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며 심열을 다하고 있는데 리 당 비서가 온실에 들어서며 꽃바구니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들렸다며 꽃 배열에 자기 의견을 말했다. 비서의 간섭은 당연한 일이였다.

 

꽃바구니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견을 나누며 꽃바구니를 만들었고 비서는 피곤은 웃음으로 쫓아야 한다며 육담 이야기를 했다. 비서는 즐거워서 웃었지만 나는 듣기가 거북하여 얼굴을 붉히며 미소만 지었다. 꽃바구니가 다 만들어졌을 때는 자정이 넘은 때였다. 비서는 수고했다 말하고 온실에서 나갔지만 이런 꽃바구니를 처음 만들어본 나는 미흡한 것이 없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니 비닐 막에 비쳐진 희미한 달빛이 어룽거렸다. 보름달인데도 왜선지 반쪽 달처럼 희미했다. 다시 중국영화이지러진 달의 여주인공이 떠올랐다.(이런 달 밝은 밤에도 그 여인의 마음은 반쪽이었을까). 나는 가늘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삐거덕 온실 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자는가?”

조금 전 돌아간 비서의 목소리였다. 비서는 손에 술병을 쥐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마주 앉았다. 비서가 술을 권했다. 처음엔 못 마신다고 거절하다가 비서가 하도 권하기에 조금씩 마셨다.

 

처음 마셔본 술이라서 그런지 몇 잔에 어지럼증이 일었고 얼마 후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와 마주한 사람이 누구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발가벗겨진 내 몸을 보고 아연했다.

 

다음 날, 4.15행사가 끝난 저녁에 비서가 온실을 찾아와 우리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으며 우리가 만든 꽃바구니가 군적으로 제일 우수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비서는 나의 도도한 태도에 잠깐 주춤했지만 자책이라든가 미안함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를 능글스럽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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