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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30 16:33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37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358  

비칠거리는 송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입에서는 격한 통곡소리가 흘렀다. 무슨 정신에 걷는지도 몰랐다. 옥님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낭자한 피가 송녀의 어깨를 적셨다. 걸음을 멈춘 집은 병원이 아닌 박순민의 집이었다. 네 귀 번듯하게 지어놓은 팔각기와집에 이르렀을 때 마당에 서있던 순민이가 뛰어왔다. 어떤 예감에 몸을 떨며 순민이가 소리쳤다.

 

아주머니, 업은 게 옥님이 아니요?”

송녀는 눈물을 훔치며 머리를 끄덕였다. 순민은 다가와 옥님의 얼굴을 확인하다말고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비실비실 뒷걸음쳤다. 공포의 흰 자위, 입술은 중풍을 만난 듯 덜덜 떨고.......

정말 업은 게 옥님이 맞소?”

맞아 맞다니까, 으으으

송녀도 축축한 땅위에 주저앉는다. , 아 일그러지는 얼굴. 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내지르는 사내와 여인의 통절한 울부짖음이 비에 젖은 마당을 울렸다.

 

1년 전, 해변에 길게 늘어선 절벽가로 젊은 여인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반나마 물에 잠긴 너럭바위에 앉아 소주병을 기울이던 강성대는 얼핏 시야에 들어 온 여인의 자태를 눈여겨 살폈다.

 등에 불룩한 배낭을 지고 손에 보따리를 든 여인의 걸음걸이가 위태롭게 보였다. 고향에 두고 온 아내가 그리워 이따금 이 너럭바위에 앉아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소주병을 기울이던 성대다. 그의 눈에 비쳐든 여인의 몸이 안쓰러운 느낌을 준다.

 첫 눈에 만삭이란 것이 알렸다. 그런 몸을 이끌고 저 여인은 지금 어디로 가는지, 그도 반쯤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자주 휘둘러보면서도 가까이에 있는 성대를 미처 보지 못한 듯 여인은 힘겹게 절벽 쪽으로 걷고 있었다. 고통을 씹는 일그러진 얼굴, 턱에 닿은 숨, 그 쪽엔 자그마한 동굴이 있었다. 성대가 그 동굴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지금 걸어가는 여인 때문이었다.

 

지나간 봄부터 여자는 열애에 빠졌었다. 아니 썩 이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성대도 잘 아는 시 당 간부 집 아들이었다. 간부도 보통 간부가 아니었다. 둘은 바닷가 백사장에서 파도를 밟으며 놀다가도 어슬녘이면 절벽에 붙은 작은 동굴로 들어가곤 했다. 얼핏 보아서는 찾아낼 수 없는 묘한 위치에 자리한 동굴이므로 둘은 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한 덩어리가 되어 몸을 불태우곤 했다. 우연히 그걸 본 이후 성대는 남의 비밀을 훔쳐본 것이 무안해 저 혼자 얼굴을 붉혔다.

 

이후 자연히 성대는 그 둘을 관심하게 됐고 할 수만 있으면 지켜주려 애썼다. 아마도 그건 못 다 이은 아내와의 애끓는 사랑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선주인 아버지의 배를 타고 바다에 나왔다가 풍랑으로 인해 홀로 이북에 흘러들어 온 강성대다. 갓 결혼한 젊은 아내를 두고 떠나 온 길이 어언 8,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땅에 왔다는 것을 실감케 한 세월 속에 이제 아내는 잊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 짙게 다가들어 그를 괴롭혔다.

 

이북에 온지 3년 쯤 되는 해 성대는 배치 받은 수산사업소양식반에서 함께 일하던 한 여자와 동거했다. 아내를 잊기 위한 행위라 할까, 그 여자는 전쟁고아였다. 외로워서 얼굴엔 늘 수심이 가득했던 여인은 성대의 상대가 되어주길 주저하지 않았다. 식을 올릴 처지도 못돼 그냥 살았는데 덜컥 아기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들을 출산한 후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세상을 하직했다. 핏덩이를 부둥켜안고 젖동냥을 다니면서 그는 잊었던 남쪽아내를 다시 떠올렸다. 못 견딜 그리움에 가슴이 타들 때면 바닷가에 나와 쓴 소주잔을 기울이며 괴로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얼결에 일어난 성대는 여자가 들어간 동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심상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어나다말고 다시 주저앉았다. 또 한 여인이 옥님아, 옥님아 하고 부르며 바닷가에 나타났다. “아저씨 혹 배낭을 진 여자 못 봤어요?” 그 여자가 성대에게 다가와 그리 묻자 바위에서 일어난 성대는 얼른 동굴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앞장서 걸었다.

그의 예감처럼 여자는 거적을 깐 동굴바닥에서 심한 동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산직전 같았다. 새로 나타난 여자는 급히 들어갔지만 성대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끙끙 힘쓰는 소리와 뼈를 긁는 울부짖음에 이어 앙,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옥님아, 옥님아,”

울음소리사이에 섞인 안타까운 부름, 잠시 후 입구를 가린 헌 담요를 들치고 여자가 성대를 불렀다. 다급한 얼굴빛으로 발까지 동동 구른다.

 

아저씨 좀 도와주세요, ?”

성대는 급히 들어갔다. 산모는 정신을 잃은 모양, 길게 늘어져있고 탯줄에 매달린 아기는 눈도 뜨지 못한 채 팔을 휘저으며 앙앙 운다. 풍랑을 만나기 전 만삭이 된 아내를 보며 들여다 본 산부인과 책 몇 구절이 떠올라 얼른 다가간 성대는 여자가 준비해 온 가위로 탯줄부터 잘라냈다.

 

그 다음 무작정 여인을 들쳐 업었다. 습한 해풍이 싸늘하게 엉킨 동굴 속에 더 이상 해산한 여자를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윗저고리를 벗어 정신 잃은 산모를 감싸 업고 동굴을 나섰다. 아기를 안은 여자가 뒤따랐다.

성대는 무작정 집으로 달렸다. 따뜻한 아랫목에 여인을 눕히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끓였다. 여자가 그 물로 아기를 씻기고 아직도 혼미중인 애 엄마의 얼굴을 문질러 주는 사이 성대는 미역과 쌀을 씻어 솥에 안쳤다.

 

국이 끓고 밥물이 잦는 소리를 들으며 성대는 벌렁벌렁 기어올라 여인의 귀염성스러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고른 숨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이제 괜찮을까요?”

근심어린 여자의 물음이다.

. 곧 정신을 차리겠죠. 어찌 됐던 한적하던 우리 집에 한꺼번에 귀한 손님이 여럿 오셨네요.”

성대가 얼결에 대답했다.

아저씬 혼자 살아요?”

아니에요, 아들놈 하나 있어요. 이제 다섯 살인데 장난이 심해 늘 어둠이 내려야 들어와요.”

밖이 깜깜한데,”

이제 오겠죠. 근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이 여자 분은 왜 그런 싸늘한 동굴 속에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저씨 비밀 지켜줘요

나도 이 여자 분과 함께 있는 남자를 여러 번 봤어요. 신분이 높은 집 자제라고 들었는데

그러게요, 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신분이 뭔지,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하겠어요. 애까지 낳았는데 그 집에서도 결혼을 승낙할 수밖에요. 그렇지요?”

그리 될까? 그래야 되겠지만 성대에게는 왠지 그게 불가능한 일로만 생각된다.

 

그런데 아저씬 어디서 오셨어요? 고향이 개성인가요?”

왜요?”

말씨가 영

호기심 어린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성대가 히죽 웃는다.

전 저어기.......남조선에서 왔어요.”

예에? 남조선에서요? 어떻게 그런 일이?”

풍랑을 만나는 바람에.......이젠 많은 세월이 흘렀어요. 강성대라고 합니다.”

전 윤송녀라고 부릅니다. 이애 옥님의 언니 벌 되고요

 

침묵이 흘렀다. 성대를 보는 송녀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남조선 사람이라 하여 다르게 보는 눈치는 전혀 없었다. 그게 고마워 성대도 그때서야 여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옥님이처럼 앳된 얼굴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어쩌면 애를 가진 아주머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이 드나 봐요.”

옥님이가 움직거렸다. “그러네요.” 성대는 얼른 일어나 찬장에서 그릇들을 내렸다.

아기는 색색 잠들었고 송녀는 눈을 뜬 옥님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 다음 성대의 눈치를 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빗이 저기 있어요.”

성대가 솥뚜껑을 열며 송녀에게 일렀다.

갓 해산한 산모머린 빗으로 빗음 안 돼요.”

 

송녀가 그냥 손가락으로 산모의 머리를 빗겨 주는 사이 성대는 두리반 상을 가져다놓고 밥과 미역국을 떠올렸다. 국솥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화기가 돌았다. 남자가 상을 차리는 것을 두 여자는 신기한 듯 바라보며 눈을 맞춘다.

이 집은 아저씨 집이에요?”

옥님이 묻자 송녀가 먼저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인다. 고맙다고 재삼 말하며 머리를 숙이는 옥님의 눈에 그들먹이 눈물이 차오른다.

, 인사는 천천히 하고, 우선은 국밥부터 먹자. 집주인아저씨가 손수 끓였어.”

 

옥님은 눈물 속에 국에 밥을 말아 억지로 넘겼다. 입은 소태처럼 쓰고 가슴은 방방이로 두들기듯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그녀에겐 산후조리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 그건 혼인도 안한 몸으로 아기를 낳은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글쎄 처녀가 어찌 아이를 낳아, 이런 것도 생각안하고 남자에게 몸을 줬어?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따뜻한 인정미가 흐르는 방안이지만 두 사람이 그리 눈총을 쏘는 것만 같아 넘기는 국물이 아리기만 했다.

 

걱정은 또 있었다. 이 일을 호랑이 같은 순민이 아버지가 아시면? 더더욱 송구스러운 건 바로 자기를 친부모 못지않게 애지중지 길러 준 삼촌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사랑이란 것이 이런 커다란 후폭풍을 몰고 오는 것이라면 애초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정말 미칠 듯 순민을 따랐다.

 

그가 자기와는 상대도 안 되는 높은 간부집안 자제라는 것을 사귄지 썩 훗날에야 알았다. 알게 된 그때는 이미 뱃속에 순민의 아기가 들어있었다. 배가 불러오자 그걸 숨기려 엷은 가제 천으로 꽁꽁 싸고 다녔다. 엔간해선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해산기일이 박두한 며칠 전 갑자기 중국에 가셨던 삼촌이 돌아온다는 전화가 왔다. 몇 개월 동안 중국에만 있던 삼촌이었다. 집에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삼촌 앞에서 애를 낳을 수 없어 부랴부랴 필요한 짐을 꾸려들고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배가 이리 터질 줄은 미처 몰랐다.

 

 , 아저씨 보기도 민망하다. 이따금 바닷가에서 스치던 아저씨다. 아저씬 늘 그리움이 가득한 눈으로 남쪽바다를 바라보았고 자기들은 그 앞에서 철없이 사랑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옥님은 성대가 남조선에서 온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왜 파도가 출렁이는 너럭바위에 앉아 소주병을 기울이는지도 안다. 언젠가 순민이가 나오지 않은 기회에 마침 바다로 나온 성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확실히 여느 남자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묻는 대로 솔직히 대답해 주는 그 소박한 얼굴에서 왠지 전염되듯 물씬 풍기는 인간미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 다음부터는 자연 성대 앞에서 유쾌한 사랑놀이를 하지 못했다. 내용을 모르는 순민은 어린애처럼 웃고 떠들었지만 옥님은 거기에 장단을 맞출 수 없었다. 가슴에 응어리로 맺힌 그리움이 있는 사람 앞에서 웃는 자기들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비참한 사랑결과를 마침내 아저씨에게 보이고야 말았다. 정말 어찌해야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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