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구글광고
 
작성일 : 17-05-11 16:47
풍자콩트: 충신의 진정성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420  

 

 

콩트: 충신의 진정성(이지명)

 

박 씨가 퇴근해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얼른 상을 펴고 밥그릇을 올려놓는다.

 

김이 문문 나는 흰 이밥을 보노라니 저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지만 본시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점잖을 잃지 않으려 어험, 어험 기침부터 한다.

 

시장할 텐데 어서 잡수라고 아내가 권해도 술을 들지 않고 그냥 아내만 쳐다본다. 어디서 났냐는 무언의 물음이다. 없는 세월에 배급도 주지 못하는 직장에 만날 틀어 박혀서 집 살림엔 아예 뒷전인 남편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먹을 게 어떻게 생기는지 내 알바 아니라는 듯 아침에 시간 맞춰 출근하고 들어와서는 틈만 있으면 배고픈 아내와 딸을 앉혀놓고 일장 강의도 잘한다.

 

나라가 어려운 때 백성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그게 근본 있는 사람이라는 둥 어려울 때 충신과 배신이 갈린다는 둥 나라걱정을 하노라면 먹는 밥이 모래알 같다는 둥 그러며 때로는 가슴을 치기도 한다.

 

하루 한 끼 쌀 구해들이기도 버거운 때 무슨 놈의 나라걱정이냐고 이따금 대들기도 했지만 본시 그렇게 생겨 먹은 양반이라 그런 소린 소귀에 경 읽기다.

 

이번 216일 장군님 생일을 맞아 내 준 배급 쌀이외다.” 하고 아내가 꽁한 어투로 대답한다. 그러자 박 씨는 그게 어떤 쌀인지 당신은 모르지?” 하며 눈에 눈물이 글썽해 깊은 한 숨을 내쉰다.

 

어떤 쌀이긴, 명절 맞아 내주는 배급 쌀이지, 왜 눈물까지 흘리며 청승이요?”

아둔한 녀편네 같으니, 그게 나라 군량미를 박박 긁어 내준 쌀이란 말이요,”

그런데요?”

이런, 미국과 남조선이 호시탐탐 우릴 먹으려 기회를 엿보는데 유사시에 쓸 비상 쌀까지 털어 백성에게 공급하는 이런 은덕에 당신은 눈물이 안 난단 말이요?”

안 나는데요.”

 

아내는 그냥 빈정거린다. 한참을 노려보던 박 씨가 한 발 나앉는다. 또 강의가 시작되나보다.

 

딸이 없으니 망정이지 있다면 한바탕 말씨름이 벌어질 판이다. 선수 치 듯 아내가 먼저 말꼭지를 뗀다.

 

눈물은 안 나도 알건 다 아우다. 오죽했으면 정미도 안한 벼로 배급을 내줬겠소. 텔레비전에서도 말했잖소, 나라가 어려워도 인민이 중해 비상 군량미로 명절 배급을 푼다고, 자 됐소? 어서 식기 전에 밥 잡수

 

아내는 그러며 얼른 숟가락을 박 씨의 손에 쥐어주었다. 먹어야 말이 없겠기에 하는 짓이다.

 

밥이 목구멍을 어찌 넘겠소.” 박씨가 또 푸념한다.

 

지금 뭐라 했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는데 백성 된 자가 흰 밥을 어찌 먹겠냔 말이요.”

 

박 씨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이 드디어 주르르 흘러내렸다. 숟가락을 든 채 눈물짓는 꼴이 옆에서 보기에도 꼴불견이다. 어찌 보면 저런 충신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나라를 생각하면 먹는 밥이 모래알 같다는 평시의 말을 생각해도 오늘 저녁엔 분명 저 밥을 먹을 것 같지 않다.

 

마침 출입문이 열리며 딸이 들어섰다.

 

영감 밥만 듬뿍 담았던 탓에 둘의 밥은 한 그릇도 되나마나한데 오히려 잘됐다 싶어 당신 아무래도 밥 잡숫지 못할 건데 어서 저쪽 가서 눈물이나 실컷 흘리오.” 하며 아내는 밥상을 당겼다.

 

어허, 이거 왜 이래

박 씨는 날래게 밥상을 움켜잡았다. 주르르 흐르던 눈물이 어느 새 쑥 들어간다. 그 모양을 보고 딸이 까르르 웃는다.

 

네년은 왜 웃는 거냐?”

아버진 말 충신, 말만 번지르르.......호호

그년 말 본때란, 그럼 내가 어찌해야 이 가슴속 진정을 알아 줄 거냐?”

 

그러자 이번엔 아내가 말한다.

어찌하긴, 학습시간에 배웠잖수, 충신은 말이 아닌 행동 즉 실천으로 보여줘야 그게 진짜라구,” “뭐야?”

연달아 딸까지 맞장구친다.

맞아요. 그러니까 어서 상 놔요, 오늘 저녁 진짜 밥 안 잡수면 아버지 충심 인정할게요.”

 

그럼 오늘 저녁 날 굶길 거냐?”

 

어이고 참, 나라를 생각하면 먹는 밥이 모래알 같아 목구멍을 안 넘는다면서요?”

모녀가 기대어린 눈길로 빤히 쳐다보자 박씨는 어험, 어험 건기침을 해대고는

 

그렇다구 사회주의 사회에서 밥 굶으면 쓰나, 어험하며 상을 제 앞으로 바싹 끌어당긴다.

 


미소가 17-06-02 21:39
답변 삭제  
쌀쌀쌀... "밥은 곧 사회주의다" 오죽했으면 김일성이 요리 말했겠소!... 잘 보고갑니다.
노을 17-06-06 12:43
답변 삭제  
미소님 반갑습니다. 고맙구요 ㅎ
만탑산 17-06-06 12:58
답변 삭제  
현재도 이런 충신 흔한가요?
아마도 많이 변했겠지요?
미소가 17-06-09 12:12
답변 삭제  
만탑산 듣던 이름이네요 ^^ 만나서 반가워요 ...
만탑산 17-06-09 18:54
답변 삭제  
미소천사님 맞으시죠. 미소라고 해도 전 알아봅니다. 글을 보면
샘 글엔 따뜻한 마음씨까지 묻어 있거든요. 반갑습니다. 언제 한 번 만나요
 
 

Total 69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69 단편소설: 복귀(4)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541
68 단편소설: 복귀(3)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523
67 단편소설: 복귀(2)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560
66 단편소설: 복귀(1)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491
65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3) 오대… 이지명 01-06 535
64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2) 오대… 이지명 01-06 474
63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1) 오대… 이지명 01-06 497
62 풍자콩트: 충신의 진정성 (5) 이지명 05-11 1421
61 단편소설: 칠보산(4)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290
60 단편소설: 칠보산(3)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297
59 단편소설: 칠보산(2)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210
58 단편소설: 칠보산(1)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263
57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4)윤양길 이지명 04-03 1562
56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3)윤양길 이지명 04-03 1660
55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2)윤양길 이지명 04-03 1630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