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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07 02:58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36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467  

참 어머니도, 식사는 거르지 말아야지 내가 뭐랬어요.”

차려줘야 할 사람도 없는데 혼자 있는 년이 하루 세끼 꼭꼭 챙겨먹으랴?”

엄만 참. 쌀이 없다면 몰라라.......아무래도 철이를 계속 붙박아 둬야겠어요. 그래야

됐다. 배 안 고프니 걱정 마라. 엊저녁엔 왠지 뒤숭숭한 생각에 통 잠이 안 오더구나. 새벽이 돼서야 눈을 붙였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또 아버지 생각?”

그래, 지금도 그 사람이 벙글벙글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만 같아서.......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아 있는지, 하고 말하려다 여인은 다른 말을 했다.

애비는 요즘 왜 통 나타나지 않느냐?”

오늘 저녁 보낼게요. 요새 제가 집에 없어 그랬을 거예요. 집에 있는 사람이 못 미더워서 그러겠죠.”

 

춘희는 얼른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서 쌀을 안치고 국을 끓였다. 갖고 온 반찬을 접시에 담아 상 차릴 준비를 한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여인의 자세는 꼿꼿했다.

곧 식사해야겠는데 어서 수건 풀고 세수해요.”

춘희가 그러며 더워진 물을 솥에서 퍼내어 세숫대야에 담는다. 여인은 그래, 하며 얼굴을 가린 수건을 벗었다.

 

순간, 험상한 얼굴이 정면으로 드러났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지레 질겁해 눈을 감았을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볼 수 없었다. 화상을 당한 흔적인 듯 얼굴 전체가 꺼멓게 죽었고 얼기설기한 핏줄이 마구 엉켰다. 상처자리가 아물며 굳어져 곳곳에 뭉쳐진 굵은 허물이 흉하게 두드려졌다.

한쪽 눈 확의 눈꺼풀까지 말려 위로 올라붙어 핏발 선 뿌연 눈동자가 겉에 매달린 듯 위태롭게 보인다. 더 험한 것은 아래 턱 부분이다. 입술절반이 없다. 드러난 허연 이가 보이고 이빨 사이로 입안의 침이 턱을 적시며 질질 흘러내렸다. 얼굴전체에 생긴 상처의 허물은 깊고도 흉물스러웠다. 그래서 여인은 늘 엷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맞이하는 것 같다. 어떤 일로 그리 되었는지.......아마도 그 사연을 들으면 누구나 경악에 치를 떨 것이다.

 매번 마주할 때마다 춘희는 이를 사려 물곤 한다. 언제든 엄마를 이렇게 만든 작자들을 기어이 찾아내 복수하리라는 굳은 결심이 표 나게 그 고운 얼굴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세수를 하고 앉은 엄마 앞에 차린 밥상을 가져다 놓으며 춘희는 또 입술을 사려 문다. 소리 없는 눈물이 여인의 큰 눈에 가득 고인다. 그걸 이윽히 들여다보며 옥님은 쯧쯧 혀를 찼다.

그만해라. 오래된 일인데,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절대 바람직한 게 아니니라.”

알아요. 어서 드세요 국 식기 전에

춘희가 얼른 눈물을 훔친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옥님은 딸을 안심시키려는 듯 천천히 숟가락을 든다.

엄마. 아침에 윤송녀 어머님이 저한테 왔다 갔어요. 기억하죠?”

윤송녀라면? 아니 언니가? 내가 그를 어찌 잊겠냐? 아직 살아 계셨구나.”

. 첫 눈에 날 알아 본 것 같았어요 저도 알아보았지만.......그 분은 탄광마을에 사셔요. 미안해요. 미처 말씀 드리지 못해서

중동탄광 말이냐?”

. 몇 해 전에 제대한 아들을 따라오셨어요. 아들이 탄광갱장을 하거든요

맏아들 말이냐?”

전 맏아들은 몰라요.”

그럼 둘째아들?”

어인일인지 옥님이 흠칫한다. 하지만 이내 수습하며 감격어린 목소리를 뱉는다.

 

그랬구나. 송녀 언닌 네게 엄마 같은 분인데.......그래 인사는 제대로 드렸느냐?”

네 인사는 드렸지만 모른 척 했어요 엄마 말처럼 지난 일을 헤집기 싫어서요.”

춘희의 낮은 대답소리다. 옥님은 숟가락을 든 채 까닥 움직이지 않고 춘희만 바라본다. 무서운 인상이었지만 눈에는 삽시에 굵은 눈물이 맺혀 방울이 되어 떨어졌다지친 눈이 스륵 감겼다.

 

순간, 기다렸던 듯 처절한 비명소리가 여인의 가슴을 찢는다.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위에서 살갑게 내밀어주는 또 다른 여인의 손, 악과 정이 한데 뭉친 한 폭의 그림이 감은 망막에 선명히 그려진다. 이런 소식을 듣자고 밤새 잠 못 자고 시달렸던가?! 지나간 세월에 당한 괴롭고 억울한 추억 속에는 바로 윤 씨가 메마른 땅에 내린 빗물처럼 포근히 스며있었다.

 

자기들 모녀에게 쏟은 윤송녀의 지극한 정성, 그 세월에 당한 견디기 어려웠던 시련. 살아 숨 쉬는 것마저 저주스러웠던 그 세월에 윤 씨는 옥님에게 있어 한없이 따뜻한 햇살이었고 꺼져가던 삶의 등불을 다시 켜준 잊을 수 없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2

  뗑 뗑.......내면에서 울리는 섬뜩한 종소리가 차갑게 귀를 적신다. 가슴이 옥죄어 들었다. 공포로 옥님의 눈이 하얗게 질린다. 여기는 어딘가? 나물 캐러 자주 나오는 곳이지만 너무 생소해 두리두리 사방을 살핀다. 두려운 눈길이었다. 한 떨기 청순한 꽃이 시야를 메운다. 늘 보아오던 흔한 꽃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왠지 아름답게만 보이던 그 꽃이 째지는 전율을 몰고 그의 가슴에 칼처럼 박힌다. 흙 묻은 커다란 신발이 주저 없이 그 꽃을 지르밟으며 다가왔다.

 

누구에요?”

대답 대신 히죽 웃는 일그러진 입, 검은 선글라스를 낀 얼굴이 꽃을 넘어 옥님에게로 다가온다. 그 다음 마디 굵은 억센 손이 주저 없이 여인의 가냘픈 목을 움켜쥐고 힘껏 죈다.

, 숨이 막혔다. 가슴이 팽팽 부어올랐다. 왜 이러는지, 왜 자기에게 이리 포악하게 구는지, 곧 죽는다고 생각할 사이도 없었다. 꺼억, 숨 꺾이는 고통이 사지의 떨림을 모두 정지시킨다. 천천히 돌아가는 여인의 흰 눈자위가 애처롭게 사내의 시커먼 얼굴에 마주친다. 이제 고개를 젖히면 옥님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여자의 멈춰지는 가쁜 숨소리를 가늠하던 사내는 그제야 느슨히 손을 푼다. , 걸레처럼 늘어지는 육신, 사내는 여자를 버럭이 쌓인 바닥에 눕힌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낸다. 단단히 봉인한 뚜껑을 여는 투박한 손이 우들우들 떨린다. 병 속에 담긴 액체는 청산카리, 이제 이걸 여자의 얼굴에 들부으면.......끔찍할 것이었다. 차라리 죽이는 것만 여자에게는 못하리라.......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명을 받은 사냥개는 무작정 그 명을 따라야만 했다. 사내는 긴 숨을 쏟으며 여자의 얼굴위로 병을 쳐든다. 기울이려는 순간 이것만은 차마.......고개가 꺾인다. 우둘우둘 떨던 손이 마침내 행위를 연장시키지 못하고 힘없이 드리워진다.

 

오금을 꺾고 얼굴을 돌리는 사내의 눈에 방금 지르밟았던 꽃 무더기가 안겨들었다. 내버린 버럭 산에 외로이 피어난 꽃, 영역을 넓히듯 무성하게 잎을 만들고 그 위로 소담했던 망울을 터트린 흰 꽃. 방금 밟혔던 그 꽃잎이 지금 조금씩 일어서고 있었다. 떨어진 꽃잎을 푸른 잎사귀에 얹어둔 채 하나 둘 고개를 쳐든다.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너 제발 죽지 말고 일어나라.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나도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덜 수 있을 테니까

사내가 중얼거렸다.

 

 우르릉, 먼 우레가 울었다. 비구름이 몰려온다. 사내가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손에 든 병을 기울여 맑은 액체를 옥님의 얼굴에 떨어뜨린다. 정신 잃은 여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 반응도 없고, 칙 치직 살타는 역한 냄새가 사내의 폐부를 찌른다.

으으으, 거꾸로 들린 작은 빈병을 집어 던진 사내는 그렇게 속 곪아터지는 소리를 지르며 눈도 뜨지 못한 채 움쭉 몸을 일으켰다.

그때다. 장신의 또 다른 사내가 괴성을 지르며 병을 던지는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 , 뒹굴며 주먹을 내리치며 엎치락뒤치락 싸우던 두 사내는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를 노려본다.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가해자는 틈을 보아 쏜살같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라

후에 뛰어든 사내가 그렇게 고함지르며 그 사내를 쫓아간다. 옥님의 몸이 한 번 꿈틀하다 조용해진다. 정녕 여인은 그것으로 생을 마감하는가? 살타는 그을음 냄새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갔다. 연한 햇빛마저 빗 구름 뒤로 사라지고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여인의 빨갛게 타버린 얼굴에 떨어졌다. 데어 뭉덩뭉덩 떨어져 나간 살점, 하옇게 드러난 흰 이, 남은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아득한 공간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아, 응아, 여인은 초지의 힘을 빌린 듯 만신창이 된 몸을 일으킨다. 살아야 했다. 살아서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했다. 죽을힘을 다해 기어가는 손끝에서 빨간 물이 흘러 버럭 돌을 적셨다.

 

옥님아, 옥님아

멀리 떨어져 나물을 뜯던 송녀가 고함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정신없이 뛰어온다.

나 여기 있소 오,”

소리를 쳤으나 나가는 소리는 없었다. 일어서려다 모진 통증을 느낀 옥님은 헉, 하며 모로 쓰러졌다. 빗물을 머금은 들국화는 보란 듯 밟혔던 줄기를 일으키는데 얼굴 뜯긴 여인은 벌벌 기며 그 꽃잎을 타버린 얼굴로 덮는다.

 

언니, 나 여기 있소

입안에서만 뱅뱅 도는 소리, 옥님은 기를 쓰고 긴다. 와르르.......비에 젖은 버럭이 손 아래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송녀는 정신없이 달려왔다. 머리를 든 옥님을 보는 순간 악, 하며 뒤로 벌렁 넘어진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네가 왜? 으윽, ,

늘어진 송장 같은 몸을 업고 비틀비틀 버럭이 깔린 오솔길을 내려오는 송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송녀와 옥님인 한마을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며 언니동생하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옥님은 액운을 지고 사는 계집애 같았다. 전쟁난리에 친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작은 아이, 죽은 엄마젖을 물고 늘어진 어린애를 때마침 고아원에서 데려가지 않았다면 옥님인 벌써 그때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가버렸음 더 좋았을 생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변을 당하자고 그리도 영악하게 버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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