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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6 13:52
단편소설: 칠보산(4)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311  

그녀는 이미 몸을 일으킬 의지도 기력도 잃었다.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다 잊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뜨거운 화염이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덮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용서해줘요...’

 

그 시각 승우는 처녀들이 이곳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감감 잊고 있었다. 불을 끄는 일 외에 지금은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족들까지 동원되고 밥을 나르는 인원만 마을을 오르내렸다. 주먹밥을 만들어 입속에 넣어주면 그냥 움직이면서 우물우물 씹어 넘겼다.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누구하나 물러서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들의 힘으로는 화마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의무와 책임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승우 역시 그랬다. 힘들었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일이었다.

 

소장동지,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산 아래 저쪽에서 누군가가 내지르는 소리에 승우는 맥없이 눈길을 돌렸다.

소장동지,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밥 나르던 아줌마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승우는 화들짝 놀래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요즘 들어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많이 터지다보니 벌써 가슴이 쿵쿵거린다.

 

가까이 다가가자 쓰러져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승우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연기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화상을 입은 여인을 확 당겨 안고 보니 연희였다.

얘야, 연희야, 연희야!” 승우는 가슴이 내려않는 것을 느끼며 그의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미동도 없다. 승우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를 안아 아랫녘으로 옮겼다.

연희야, 얘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모두 연희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한참만에야 그녀는 맥없이 눈을 떴다.

 

소장동지, 미안해요...”

 “연희야. 정신 차려...”

처녀의 고운 눈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거뭇하게 그을린 입술사이로 ......”라는 외마디 말을 남기며 팔을 늘어뜨린다.

아이고 연희야...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사람들이 모여앉아 그녀의 몸을 흔들며 통곡을 했다. 한참을 멍하니 지켜보던 승우는 굳어져가는 그녀를 사람들 도움으로 등에 업었다.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꽃 같은 처녀의 죽음이 슬픈 양 하늘도 방울방울 비를 뿌리기 시작 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더니 거센 물줄기로 변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검은 줄기가 그을린 사람들의 얼굴에 범벅되어 흘러내렸다. 별장 마당가에 연희를 뉘이자 사람들은 또다시 넋 놓고 앉아 통곡을 했다.

평화롭고 온화하기만 했던 명산의 골짜기 가득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진동했다. 승우는 불길함이 스멀스멀 밀려옴을 느끼며 하늘을 향해 머리를 버쩍 들었다. 주름진 얼굴 위로 굵은 눈물이 주르룩 흘러내렸다.

 

60평생을 살아오면서 무슨 일인들 안 겪었으랴만 금방 피어난 싱싱한 꽃처럼 곱고 맑았던 처녀의 죽음이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할 줄 어찌 알았으랴.

연희야, 왜 그랬느냐. 그래도 살았어야지. 그 인간이 뭔데 네가 목숨을 잃어야 한단 말이냐...”승우는 연희가 이미 삶의 끈을 놓고 있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찝찔한 것이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어 허, 어 허, 승우의 웅글 은 울음소리가 칠보산의 검은 하늘 멀리 메아리처럼 퍼져갔다.

 

*

 

어떤 처벌이든 내려질 거라 생각하며 승우는 본부로 가고 있었다. 도착하여 복도 가운데에 있는 정치부장의 방에 들어서니 그가 거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별장을 몇 번 다녀갔지만 차가운 사람이어서 서로 사무적인 이야기만 나눈 사이였다.

박 소장, 도대체 별장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산불이 난거요? 도당에 있을 때 일을 잘했단 얘기는 들었소만, 어떻게 된 거요?”

 

승우는 숨도 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들으나 마나한 얘기다. 변명이라도 해야 되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당신은 해임 철직이요. 본부에서 새 소장을 내려 보낼 테니 인계하시오.”

정치부장은 이 한마디를 내뱉고 나가보라고 했다.

그게 어디 인력으로 되는 일이란 말입니까?”

승우는 울분이 치밀어 저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이보 당신, 뭐라 하는 게야. 아주 된맛을 봐야 정신 차리겠군.”

 

그의 냉담함에 승우는 아들을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살아오면서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아무리 말해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하지만 억울하고 분했다.생각해보면 평생을 한 순간도 국가를 위한 일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이익보다 원칙과 규범을 지키려 했고 삶의 첫 자리에 맡겨진 일을 놓았다. 어떤 사리사욕도 부정도 행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인정받았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가 바란 건 만년을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는 것이었다.

결국은 이리 끝나는 구나...’ 승우는 울분으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방을 나섰다. 언제 왔는지 참모장이 복도에 서있었다. 둘은 말없이 긴 복도를 걸었다.

우리 맏이는 어떻게 되는 거요?”

박 소장, 할 말이 없네. 당신을 도우려고 내가 충언을 했지만 부장은 막무가내네.”

아마, 아들도 제대될 거 같네. 잘 알지 않나. 딱지가 붙으면 어떻게 된다는 걸.”

뭐라고요?”

승우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절망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위부에 입사했을 때 그토록 기뻐하던 아들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참모장, 이게 내 한평생을 바친 대가요? 너무하지 않냐 말이오. 그 애한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이오!” 승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 했다.

박 소장, 힘을 내게. 그래도 수용소로 안 간 것만도 다행 아닌가.”

뭐라고요, 수용소요?”듣고 보니 그랬다.

사회로 나오면 아마 생활이 어려울 걸세. 그땐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일이 없겠나. 찾아오게.”

 

저지른 일 때문에 미안함이 있었는지 참모장이 누추하게 주절대고 있었지만 승우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자식의 앞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내가 무슨 애비란 말이요!”

승우는 몸을 일으키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터벅터벅 정문을 빠져 나왔다.

아무생각이 안 났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야 할지 한참을 생각 했다. 갈 곳이 없었다.

있다 해도 그 곳이 어디든 싫었다. 그리고 끔찍했다.

지금 이 순간 승우는 살아온 생을 통째로 뒤집고 싶을 만큼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

 

아내와 함께 승우는 고갯길에 올라섰다.

제대당하고 장사를 시작한 아들이 이국을 넘나들더니 연락을 보내왔다.

아들은 편지에 이렇게 썻다.

- 아버지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말입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승우는 눈물이 났다.

그래 그런 세상이 있을 것이야. 내가 십 년 전 보았던 그곳, 그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을 거야.’승우는 온몸에 힘을 모아 걸음을 내 짚었다.

그토록 아름답던 칠 보산이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승우는 깊은 그 골짜기를 빠져 나왔다.

 

                                                                                                                                                            2016. 11. 25. 송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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