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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6 13:47
단편소설: 칠보산(3)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296  

, 사실 내가 좀 실수를 한 게 있어서.......”

 그는 얼굴이 약간 벌게졌다.

이런 말을 하자니 내가 면목이 없소.”

 “아니, 무슨 일이게 그러십니까?”

... 연희 있지 않소. 내가 그 애 한데 실수를 좀 해서...”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게 무슨?”

연희의 부모들이 어렵다고 해서 내가 좀 도와주었소. 그 애가 제대할 때가 되었으니 그 준비도 좀 해주었고. 근데 자주 만나다 보니 사람의 감정이란 게 잘 조절이 안 됩디다.”

순간 승우의 머릿속에 얼마 전 바닷가에 서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다.

역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었다.

한참을 이어가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승우는 머리가 뗑 했다.

 

이게 도대체 또 무슨 일이람, 내가 미쳤지.’

승우는 돌로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으며 강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제대할 때가 된 연희가 도움을 받으라고 안내를 맡겼는데 어허,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참모장이 주저리주저리 변명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승우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어찌 그런 일을!? 참 너무합니다.”

멍하니 있던 승우는 화가나 이렇게 쏘아 붙였다. ‘남호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정신없는데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연희는 또 어쩌고.’

그와 동시에 위에 알려지는 날에는 다들 목이 날아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참담한 침묵이 흘렀다.

 

생각 같아서는 참모장의 넙데데한 상판 떼기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더러운 인간......’

승우는 금방 먹은 양고기가 도루 올라올 것 같은 메스꺼움을 느끼며 도와달라고 사정하는 참모장에게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긴 후, 급히 식당을 빠져 나왔다.

 

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관방에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승우는 아침을 먹자 바로 도 산부인과병원 기술부원장인 이주영을 찾아갔다.

마침 그가 출근하여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원장, 잘 있었나. 오랜만이네.”승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영은 반색을 한다.

아니, 소장동지, 어떻게 여기까지.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지. 저번에 우리 딸을 순산시키느라 수고 많았네. 오늘은 내가 이원장에게 미안한 부탁 하나 하려왔네.”손에 들고 온 마른 오징어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승우가 말했다.

 

뭐 이런 걸 다 가져오셨습니까.”그가 급히 다가와 받아놓는다.

의자를 권하며 승우의 표정을 살피던 주영은그런데 무슨 걱정이 있나봅니다?”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 그러네. 어려운 일이 하나생겼네. 이거 참, 함부로 입에 올릴 것도 못되지만 이원장이 도와 줘야 할 일이네.”

원장이 물 한 컵 따라주자 승우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숨을 내쉬며 승우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주영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랍고도 아이러니한 표정으로 승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도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었다.

참 여러 사람 잡을 일이지. 세상에 특 각이 생겨 이런 일은 아마 처음인 듯하네. 근데 정말 이건 극비네. 무덤까지 안고가야 한단 말일세. 정말 밤새 잠 한숨을 못자고 생각하다 찾아왔네.” “, 당연하죠. 말씀하시지 않아도 잘 압니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을 가진 사이였다. 서로 한 고향 선 후배이다 보니 흉허물 없이 마음을 터놓는 사이였다.

이원장, 어쩌겠나. 자네가 잘 좀 해결해 주게.”

, 이런 때나 도와 드려야죠. 근데 그 처녀, 입단속 단단히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지, 내 참, 살다 살다 이런 뒤치다꺼리까지 하게 될 줄을 차마 몰랐네.”

승우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연희가 도 산원을 다녀온 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승우의 마음은 심란했다.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울기만 했다.

낙담한 처녀의 모습이 안 돼 보여 승우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난한 친가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참모장에게 빈틈을 보인 것이 자기의 실수였다고 했다.

착하고 순진한 아이였는데...’

 

이 생각 저 생각에 바닷가를 거닐던 승우는 여기저기 갖가지 가랑잎이 내려 쌓인 산자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별장을 한 바퀴 들러 볼 심산이었다.

깊어진 가을의 산과 들은 누가 일부러 말리기라도 한 듯 건기가 바짝 들었다.

1호각 뒤쪽 마당을 두루 살피던 승우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별장에 새로 배치된 막둥이였다.

 

 “소장동지, 별장 뒷산에 불이 났어요...!”

그는 넘어질 듯 다급한 걸음으로 손을 흔들며 승우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뭐라고? 불이 났다고?”

 “네 뒷산에 불이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자세히 말해 보거라.”

 “제가 좀 전에 큰길가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산 뒤쪽에 연기가 피어오르기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별장 뒷산 쪽에 산불이 난 것 같았습니다.”

 “뭐라고?! 어서 다들 비상소집 시키어라.”

네 알겠습니다.”

 

막둥이가 달음질 쳐 비상종 울리러 가자 승우는 작업도구가 있는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물통이며 갈퀴며 삽을 챙기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생각하던 승우는 흙을 져 나를 지게와 부대자루를 찾아 어께에 걸치고 황급히 직원들이 모여들 마당가로 달려갔다.

 

, 도구들을 하나씩 챙겨 뒷산으로 가게. 불길이 이쪽으로 옮아 붙기 전에 속히 꺼야 하네. 급하니까 어서들 올라가게.”

승우는 모여 있는 직원들에게 이리 지시하고 다시 초소로 향했다.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근무인원과 아가씨들까지 다들 산으로 데리고 갈 심산이었다.

 

숙소에 있던 처녀들이 나오자 연희도 따라 나섰다.

승우는 그녀가 아직 쉬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산을 오르자 불길은 이미 거세게 번져 걷잡을 수 없었다.

건기 든 나뭇잎들은 불쏘시개와 같았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계곡의 물을 퍼 올리고 삽으로 흙을 파 던져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불길은 거세게 번져 벌써 다른 산으로 옮겨 붙었다.

다행히 바람결을 따라 불길이 별장 쪽과 딴 방향으로 퍼지고 있었다.

승우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별장주변에서 맴돌며 불길이 그곳으로 가지 않게 물을 뿌리고 흙을 퍼 던졌다.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불길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있었다.

 

산불 소식에 연희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방안에 있을수록 힘들었다. 치욕스러웠던 그 날이 잊히지 않고 새록새록 해지며 분노가 일었다.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희망마저 한낱 꿈으로 날아가 버린 지금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화를 어딘가에 퍼붓고 싶었다.

자신의 방심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따뜻한 차 한 잔 가져다 달라는 참모장의 전화를 받은 연희는 여느 때와 같이 그의 방으로 갔다.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연희는 이미 늦은 시각이라 편히 쉬라는 인사를 한 후, 문가로 돌아섰다. 순간 급히 다가온 참모장이 그녀를 와락 그러않았다.

 

연희는 놀래며 몸을 빼려 하였지만 잘 훈련된 참모장의 억센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절망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애절한 외침은 방음장치가 된 객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불길 가까이로 흙을 던지며 그녀는 이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꿈꿔온 미래가 어둠속에 묻히고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뽀얗던 그녀의 피부는 화염에 검붉은 피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둠속에서 누군지 가려보기 힘들었다. 그녀는 몰려오는 화염에도 아랑곳없이 흙을 퍼 불길 쪽으로 힘껏 던졌다. 갑자기 몸의 균형을 잃으며 불길 가장자리 쪽으로 꼬꾸라졌다.

열기와 연기가 콧속으로 확 들어오며 숨을 쉴수가 없었다. 신이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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