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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3 01:04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4)윤양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544  

엎어지고 보니 떡함지였다는 듯 내가 처녀인 것에 놀랐다고 서슴없이 말하며 씩, 웃을 때 나는 얼굴에 모닥불을 들씌운 것처럼 화끈거렸다. 어떻게 비서라는 사람이 저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는지,

 

나는 나의 발가벗은 몸을 제 하고픈 대로 했을 사람 앞에 서있다는 수치심과 억울함에 그만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비서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5년이란 결혼생활기간 어떻게 견뎠는가를 넌지시 물을 때도 나는 한마디 대꾸조차 못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몸이 달아오르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이후 비서는 여태 우리를 도와 준 것이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계속 우리가정에 관심을 돌려주었다.

 

남편을 돌보는 시간이 많게 시어머님을 기본노력에서 부대노력으로 돌려주었고 개인 밭을 일구며 농장 일에 나가지 못할 경우에도 노력공수를 주도록 관리위원회에 지시를 주었다

 

. 그 대신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비서의 요구에 그냥 몸을 허락했다. 나는 비서가 주는 것에 줄 보상이란 몸밖에 없었다. 처음 허락할 때만 해도 20년이나 나이차가 있는 비서와 몸을 섞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고 있었다.

 

 비서는 내 몸을 가지는 순간만은 청춘처럼 열정적이었다. 남자와 몸을 섞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나는 그 순간만은 이 세상에 오직 그와 나만이 있는 것 같은 환각에 빠지곤 했다. 만약 남편이 성불구가 아니었던들 젊은 그이가 비서보다 더 무아지경으로 나를 몰아붙일 수 있었겠는데, 하고 생각했고 그럴 때의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고 그려보기도 했다.

 

비서는 온실을 왔다간 다음날에는 그것이 전표이기나 하듯 남편의 이름으로 많은 생활필수품들을 보내주었고 나에게는 아름다움은 가꾸어야 한다며 화장품을 선물했다. 언제인가 온실에 숨겨둔 화장품을 꺼내 바르고 거울을 본적이 있었는데 거울 속에는 낯익은 창녀가 나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화장을 지워버렸다. 쓸쓸하고 슬펐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이후에도 비서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았고 은근히 기다리는 여자가 됐다. 그것이 무슨 감정이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남들에게 다 있는 것이 내게만은 없어서 그것을 비서에게서 잠깐씩 빌려 쓰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는 웃었다. 또 그는 내가 받들어야 할 비서니까, 그런 생각도 했다. 아마도 다른 직책 없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그런 생각까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달 후 나는 내가 임신했음을 알았다. 무너지듯 온실 침대에 주저앉았지만 마음은 온화했다. 차분했다. 언젠가 남편이 다른 남자의 몸을 빌려서라도 아이를 갖자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그런 말이 어디 있냐며 힐난했지만 정작 이렇게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도 남편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배가 점점 불었다. 나는 이제는 남편이 뭐라 해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했다. 온실 문을 나서려니 선뜻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왠지 주저됐다.

 

그때 비서가 안으로 들어오며 빨리 집으로 가보라고 일렀다. 밭으로 갔던 시어머니가 산에서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나는 깜짝 놀라 찬방지축 뛰었다. 시어머니는 암 말기였다. 아들을 돌보러 병을 숨기고 억척스럽게 소토지 개간에 마지막 힘까지 소진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다시 남편을 돌봐야 했다. 온실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비서는 자전거를 마련해 줄 테니 집과 온실을 오가며 남편도 돌보고 온실 일도 그냥 하라고 했다.

 

 이후 몇 달간 온실 일을 하면서 남편을 돌보는 일에 지쳤던 나는 어느 날 비서에게 말했다. 배에서는 아이가 커가고 이제는 두드러지게 표가 난 상태에서 더 망설일 수 없었다. 남편에게 임신사실을 말하고 다시 우리가 살던 곳으로 가자고 말하려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남편에게 그 말을 하지 못했다. 퇴근해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남편이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저승으로 가는 약을 먹은 것을 알았다. 숨을 넘긴 남편의 곁에는 한 장의 유서가 있었다.

 

나는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울지 않았다.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애태우던 자식을 보내는 엄마처럼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나는 남편이 왜 죽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저녁에 들어오면 내 불룩한 배를 바라보며 남몰래 한숨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마디 말도 없었지만 남편은 뱃속의 아이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은 것 같다. 내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유서를 집어 들었다.

 

이렇게 늦은 선택을 용서하오.”

 

단 열 두자였다. 하지만 나는 이 짧은 열 두자에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수기의 전부와 남편이 이룰 수 없었던 희망, 미래, 사랑 그리고 누구에겐가 부르짖고 싶었을 울분을 읽었다.

 

장례가 끝나 사람들이 다 산을 내렸을 때에도 나는 그냥 그이의 묘 곁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내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비서가 다시 올라와 내 곁에 앉아 나의 슬픔을 한참이나 위로했다. 남편의 묘를 바라보며 저 사람은 일옥이에게 가장 소중한 5년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일옥의 삶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그의 죽음은 일옥일 위하여 너무 늦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비서를 돌아보았다. 지금껏 보아오던 얼굴이 아니었다. 나의 눈은 울분으로 끓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비서를 쏘아보며 단죄하듯 말했다.

 

저의 남편은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영웅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비서동지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기실 남편을 잃은 지금에 보는 비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죽은 남편을 욕보인 그의 말만 듣지 않았어도 그렇게 증오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이 누웠던 자리에 쓰러져 목 놓아 울었다.

 

문득 배에서 아기가 꿈틀했다. 나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남편의 사진에 대고 중얼거렸다.

여보 이 애를 당신의 성을 가진 애로 잘 키울게요. 당신처럼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칠 영웅으로 만들게요.”

그 날 저녁으로 나는 그 곳을 떠났다. ()

 

 

윤양길: 국제pen망명북한작가센터회원

2013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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