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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6 13:41
단편소설: 칠보산(2)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210  

함경산맥의 깊은 골짜기 길성 군, 각산 골에서 태어난 연희에겐 그곳이 세상 전부였다.

자라면서 가끔씩 전해지는 도회지의 소식들과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텔레비죤을 시청하며 골 밖에 세상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 했다.

연희야 넌 꼭 도회지로 나가거라.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든지, 무용수가 되든지, 넌 꼭 이 시골을 벗어나게 될게다. 내가 그렇게 만들게다.”

 

마을 리 당 비서는 산골마을에 그토록 고운 처자가 있다는 게 새삼 자랑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우리 마을에 꽃 같은 처녀가 있다며 그는 늘 윗 기관에 송사를 올렸다. 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미녀선발을 위해 내려오는 간부들은 올 때마다 연희를 일으켜 세워 그의 성장속도와 미모의 변화, 치아상태, 다리의 곧음, 손가락길이를 세심히 살폈다.

음정테스트도 해보고, 율동도 시켜보고, 학업성적도 체크하고 그랬다.

 

이곳에 온 후 연희는 언젠가는 김정일을 모실수도 있다는 한 가닥 기대와 희망으로 살았다. 그런데 저번 처음 있은 김정일 방문 때 인원을 모두 철수시키라는 호위성원들의 요구로 별장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나 있었다.

그동안 김정일을 한번이라도 만나면 접견 자가 되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살았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제대할 때가 됐다.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고 가난한 본가로 돌아가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연희는 요사이 마음이 복잡하여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이곳 특 각은 언제나 고요했다. 간부들이 내려오지 않는 한, 일하는 직원들만 보일 뿐이었다. 연희 네가 하는 일이라야 아침에 집합하여 당 비서로부터 사상교육을 받고 손님을 대하는 예절을 배운다. 연희 같은 아가씨는 도합 6명이었다. 한결같은 미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하기에 얼굴을 햇볕에 그을리거나 몸 어디에도 생채기를 내면 안 된다. 몸매는 항상 유지해야하며 청결해야 한다.

담당에 따라 1,2,3호각을 맡은 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청소 하고 별장내부에 비치된 옷들을 다림질 한다. 그리고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프랑스 화장품으로 얼굴을 한껏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보급하는 복장으로 옷맵시를 곱게 하고, 이런 것이 전부였다.

매일 몸매 관리를 위해 음악을 틀어놓고 율동체조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좋은 곳에서 좋은 것만 먹고 편하게 지내서인지 모태미녀인 처녀들의 뽀얀 피부와 결 고운 자태는 과히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간혹 그들은 별장앞바다에서 얼굴을 가리고 미역을 줍거나 소꿉놀이 하듯이 장난치며 바위에 들러붙은 섭조개를 뜯어내고 바위틈에 출몰하는 흉측하게 생긴 문어들을 거리대로 건져내기도 했다. 그런데 거의 심심풀이 식이었다.

소장은 처녀들에게 몸상하지 않게 조심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천해의 자연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은 너무나 정갈하고 맛스러웠다. 새벽의 공기는 맑다 못해 청신하기 까지 했다.

뽀얀 안개가 산자락을 감돌며 신선한 새벽공기를 양팔에 끼고 슬그머니 다가오면 그 내 음이 심장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눈이 절로 떠지었다.

 

별장에는 관리인이 20명 가까이 되었고 별장을 지키는 호위병총각들 열 명 남짓과 직원들 가족들이 별장과 10리쯤 떨어진 고개 너머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곳사람들은 기근을 몰랐다. 생필품과 식량이 우선 공급되었다.

봄철에 산에 가면 고사리, 삽주, 황 생 고비, 기름고비, 두릅, 깨나물 등이 너무 많아 금방 커다란 배낭 한가득 채우는데 그 재미가 참 쏠, 쏠 하다고 관리인 아낙네들이 입을 모았다.

요리를 하면 가장 맛있는 것이 황생고비나 기름고비로 만든 반찬이었다.

바다에선 해삼이나 성게도 건져내고 파도에 밀려나온 멸치를 한순간에 한 다래끼 주어 담기도 했다. 다시마와, 미역, , 조개 같은 것도 손으로 쉽게 건져 말리거나 먹곤 했다.

연희는 여기 와서야 성게며 해삼이랑 이상하게 생긴 해산물을 맛보았다. 그토록 싱싱한 해산물은 연희가 태어나 처음 접하는 것들이었다. 정말 이곳 사람들만큼은 고향사람들의 기근과 결핍되고 소란스런 사회의 상황과는 상반되는 놀라운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연희는 처녀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약간 허영에 들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에 대한 견제도 보통이 아니었다. 일과 관련된 일 외에는 자신의 속내를 비친다든가, 가족사를 얘기한다든가,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간부들이 내려올 때마다 처녀들은 그들의 관심을 끌려고 무척 애쓰는 듯 했다.

 

한동안은 혹시 김정일을 만나 뵐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나이가 차도록 한 번의 만남도 없다면 이곳 생활은 끝이 난다. 그 후엔 워낙 미인들이라 어느 간부 집 며느리나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을 잘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간부들에게 잘 보이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선배 들은 그럭저럭 괜찮은 집안이나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다들 그만하면 잘 지낸 다는 소식들이 종종 들려왔다. 연희도 이제는 별도리 없이 그리돼야 했다.

박 소장이 그러잖아도 그녀를 걱정해 간부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주지만 그녀를 며느리로 삼겠다는 적임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요즘 들어 자주 이곳으로 내려오는 연락소 참모장이 약간 호감을 보이는 듯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

 

딸 해산 시중을 하러 도회지로 간 마누라가 없는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아 승우는 퇴근을 미루고 사무실에서 자기로 했다. 일에 몰두해 있던 그는 답답한 기분이 들어 창문을 열어 젖혔다. 늦여름의 서늘한 바람이 달아오른 그의 얼굴을 식혀준다.

어둠은 낮의 아름다운 경관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고 정원엔 웅글고 규칙적인 파도소리만 처절 썩, 처절 썩, 들려온다.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며 승우의 머릿속엔 얼마 전 보위부에 체포되어간 남호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그 애처롭고 절망에 빠진 눈망울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직도 호미가락으로 긁어내려지는 것 같다. ‘어이구, 그 아까운 젊은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긍정적이었던 청년이었다.

 

일의 발단은 이러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도내 이름 있는 기업소의 지배인이었다.

끼니를 채우지 못한 노동자들의 출근율이 저조해지고 공장운영에 차질이 생기자 술자리에서 속이 상해 한마디 한 것이 문제였다. “국가가 경제 관리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점 점 어려워지고 힘들게 사는 게 가슴 아프다. 배부르게 먹어야 일도 잘할게 아니냐.”

그런데 합석했던 누군가의 고발로 며칠 후, 보위부에 체포 된 것이었다.

얼마 지나 연좌제로 남호마저 데려갔다. 어느 깊은 산골 막바지로 추방되어간다고 했다.

아버지의 일이 어찌 아들에게까지 죄를 물어야 할 일이란 말인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승우는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며 우울해 졌다.

지금껏 살아온 이 세상이 전부인지, 언젠가 도당에서 일할 때, 외사대표단으로 다녀왔던 중국의 모습이 또다시 그의 머릿속을 헤집는다.

풍요로웠다. 기실 천국이었다. 다양한 먹을거리들과 자유로운 사람들, 가지각색 옷차림들, 도시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아마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을 것이다.

승우는 본부로 나갈 때마다 초라해지고 말라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기아로 숨져간 주검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비록 자신은 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다양한 특혜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슬슬 목을 조여 오는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시키기엔 역부족인 듯 했다.

이제 몇 년 안에 제대할 텐데 그때 자신과 가족의 삶을 걱정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답답한 가슴을 달래고 싶어 승우는 천천히 밖으로 나와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명산은 가을이 깊어지자 더욱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울긋불긋 단장했다.

여느 때 같으면 들뜬 기분으로 차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을 승우이지만 아무 감흥이 나지 않았다. 요샌 별장에서 그가 다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슨 일로 본부에서 책망을 들을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바닷가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던 연희와 참모장의 모습이 승우의 기분을 자꾸 묘하게 한다.

네 시간 가량을 달려 본부에 도착하자 참모장이 다가오며 반가이 맞이했다.

, 박 소장, 올라오느라 수고 많았네.”

, 참모장동지, 잘 지내셨습니까.”

, 나야 잘 지내지. 이따 회의가 끝나면 나랑 할 얘기 있으니 시간 좀 내주게.”

알겠습니다.”승우는 의아해 하며 답했다.

오전, 오후로 나뉘어 진행된 회의는 오후 4시경이 되어 끝이 났다.

여러 가지 현안들이 논의 되였지만 항상 마지막엔 장군님을 모시는 사업에 한 치의 드팀도 없어야 된다는 말로 마무리 되었다. 회의장에서 나오자 승우를 찾는 참모장이 눈에 뛰었다.

얼마 전에도 다녀갔는데 왜 그러지?’승우는 머리를 기웃하며 아리송한 기분으로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박 소장, 나랑 같이 시내에 나가 식사나 하지.” “, 뭘 맛있는 거라도 사주실렵니까.”

그럼, 어쩌다 올라왔으니 내가 한턱내는 게 당연한거 아닌가, 허 허

그가 왠지 속 빈 웃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참모장이 운전하여 둘은 시내의 양고기 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선 두 사람은 조용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접대원들이 눈치 있게 얼은 커튼을 쳐주었다.

요즘은 개인 식당들이 여러 곳에 생겼는데 도시의 돈 많은 화교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양고기 불고기가 들어왔다.

박 소장, 고기 맛이 괜찮을지 모르겠소. 요즘 새로 나온 요리라.......향신료냄새가 날 꺼요.”

, 그렇습니까. 처음이지만 먹어보지요.”

오늘은 당신이 손님이니 내가 한잔 따르리다. 늘 접대만 받았으니 그게 순서지.”

참모장이 어줍은 미소를 지으며 술을 따랐다. “네 감사합니다.”승우도 한잔 따라주고 잔을 들었다.

, 근데 아까 무슨 하실 말씀이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서로 잔을 비우고 한참을 뜸을 들이던 참모장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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