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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2 23:51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40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58  

오빠가 정말 미워, 날 이렇게 만들자고 싫다는데 그랬어? 미워, 정말 미워.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마구 흔들어대는 옥님에게 밀리자 순민은 아래로 드리워진 목란가지를 잡고 몸을 가눈다.

울지 마. 널 버리지 않을 테니까 책임질게. 이젠 딸도 태어났는데, 좀 참아 줘 응?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너와 결혼하고 말겠어.”

진심이야?”

그래, 지금 너만 서러운 줄 아니? 집안을 도륙 낼 놈이라며 난 매일 아버지께 무지하게 두들겨 맞아. 옥님아, 우리 좀 더 기다려보자 응? 외아들인 내가 부모님께 이런 불효를 저지를 줄은 몰랐어. 매 맞아 싸지만

 

순민이도 울먹거린다. 그러다가 격하게 내쏜다.

근데 왜? 왜 우린 같은 사람인데 같이 살 수 없다는 걸까? 난 말이야 한시도 널 못 보면 못살 것 같은데 응? 옥님아

오빠

 

옥님이 순민의 발치로 꺼꾸러진다. 흑흑 물결치는 어깨를 한 손으로 쓸며 순민은 나뭇가지를 잡은 손에 으스러지게 힘을 준다. 바르르 입술이 떨렸다. 눈엔 금방 떨어질 듯 맑은 이슬이 가득 고였다. , 하고 손에 쥔 목란가지가 부러졌다. 부러진 가지 끝에 큼직한 물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졌다. 그건 마치 눈물 같았다.

 

두 사람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어떤 후폭풍이 불어 닥칠지.......아마도 박지언은 아들에게서 단 한순간도 감시의 눈길을 떼지 않은 것 같다. 이틀 후 끝내 악몽 같은 일이 터졌다. 그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끔찍한 재난이었다.

 

4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밥 잡숫지 않고,”

그래 너도 좀 들렴.”

옥님은 머리를 젖히고 숟가락에 뜬 밥을 입에 넣었다. 여느 사람처럼 정 바른 자세로 앉아 스스럼없이 밥을 넘길 수 없었다. 왼쪽 입술이 없어 머릴 들지 않으면 입에 넣은 음식이 도로 흘러나왔다.

곤혹스럽지만 쳐들린 상태로 입에 넣고 오른쪽에 옮긴 다음 조심히 씹어 목구멍을 넘겨야 했다. 그래도 오른쪽 입술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죽 쓸걸 그랬어요.”

괜찮다. 늘 그리 먹는 건데 뭐

너무 생각하지 말아요. 몸만 망쳐요.”

그래, 송녀 언닐 만났다니 저절로 지난날이 생각되는구나. 너도 알지만 그때 송녀언니와 너의 작은 외할아버지사이에 아들 하나가 있었더랬는데.......이름을 태수라고 지었었지

네 그 사람이 지금 중동탄광 갱장으로 와 있어요.”

그러냐? 삼촌도 그걸 알고 있냐?”

글쎄요, 그저께 저와 같이 작은 외할아버님도 조선에 나왔어요. 엄마를 보러 올 거예요.”

무어?”

 

옥님이 꿈쩍 놀란다. 그러고는 유심히 춘희를 살핀다. 그 눈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네가 말한 거냐?”

네 아무리 생각해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엄마 얼굴이 그렇다 해서 작은 외할아버님 앞에 나서지 못할 것까진 없잖아요.”

그만 해라.”

옥님은 그만 먹을 생각이 없는 듯 상을 물린다.

왜 더 잡숫지 않고, 조금만 더 들어요

아니다. 생각 없다. 먹을 만큼 먹었고,”

 

춘희가 상을 치우자 옥님은 정색한 얼굴로 딸을 불러 앉혔다.

 

춘희야, 너의 작은 외할아버진 내게 있어 부모나 같은 사람이다. 전쟁 통에 핏덩이로 고아가 된 내가 양부모를 만나 탈 없이 자랐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었다. 삼촌이 아니었다면 난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지. 삼촌은 나 때문에 귀국도 못하고 이 땅에 남았어. 평생을 두고 은혜 갚아도 못 다 갚을 사랑을 주었는데 난 그만, 고마운 삼촌에게 바르게 살아 보답은 못할망정 그런 험한 꼴을 보여드렸으니 내 죄가 어찌 가볍다고 하겠니. 지나고 보면 다 부질 없는 짓이었지만 그땐 순민이 그 사람이 없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 나 때문에 당하는 삼촌의 일에 더 이상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 상처가 아물자 난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 들었어. 갓 태어난 너의 존재도 이미 세상을 살 미련을 거둔 내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했단다. 미안하다. ......”

 

담담한 어조가 갑자기 흐려지며 가슴을 찢는 흐느낌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이제 무슨 명목으로 삼촌 앞에 나선단 말이냐. 넌 정말 괜한 짓을 했구나. 네가 커서 날 찾아냈을 때도 난 너를 피하려 했다. 정말이지 내가 무슨 염치로......”

알고 있어요. 모든 걸, 엄만 지금도 그 분만 생각하고 있죠?”

그렇단다. 하마터면 그리 말할 번 하며 눈가를 찍는 옥님의 얼굴이 금세 밝아진다. 순민은 얼굴을 잃은 그녀를 버렸지만 강성대 그 사람은 생에 미련을 거둔 여인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눈을 감을 만큼 처참한 상처를 가진 여인이었지만 그런 것이 성대에겐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치마를 뒤집어쓰고 한밤중에 바다에 뛰어든 옥님을 건져낸 사람도 다름 아닌 성대였다. 늘어진 옥님을 제집 아랫목에 고이 뉘어놓고 성대는 불우한 여인이 불쌍해 부들부들 떠는 연약한 몸을 부둥켜안고 슬피 울었다.

사랑을 잃은 것도 모자라 고운 얼굴까지 잃은 여인이 무엇을 바라고 살 수 있을까마는 아마도 성대의 그런 사심 없는 마음에 이끌려 다시 가늘긴 했지만 소생의 빛을 얻었다.

 

옥님은 세상이 두려웠다. 사람도 무서웠다. 강성대는 이후 옥님을 데리고 해변을 떠나 지금의 귀틀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본래는 자그마한 산전막이었다. 그러던 것을 성대가 뒷산에서 주어 온 넓적 돌로 온돌을 놓고 마당도 넓혔다. 산에서 손수 떠온 대추나무를 마당가에 심은 날 성대는 나무가 마치 사람이기라도 하듯 우두커니 마주서서 넋 없이 바라보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왜 그러는지 옥님은 안다.

 

성대가 살던 남쪽의 고향집에도 대추나무가 여러 대 있었다고 한다. 가을이면 익은 대추를 얹어 어머니가 해준 푸근한 밥을 목이 메게 먹었고 곱게 핀 대추나무 꽃 아래에서 선영이와 혼례도 치렀다. 아마도 그때 옥님이와 함께 대추나무를 심으며 성대는 떠나 온 고향을 가슴에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그렇게 부부가 되어 한집에서 살았다. 세상을 등졌지만 오붓하게 살았다. 옥님의 부탁을 받고 성대가 삼년 만에 모영민의 자택을 찾았을 땐 이미 모영민은 옥님이가 남긴 아기를 안고 중국으로 떠난 뒤였다. 지위를 위해 인성마저 저버린 자들이 보란 듯이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지.......

 

노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다시 조선에 나온 모영민은 바다에 빠져 세상을 등진 줄 알았던 옥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의 영향력이면 지옥에 가서라도 옥님일 찾아낼 수 있었다. 강성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본 모영민은 더 이상 옥님을 찾지 않았다. 숨다시피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 오히려 옥님에게 나을 것 같아 그리했던지, 그렇지만 관심까지 거둔 것은 아니었다.

지켜볼수록 고맙고 대견해 그때부터 모영민의 눈은 강성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얼마 안 있어 자택으로 그들을 불러들였다. 뜻하지 않은 일로 성대가 잡혀가지 않았다면 옥님은 이 산속귀틀집으로 다시 나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의 체취가 살아 있는 집, 외진 곳이어서 세상과 소통하기 싫은 옥님에겐 이 귀틀집이 좋았다.

 

아마 작은 외할아버진 이번 길에 엄마를 이렇게 만든 사람도 찾아볼 것 같아요. 저에게 분명 그런 뜻을 전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이제 와서 그런들

엄마는 모르시죠? 아버지가 왜 잡혀 갔는지 벌써 수십 년 세월이 흘렀군요.”

어차피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

왜요?”

몰라서 그러냐? 남조선에서 온 사람이었지 않느냐.”

정부정책에 의해 정착한 사람이었어요. 근면하게 일하셨고 양심껏 사셨다면서요. 그런데 왜? 엄만 정말 모르세요?”

그만해라. 오늘 왜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 거냐?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구, 제발 지금 하는 일에만 전념해라. 난 내가 당한 일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지금처럼 너희들만 무탈하게 살면 되는 거지, 무얼 더 바랄 게 있겠느냐 안 그러냐?”

 

옥님의 눈에서도 이슬이 반짝였다. 백 번 지당한 말이지만 엄마의 험상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노라면 모든 걸 접고 싶다가도 고개는 저절로 흔들려지고 가슴에선 불이 일었다.

홍안의 나이에 남자를 잘못 만나 한생을 잃어버린 엄마다. 여자는 사랑을 먹지 못하면 여자로 못산다고 했다. 남자의 사랑을 거름처럼 받아먹어야만 여자는 꽃처럼 피어나고 영근 열매를 잉태한다. 그런 삶의 자양분인 사랑마저 순간에 잃어버린 엄마, ? 저절로 바르르 입술이 떨렸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춘희에게 부디 해야 할 인생목표가 있다면 바로 엄마의 본 얼굴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그 자들이 보란 듯이, 이미 중국을 드나들며 이름난 성형외과의들을 여러 차례 만나봤다. 찍어간 사진을 분석하며 본래의 얼굴피부까진 아니더라도 형태는 찾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춘희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이 이번 걸음에 모영민이 만들어주는 초청장을 갖고 성진에 들어오는 대로 보위부외사처에 들려 엄마의 출국수속을 하고 왔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한 일이었다.

 

실은 엄마를 중국의 아닌 한국에서 수술하기로 매듭지었다. 중국의 성형의술로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이런 최첨단 수술이 아직은 무리라 했다. 지금 강 건너 연길조선족자치주에는 엄마를 모셔가겠다고 강성대사장이 직접 와 있었다. 아마 그래서 모영민도 선뜻 초청장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철들어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만날 때마다 친아버지처럼 친밀감을 주는 분이었다. 아마도 그건 아직도 변함없는 엄마에 대한 사랑과 관심 때문인지도 몰랐다. 전에는 엄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약한 남자로 보여 지금만큼 우러러 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그 성실성에 춘희는 감복해서 울었다.

이번 길에 홍범이도 들여보내리라 결심했다. 모영민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지만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에 대한 응당한 보답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근심도 태산 같았다. 강홍범이 과연 반역과도 같은 나라탈출의 길에 선뜻 발을 들이겠는가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물론 그간 여러 모로 대비는 했다.

 

엄마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다. 바깥에 나가 누구얼굴에 띠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가 태어나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을 중국여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춘희는 조심히 물었다.

열흘 쯤 후에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곳이 있는데 괜찮겠어요?”

그건 또 무슨, 내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중국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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