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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02 11:16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38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378  

하지만 어인 일인지 아저씨가 판판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근심과 걱정은 다른데 있었다.

순민은 시당조직부장의 아들이었다. 높은 당 간부의 집이어서 자기 같은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줄 리 없었다. 화교 집 딸이란 신분으론 절대 같이 섞일 수 없는 집안이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그건 순민의 마음뿐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자기와 헤어질 수 없다는 남자, 세상 어디를 둘러 봐도 너만큼 내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 온 여자가 없다며 밤낮 자기만 안고 돌았다.

 

 그까짓 신분이 뭔데? 인적 없는 산간오지에 구겨 박혀 살더라도 너만 곁에 있으면 그 오지가 천하의 무릉도원이 될 거라며 맑게 황홀하게 웃어준 남자다. 사실 그건 단순해 보이는 말 같아도 갈래 치는 생각으로 몸부림치는 옥님에겐 밤바다의 등대 불처럼 소중한 것이었다. 남자는 쉽게 눈앞의 행복에 빠져 뒷생각 없이 던질 수 있는 말이어도 여자는 그렇지 못했다.

 

시련은 곧 찾아왔다. 순민의 아버지는 아들의 열애를 안 그 순간부터 거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직접 집을 찾아와 함께 있는 아들의 귀싸대기를 옥님의 보는 앞에서 후려쳤다. 사납게 쏘아보는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마침 삼촌이 중국에 들어가고 없었게 망정이지 계셨다면 삼촌한테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존심을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는 삼촌이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순민을 집에서 만나지 못했다. 늘 바닷가였다. 이제 삼촌도 나오시고 언제까지 낳은 아기를 숨길 수 있을지 불안의 그늘만 눈앞을 흐린다.

 

숟가락을 든 채 물끄러미 성대를 바라보는 옥님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괴어올랐다.

성대도 그 눈을 바라본다. 난 어쩌면 좋아요? ? 여자의 눈이 그리 묻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게 될 줄 전혀 모르고 덤볐냐고 콱, 욕하고도 싶었다. 이제 20대 초반, 이른 봄날 파란 시냇물에 드리운 버들잎 같은 나이다. 저 나이에 성대도 결혼이라는 걸 했다. 전쟁고아인 앞집에서 살았던 선영이와 결혼했을 때 세상을 통짜로 가진 듯 가슴이 뿌듯했었다. 그때 선주였던 아버지가 반대했다면 그건 오히려 사랑을 더 불타오르게 만들 촉매제로 되었을 것이었다. 옥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성대는 아무 걱정 말고 이 집에서 산후조리를 잘하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사흘 후 순민이가 찾아 왔다. 훤칠한 키, 쭉 빠진 골격, 너부죽한 얼굴, 어디를 봐도 잘생긴 남자다. 홀아비 집에 숨어 살며 마음고생으로 망가진 옥님의 모습을 보며 남자는 가슴이 아파 눈시울을 슴벅거렸다. 성대에게 고맙다며 난 이제 어찌해야 좋은 가며 가슴을 두드렸다. 갖고 온 술을 부어 마시고는 취기가 오르자 성대를 붙잡고 엉엉 울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부모의 반대가 엄청 큰 마력으로 아들을 괴롭히는 모양이었다.

 

세상은 참, 춘향이 때문에 올 가슴 태운 이몽룡이면 이보다 더할까? 아무튼 어떤 경우라도 남자는 여자를 끝까지 품어주어야 그게 남자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연애라면 몰라도 이제 아이까지 낳았는데 처자를 버리면 그게 짐승이지 아니 짐승도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나름 열심히 일렀다.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자리에 누워 있는 옥님이가 오히려 더 침착했다. 너무 비관 말라며 나는 괜찮다고 남자를 다독이기까지 했다.

 

송녀 역시 한시도 옥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수척해진 몸을 추세우려 온갖 성의를 다했다.

며칠간 한집에 살며 알았지만 송녀도 일찍 시집을 갔다가 바다에서 남편을 잃어버린 여자였다. 남편이 남긴 아들과 어렵게 살면서도 올 적마다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갖고 오군 했다.

 

순민이도 산후에 좋다는 잉어나 돼지 족발 같은 것을 싸 들고 매일이다시피 찾아왔다. 성수가 난 것은 성대의 다섯 살 난 아들 홍범이 뿐이다. 너희들 복잡한 세상살이나 남녀 문제 같은 건 너들이 알아 할 문제고 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매일 배터지게 먹을 수 있으니 그거면 세상 부러운 것 없이 행복하다는 눈치다. 볼이 미어지게 먹다가도 이윽히 눈길을 주면 머쓱해 히히 웃는 애 모습이 귀여워 옥님은 오랜만에 해죽 웃었다. 왠지 여인의 그 미소가 성대에게 야릇한 슬픔을 가져다주곤 했다.

 

3

일이 크게 벌어진 것은 보름 쯤 날자가 흐른 뒤였다. 옥님이가 해산한 며칠 후 중국에서 돌아 온 모영민은 수하로부터 엄청난 소식을 들었다. 서면으로 작성된 조카의 신상을 읽는 모영민의 얼굴 근육이 푸들거렸다. 화가 날 때면 모영민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볼부터 실룩거리는 습관이 있다. 아마 그러한 습관은 그의 정치인생으로부터 산생된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노선과 사상에 매인 공산당원은 함부로 가진 견해를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백 번 참을 줄 알고 입술이 터져도 불필요한 말은 삼갈 줄 알아야 그게 진정으로 사상이 바로서고 노선에 운명을 맡긴 사람의 자질이었다. 가다오다 멎는 바람소리에도 징징거리는 양푼처럼 입은 물론 행동이 가벼워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논리의 삶이 그에게 말에 앞서 볼을 실룩거리는 버릇을 굳혀 주었는지도 모른다.

당 간부의 아들과 중국인을 양삼촌으로 둔 여자와의 관계는 그것이 인연이라 해도 기필코 성사될 수 없음을 모영민도 잘 알고 있었다.

 

모영민은 6,25전쟁 이후부터 조선정계에 관여해 왔다. 십대의 나이에 선발대로 항 미 지원을 나온 그때만 해도 그는 정치가 뭔지 몰랐다. 미군의 한반도 진입으로 전선이 붕괴되고 다시 북으로 밀리던 그때 운 좋게도 그는 조선왕자의 중국행을 보좌하게 되었다. 그것이 운 좋은 건지 아니면 조선과의 뗄 수 없는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 건지 그때부터 지나 온 지금까지의 세월은 그를 모국이 아닌 조선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압록강을 건널 뗏목을 기다리던 때 불의에 나타난 미군기의 기총소사로부터 몸을 덮어 왕자를 보호한 그의 공적은 이후 조 중 친선과 혈맹 국으로의 승화에 한몫 단단히 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때 총탄에 맞은 상처자리는 아직도 선명하게 그의 몸에 새겨져 있다.

옥님은 모영민의 친형 모사영의 수양딸이다. 모사영은 조선에 거주해 산 화교였는데 어인일인지 자손이 없었던 관계로 전쟁 이후 고아원생인 옥님이를 입양했다. 핏덩이로 입양한 옥님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모사영 부부는 전염병으로 인해 그만 저승으로 가게 된다.

 

모영민은 형이 남긴 어린 양조카를 못 본 척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형을 대신해 반듯하게 키워놓고 싶었다. 그것이 조선정계에 발을 들인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것으로도 생각했다. 그는 장가도 가지 않고 옥님을 위해 살았다. 그들을 부녀로 착각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양 조카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관계로 지금 실망도 컸다. 더욱이 그를 격분케 한 것은 시 당 위원회조직부장이란 자의 거칠 것 없는 무도함이었다.

 

모영민이 누군지 잘 알고 있음에도 옥님에게 그런 박대를 한다는 것은 바로 모영민 자신을 향한 적대감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시켜 강성대의 집에서 옥님을 불러들인 모영민은 날을 잡아 순민의 아버지인 시 당 조직부장 박지언을 집으로 초대했다. 푸짐하게 차린 음식상에 마주앉아 손수 중국에서 갖고 온 술을 따랐다. 어느 모로 보나 인간적인 면에서는 부장이 그의 윗사람이었다. 그는 모영민보다 나이가 몇 살 위였다.

 

이렇게 마주 앉게 된 것만으로도 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모영민의 첫 말이었다.

영광? 그거 치레로 하는 말 아니요? 난 당신에게 이런 술대접을 받을 만큼 우호적이지는 않소. 뭐 받기는 하겠소만

“?”

, 뱃속이 꿈틀하고 살 빠진 볼에 경련이 인다. 그는 쥐어준 잔의 술을 말끔히 비우는 박지언을 표독스런 눈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생각 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금 나불거린 그 오만한 입을 한방 쥐어박고 싶었다. 속내를 감추는데 제아무리 이골이 난 사람이라 해도 분노를 억누르는 그 모질음을 상대가 모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박지언은 제법 여유까지 부리며 뇌까렸다.

 

알면서 왜 이러시오? 난 당신이 공과 사는 분명이 가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우리노동당은 순결한 당이요. 얼룩진 이력을 갖고서는 그 신성한 대열에 끼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이런 자리는 왜 만든 거요? 그냥 한 배를 탄 사람끼리 파티로 알고 마신다면 몰라라

이윽히 주시하던 모영민은 그만에야 히죽 웃음을 보였다. 허한 웃음이었다. 그 자신도 그러한 장소에서 그런 웃음을 보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웃는 걸 보니 내 말의 뜻을 알겠는 모양이군. 그럼 난 가보겠소.”

 

잠간

모영민은 서둘러 일어서려는 박지언을 눌러 앉혔다. 그 다음 느슨한 어조로 물었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데서 나오는 겁니까?”

자신감?”

그래요, 옥님이 그 앤 조선여자입니다. 난 알다시피 중화민족이고, 국적이 다르지만 우린 아무런 문제없이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글쎄 그 앤 그렇다 치더라도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 하지요? 일을 저질러 놨음에도 가문의 입지를 위해 박부장께서는 친손녀까지 배척하려는 겁니까?”

 

박지언이 피식 웃었다.

난 배척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소. 정 힘들다면 곧 날을 잡아 애는 데려가겠소. 하지만 아직 핏덩인데 어미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지 않겠소?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우리 정부와의 어떤 관계를 빌어 내게 타협안을 찾아보려는 것 같은데 택도 없는 짓 그만두시오. 난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같은 밭에 자란다고 해서 모두 먹을 수 있는 작물은 아니지 않소. 잡초를 제때에 뿌리 뽑지 않으면 원대가 피해를 본다는 것쯤은 당신도 알고 있을 터인데......”

 

모영민의 눈에서 푸른빛이 번쩍했다. 박지언은 물러갔지만 장밤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거친 모욕에 대한 반발을 좀처럼 삭일 수 없었지만 당장은 어찌할 수 없었다. 당시는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려 하던 때였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정부는 극도로 신경이 팽팽해져 있었다. 조선지도자들은 그런 결정을 내리고 집행하려는 중국공산당지도부를 마치 사회주의를 버리려는 배신자처럼 생각했다. 파견된 외교관들도 이럴 땐 상대를 자극하는 일은 삼가야 했다.

 

모영민처럼 타국관리로 외교사업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현지당지도자들과의 정면마찰은 피해야 했다. 그건 양국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일이었다. 그럴수록 조카에 대한 서운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가슴을 메웠다.

모영민은 당시 나이 40을 넘었어도 이성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성을 사랑해 본적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애정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건 맡은 직책상 책임감이었고 현재와 미래를 대비한 전략적 구상과 실현에 관한 원대한 방안뿐이었다. 그것이 곧 조선이란 타국에 자신을 믿고 파견해준 모국공산당에 대한 절대적 충심이라 생각했다.

 

석 달쯤 지나 처음으로 조카의 방에 들어가 봤다. 별 생각 없이 들어선 참이다. 마침 옥님은 없고 아기만 태평스레 자고 있었다. 그 앞에 앉아 색색 고른 숨을 뿜는 뽀얀 얼굴을 멍청히 들여다보노라니 문득 조그만 여자애가 어떻게 이런 큰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슬그머니 아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댔다. 나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이렇게 큰 사람이 되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미묘한 충동에 이끌려 아기를 거쿨진 손으로 안아 올렸다.

 

얼굴가까이로 가져오자 자던 아기가 번쩍 눈을 뜬다. 그러고는 벌쭉 웃어준다. 소리 내어 울 것 같아 조마조마했는데 이빨도 없는 잇몸을 드러내고 환히 웃는 것이 막 깨물어 주고 싶도록 온 몸을 쩌릿쩌릿 흥분시켰다. 덩달아 히쭉 따라 웃었다. 스스럼없이 나온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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