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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02 12:34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39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355  

, 어 무슨 알지 못할 소리를 내며 아기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발까지 흔들며 두리두리 사방을 살핀다. 모영민은 저도 모르게 아기의 볼에 쩍 입을 맞췄다. 순간, 찌르르 몸을 관통하는 전류에 화들짝 놀라 모영민은 황겁히 아기를 눕히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거실 소파에 앉아 훌렁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난생 처음 가져보는 감정이었다. 다시 가져보기 힘든 소중한 것을 밀어버린 기분도 들었다. 밖에 나갔던 옥님이가 그때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다시 아기 방에 갔을 것이었다.

 

모영민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여태 여자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 그리도 동분서주하며 살았던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가정을 중시하며 사는 작자들을 속세를 벗어나지 못한 무지렁이로 은근히 경멸하며 살아 왔었다.

하나 지금은 그 반대다. 그들이 아닌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사상과 노선에만 매달려 머슴처럼 육신을 놀려온 허깨비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메웠다. 방금 맛본 것이 금방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알알하게 맺혀왔다. 아프면서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이건 대체 무슨 감정이란 말인가? 이러한 감정을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까, 쉽게 지워버릴 수없는 여운이었다. 그 여운은 푸르고 연한 잎사귀에 매달린 새벽이슬이 햇빛을 받은 때처럼 지금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매달려 맑고 영롱한 빛을 발한다.

 

저어......”

옥님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것도 그는 듣지 못했다.

삼촌, 하고 재차 불러서야 엉? 하며 두 눈을 번쩍 떴다.

부탁이 있어서요.”

?”

제 언니 벌 되는 윤송녀라는 언니가 있는데요. 삼촌도 봤잖아요.”

, 그래서?”

저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았음 해서요. 삼촌은 또 중국에 들어가실 것 안예요

그래 며칠 있다 가긴 간다만 근데 그 여자는 집이 없냐?”

있어요. 세 살 난 아들도 있고, 남편은 사고로 죽고 홀몸이 된 여잔데요 같이 있고 싶어요.”

그래, 네가 좋다면 그리해라. 젖먹이를 안은 널 홀로 두고 가기도 그랬는데 마침 잘 됐구나. 무슨 일을 하는 여자냐?”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마음이다.

 

아직은 애가 어려 그냥 배급 삼백 그램 받고 집에서 놀아요.”

남편이 없다며? 누구 앞으로 배급을 받는다는 거냐?”

남편 직장이죠, 노동재해로 잘못돼 애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진 배급이 나온다고 해요.”

그렇구나. 이 너른 집에 못 있을 건 또 뭐냐? 그깟 배급은 무슨, 내가 돌봐 줄 테니 너흰 애나 잘 키우는 게 좋겠다.”

삼촌 고마워요.”

고맙긴, 그건 남에게나 하는 소리다. 한데 이젠 마음이 좀 가라앉았냐?”

그 나쁜 놈한테서는 소식이 없고?”

순민오빠도 지금 괴로워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가보는 수밖에

 

모영민은 머리를 끄덕였다. 옥님의 말이 맞다. 지금 무얼 할 수 있을까, 부장인지 뭔지 애비 되는 놈 꼬락서니를 봐도 그 앞이라는 것이 훤히 내다보인다. 그렇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아 모영민은 흠흠 기침을 하며 물끄러미 옥님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 솟구쳤다. 문득 옥님이가 조카가 아닌 여자로 보였다. 허상인가? 해맑은 얼굴, 육감적인 몸, 순해 빠진 부드러운 눈매, 얘가 정말 내가 키워 낸 조카딸인가? 형 내외가 돌아가자 빌빌 울기만 하던 일곱 살잡이 계집애로만 늘 보아왔고 또 보였다. 그런 어리고 보호해야만 살 수 있었던 애가 지금 애를 낳고 남자가 그리워 울고 있다.

 

지금껏 40여년을 훌쩍 살았어도 모영민이란 남자 때문에 울어 준 여자는 없었다. 그자신도 어떤 여자를 그리워하며 애태운 적이 없다. 그런 감정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여자, 여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자에게 있어 그 남자란 것은 또 무엇인가? 비로소 지금 조카도 여자라는 사실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여자가 구덩이라면 거기에 불쑥 빠져보고 싶은 욕망까지 울뚝 치밀었다. 모영민은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들킬까 보아 얼른 돌아앉았다.

저녁 무렵 송녀란 여인이 짐을 싸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 집은 모사영이 돈을 들여 알심 있게 지어놓은 집이었다. 거실이 있고 부엌을 내 놓고라도 방만 네 개나 된다. 영 들어와 사는 것도 아니고 해서인지 여인은 간단한 짐만 챙겨가지고 왔다.

 

두 여인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한 여자는 미혼녀로 아기를 낳고 또 한 여자는 갓 젖을 물린 아들을 가진 젊은 생과부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제 전문학교재학당시 둘은 각별한 친분을 맺었다. 전문학교에 다니던 순민이도 그 때 알게 됐고 또 연인으로까지 발전했다.

짐을 정리하고 송녀가 팔을 걷고 쓱싹 준비한 늦은 저녁상에 마주 앉는데 밖에서 뻐꾹, 뻐꾹 하는 청승맞은 소리가 들려왔다. 모영민은 감각 없이 수저를 들었지만 옥님은 안절부절 했다. 흘끔흘끔 눈치를 보다 슬며시 일어나 밖에 나간다. 나가는 옥님을 보며 송녀는 힐끔힐끔 모영민의 눈치만 살폈다. 별다른 기색이 없어 호, 하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는데 수저를 들던 모영민이 그러는 송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송녀는 그만 얼굴이 빨개져 아무소리 못하고 눈길을 깔았다.

 

뭔 일이 있는 거요?”

아니 아닙니다. 그저 그냥

근데 웬 한숨을.......밥상에 앉아 한숨을 쉬면 불민한 일이 생긴다고 연변사람들은 말하지, 근데 얜 수저를 들다말고 어딜 나갔지?”

.......그러게요. 곧 들어오겠지요.”

송녀가 얼버무리는데 모영민이 피씩 웃는다.

청승맞게 뻐꾸기 소리로 여자를 불러내? 담도 없는 녀석이,”

송녀의 입이 딱 벌어졌다. 얼빠진 년처럼 반쯤 입을 벌린 채 삼촌만 바라본다.

 

여자가 그리 좋은가? 제 애비의 미친 광증은 안 보이고? 그것참 아이러니 해, 이름이 송녀라 했던가?”

? , 예 윤송녀라고 합니다.”

모영민이 갑자기 우쩍 일어나 서재에서 봉인한 술병을 가지고 나왔다. 입도 쓰고 속도 컬컬한 모양 모영민은 서둘러 뚜껑을 열고 송녀가 얼른 일어나 가져다 놓은 빈 잔에 병을 기울였다.

제가 부을 게요

송녀가 엉거주춤 엉덩이를 일군다.

네가? 그래주면 나야 반갑지

송녀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무릎 꿇고 정히 술을 붓는데 모영민이 내가 방금 반말을 했군. 괜찮지?”한다.

 

, 제게도 삼촌인데요 뭐

몇 살인가?”

스물아홉입니다. 드십시오.”

송녀는 술 부은 잔을 두 손 받쳐 내밀었다.

스물아홉이라.......로꿍은 올 들어 횡사했나?”

로꿍이라면?”

남편 말이야,”

, 올봄에......”

아홉 고개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더니 참, 송녀도 한 잔 하지

아닙니다. 전 술이란 거 입에 대도 못 봤습니다.”

이해 돼. 중국도 그랬지 한데 개방바람이 일어서 그런지 요즘은 여자들도 술 잘 마셔

독한 배갈을 쭉 들이키는 모영민의 얼굴이 그냥 덤덤하다.

한잔 더 부을까요?”

송녀의 혀가 풀렸다. 생각 외로 모영민이 매우 소탈하다. 초면이지만 마치 구면처럼 스스럼없이 대해 주는 그가 송녀에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래

 

모영민은 술 붓는 송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빼어나진 않지만 개성 있게 생겼다. 둥근 형에 짙은 눈썹, 그린 듯 단정해 뵈는 몸가짐, 도톰한 입술 끝이 약간 위로 치어 들렸다. 어색하게 웃었지만 웃을 때마다 한쪽 볼에 보조개가 핀다. 가슴도 풍만하다. 젊은 기가 팔팔 살아 몸 구석구석에서 생신한 기운이 마치 휘파람 소리를 내며 뿜는 솥 김처럼 물씬 풍긴다. 이성의 냄새를 이리도 관심 있게 맡아본 것이 아마 모영민에게는 처음일 것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서도 모영민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맑고 청신한 이성의 자태가 환영처럼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이성은 다름 아닌 윤송녀였다. 꿈에서는 벌거벗은 송녀를 안았다. 한 번 본적도 없는 희고 큰 유방이 그의 동공 속에서 춤추듯 너울거렸다. 그게 왜 지금껏 잠자던 육신을 발칵 뒤집는지 모르겠다. 그것 역시 육신에 붙은 일개살덩이에 불과한 것임에도 왜 거기에 마구 머릴 틀어박고 몸부림치고 싶은지.......광증이 일었다. 거기엔 지금껏 가꾸어 온 의젓한 정부관리의 모습은 없었다. 천박하게 일그러진 얼굴만이 물끄러미 자기를 들여다볼 뿐이다. 그런 모습은 그의 이미지에 티끌이라도 자리해서는 안 될 추한 것임에도 말이다. 불쑥 깨어 후다닥 몸을 일으키는 그의 이마로 질펀한 땀이 흘렀다. 벌떡 일어난 모영민의 머리가 절레절레 가로 흔들렸고 입으로는 허한 한 숨이 김빠지듯 새어나왔다.

 

박순민은 마당 귀퉁이에 서있는 솔나무 뒤에 숨었다가 옥님이가 나오자 성큼 나서며 무작정 끌어안았다. 옥님은 그러는 순민을 이끌고 대문 밖 옆 오솔길로 빠져 뒷산에 올랐다.

나지막한 산이었다. 잡관목 없이 성글성글하게 들어 선 솔나무 사이에 자란 목란나무가 넙적한 잎을 드리우고 있었다. 여름이면 흰 꽃잎이 연분홍 꽃술을 안고 볼만하게 피어나는 나무였다. 푸른 솔잎과 흰 꽃, 연분홍빛 꽃술은 서로 잘 어울렸다. 큰길 가로등에서 비쳐오는 불빛이 짙게 드리운 어둠을 밀어내고 침대머리 등불처럼 숲에 안온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인지 이 목솔 숲엔 시내에서 연인들이 자주 찾아온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껴안고 솔밭에 앉은 커플들이 여럿 보였다.

 

목란가지에 매달린 무성한 잎에 몸이 감춰지자 옥님은 무작정 순민의 품에 엎어졌다. 그리고는 흑흑 서럽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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