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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3 08:24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41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53  

 

"뭐?  이자 뭐라고 했냐?”

예상한 반응이다. 춘희는 차분한 표정으로 한동안 엄마를 직시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지금 중국에 나와 있어요.”

뭐라 아버지라니 누구? 홍범의 친부 말이냐?”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거냐?”

그때 보위부에 잡혔을 때 작은 외할아버지가 줄을 놓아 중국으로 빼 돌렸다고 해요, 이후 밀항으로 남조선에 돌아가셨는데 선친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나 봐요. 지금은 작은 외할아버지와 함께 길림에 한중합작분사를 설립한 관계로 자주 중국에 나와 계시는데, 아버지가 엄마를 부른 건 바로 엄마의 잃어버린 한생을 되찾아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잃어버린 한생을 되찾아 주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좀 알아듣게 말해 보아라.”

엄만 아직 젊어요. 어머니도 남들처럼 한 번쯤 세상을 휘둘러보며 살아봐야 할 것 아니에요 평생을 골방에서 지낸 지난날이 억울하지도 않아요?”

애야. 다시 좀, 정말 그 사람이 지금 날 불렀단 말이냐?”

예 그렇다니까요

 

춘희의 눈에 가랑가랑 고였던 눈물이 방울져 떨어진다. 강한 내성에 돋보이는 성격이지만 엄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춘희다. 옥님이도 매한가지였다. 갑자기 조용하던 심장이 발광하듯 요동친다. 이제 얼굴을 버젓이 들고 세상을 활보할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에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꿈에서도 그리워 밤마다 베개를 적셔주던 그 사람의 소식을 이렇게 갑자기 듣게 될 줄은 진정 몰랐던 듯싶다. 그 사람이라면 만 리길에 얼굴이 아닌 사지가 찢겨 너덜거린다 해도 왜 못 찾아갈까?! 이제 영원히 못 볼 줄 알았던 그리운 사람.......

 

사람의 정이란 어찌 보면 참 향기로웠다. 아니 너무 구수해 다른 맛은 전혀 깃들 곳을 찾지 못한다. 무인도처럼 사람하나 끼지 않는 적막고도에 살면서도 밤이 되어 눈만 감으면 시물시물 웃으며 찾아와 주는 사람이 있어 늘 가슴이 활랑 대곤 했다.

 

 역한 술 냄새를 풍겨도 어느 시궁창 속에 빠졌다 헤어 나왔어도 그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라면 왜 그리도 향기롭던지, 남편의 냄새는 아무래도 좋았다. 세월을 타고 옥님은 늘 남편의 냄새를 쫓는다. 얼굴은 가물가물 잊혀가도 눈만 감으면 남편의 체내에 숨었던 냄새가 응당 제 깃들 곳인 듯 살금살금 기어든다. 그럴 때면 흠, 흠 코 날개가 춤을 추고 답답하던 목구멍이 화악 열린다. 황홀했고 행복했다. 내가 사람 축에 끼지 못할 만큼 불행한 생명이라는 생각이 그 순간만큼은 자취를 감춘다.

 

지금 당장 문을 열고 나 왔소, 하고 들어서는 것만 같아 훌렁대는 가슴을 부둥켜 잡고 한밤을 지새운 날이 그 얼마였던지, 익숙해지기까지는 묵은 갈등을 견뎌야 했다. 남편을 볼 수없는 많은 날들은 옥님에게 있어 진정 지옥이어서 한때는 미친 듯 발광도 했다. 죽으려고 연 며칠 밥도 먹지 않았다.

그랬어도 종당에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편이 두고 간 어린 아들, 신통히 남편을 꼭 빼 닮은 그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야만 했다. 살자니 눈물이 솟구쳐 그때마다 어린 아들을 안고 불공평한 세상을 저주했다. 춘희를 낳고나서 자살을 시도했을 때 어디선가 지켜보던 성대가 나서서 구해 줬다. 살만해지니 그 다음엔 기둥이고 희망인 남편마저 잡혀갔다. 그래서 또 죽으려고 결심했다. 만약 홍범이마저 없었다면 옥님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열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소식에 옥님의 얼굴엔 생기가 넘쳐났다.

그런 엄마를 보며 춘희는 문득 어제 광산선광장에서 본 박상도가 생각났다. 지금 그 너부죽한 얼굴이 엄마의 얼굴 옆에 그림처럼 그려진다. 박상도가 바로 엄마의 첫사랑이었던 박순민이다. 박순민이 박상도로 명씨 개명을 했다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춘희에겐 너무나 잔인한 아버지였다. 그래서인지 춘희는 단 한 번도 그를 아버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춘희의 머리가 아래로 꺾였다. 비련의 딸로 부모의 기구한 운명을 스스로 걸머져야만 했던 여인, 곁에 살면서도 마주 앉을 수조차 없는 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기막힌 운명,

아마 박상도는 광산의 구세주 같은 여인이 젊은 시절에 잃어버린 친딸임을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도 순민의 이후 행적은 감감 모르고 지금껏 사셨다. 알 기회도 없었고 알아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춘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러지 말자고 엄마를 만날 때마다 마음 다지곤 했었다. 목전의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의지와는 달리 엄마의 얼굴에서는 늘 지난날의 아픈 추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잃어버린 평생을 이런다고 보상 받을 아무런 담보도 없지마는 지울 수 없는 상처는 늘 거머리처럼 그녀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때 치마를 뒤집어쓰고 검푸른 바다에 뛰어든 엄마의 심중이 충분히 이해된다. 춘희 역시 지금 살고픈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았다. 모영민은 춘희를 키우면서 많은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되돌림이라 할까? 그래서 춘희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나름 꿈에 부풀어 앞날의 미래를 설계해 보기도 했다. 하나 둘 가정 사에 얽힌 풀 수 없는 매듭들을 알게 되는 때부터 춘희에겐 부푼 미래보다 현실로 닥친 어두운 음영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모영민의 주관하는 무술학교정보반과 경영학원에서 무술뿐이 아닌 금융을 배우고 경영을 배울 때만 해도 당장 다가오는 것 같은 화려한 미래에 가슴이 부풀곤 했다. 그렇지만 철들어 국적을 회복하고 조선에 나왔을 때 그녀는 이미 꿈에 부풀어 미래를 향해 웃는 천진난만한 소녀가 아니었다. 혜산에서 학생신분으로 한창 운동에 관여하던 때와 달리 여린 그녀 가슴엔 이미 문득 알아버린 가족사의 참혹한 결과를 만든 장본인들을 찾아 기어코 복수해야 한다는 적의만 가득했다.

 

그 적의는 바로 이곳 산자락의 귀틀집에서 숨어 살다시피 하는 엄마를 만나면서부터 더 강렬해졌다. 모영민이로서는 태어나자 엄마를 잃어버리고 산 춘희에게 아직 건재해 있는 친모를 더 이상 숨길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그건 춘희뿐이 아닌 옥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밖에 나가기도 힘든 험한 얼굴을 가지고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 바로 강성대라는 남조선에서 온 한 아저씨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가슴적시는 고마움에 눈물지은 춘희다. 고마움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아저씨마저 엄마를 더 이상 지켜줄 수 없었다고 한다. 아저씨가 남기고 간 아들 때문에 죽을 수조차 없었다는 어머니의 품에서 홍범은 성장했다.

 

모영민의 들려준 이야기는 춘희의 가슴을 울렸다.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어머니와 얽힌 강성대에 관한 사연이었다, 남쪽 고향으로 돌아간 강성대는 부모가 남긴 유산을 상속받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잦은 한국방문으로 모영민은 여러 번 강성대를 만났다. 지금 강성대에게 있어 사활적 문제는 바로 하나뿐인 아들의 귀환이라 했다. 모영민이 아니었다면 강성대는 보위부에 연행된 후 다시 오지 못할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모영민은 늘 춘희에게 일렀다. 강성대가 있어 오늘의 너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춘희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마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있는 이붓 오빠 강홍범을 주시했다.

출신의 덕을 입어 인정을 받지 못하는 남자, 뛰어난 육상실력을 갖고 있어도 홍범은 삽을 들고 일하는 논두렁치기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때가 되면 강을 넘겨 아버지의 품에 돌려보내야 할 사람이었다. 춘희는 작은 외할아버지인 모영민으로부터 강홍범을 중국으로 탈출시켜야 할 임무를 받고 나왔다고 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탈출이란 말을 꺼내기는 무리였다.

 

강홍범은 춘희의 그 같은 내적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뜻밖에 찾아 온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자가 동생이라는 사실에 감지덕지했을 뿐이다.

옥님에게는 그것이 다행일 수밖에 없었다. 농장에서 일함에 있어서나 사람들을 대하는 인품을 봐서나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성실한 홍범이어서 이제는 떠나간 사람의 후유증도 잿불처럼 사라지고 맘 편히 살아갈 만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도 이젠 장성해 어엿한 숙녀로 곁에 돌아왔다. 그저 바라는 게 있다면 아무 일없이 무난하게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것이 그녀의 소박한 바람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에 나온 춘희의 생각은 달랐다.

 

홍범은 결코 무난하게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출신이 아니었다. 정치범으로 잡힌 아버지의 탈출, 이어 국경을 넘어 적국인 이남에 돌아간 사람의 아들이 평생 아무 일 없이 무난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폭풍은 처음부터 거센 것이 아니었다. 정적 뒤엔 반드시 예상 못한 굉음이 숨어있게 마련이다. 언제 어느 순간에 폭풍이 쓸어 닥칠지 심히 우려되는 고요 속에서 이제 남은 마지막 카드는 한시바삐 홍범을 서울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출생의 긴박한 순간에 손을 내밀어주고 엄마를 지켜준 아버님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와 같은 일을 과감하게 진행시키기에는 홍범의 마음이 너무나도 유약했다.

 

그저 시키는 대로 굽실거리며 사는데 습관이 된 사람을 무슨 수로 나라를 떠날 담대한 결심을 가지게 만들지, 기계라면 뜯어 고칠 법도 하다. 하나 그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굳어진 의식에 나라탈출을 권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현재로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해야만 했다.

춘희는 강홍범과 같이 지내면서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가족사에 얽힌 사연을 모르는 주위 환경을 이용하여 겉으로는 부부로 행세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중동일대에서 그들을 부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홍범에게 여자가 생기고 애까지 낳게 된다면 더더욱 나라탈출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물론 최춘희가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엄마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처한 환경이 그녀의 의식에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모영민의 후원으로 강 건너 개방된 땅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경력이 그녀에게 그런 담대한 결심을 가져다 준 계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춘희 자신도 이 땅에서 무리 없이 일을 진척시켜 나가려면 그러한 배경이 필요했다. 아이를 가진 젊은 과부보다는 가정을 가진 여자로 면전에 나서야 면목이 서는 일이기도 했다.

 

춘희에게는 그것 외에 또 다른 할일이 있었다. 대체 얼마만큼 잘난 사람들이기에 그렇듯 한 여자와 그 가족의 인생을 넝마처럼 찢어놓고도 지금껏 무난하게 활개를 펴고 살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늘 군중위에 군림했고 마치 성인군자인양 추한 면을 가리며 자기들만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부렸다.

 

 들춰 보면 악취가 진동하는 그 몸뚱이 앞에서 굽실거려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당당하게 그자들을 부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렸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못할 것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춘희는 이발사라는 최하급의 신분으로 기간 간부인 당 일꾼까지 손에 쥐고 흔든다. 알고 보면 별로 잘난 자들이 아니었다.

 

 주어진 권한과 수단으로 자기 것을 될수록 많이 만들려 동분서주하는 무리들을 보며 처음엔 냉소를 했고 그 다음엔 허탈에 빠졌다. 그까짓 돈이 무엇인지.......급이 높은 자들일수록 돈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했다. 그러면서도 군중면전에서는 돈이 아닌 사상과 노선에 충실한 사람으로 자기들을 추앙했다.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3000여명 종업원을 거느린 당비서라는 직권을 가진 박상도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춘희가 중국연변변강무역공사와 손을 잡고 광산의 생산물인 흑연납품을 성사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박상도의 권력은 물먹은 흙벽처럼 무너졌을 것이다.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무능한 실력으로 지금 같은 현실 속에서 실실거리다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잡술 저녁까지 준비해 놓고 돌아갈 채비를 하던 춘희는 다시 엄마 앞에 앉았다.

어머닌 정말 모르세요?”

무얼 말이냐?”

어머니 얼굴에 강수를 부은 악당 말이에요.”

글쎄, 직접 얼굴을 보면 알겠는지, 근데 그건 왜 또 묻는 거냐?”

그냥요, 알고 싶어서요. 한 여자의 인생을 망가뜨린 자를 딸로 생겨 영원히 모르고 산다는 게 어쩌면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요.”

모르는 게 차라리 낫지 다 지나간 일이다. 알아봤자 이제 와서 뭘 어쩌려고 넌 참, 얻어 쥘 건 아무것도 없는 일이 아니냐.”

정말 알면서 저한테 숨기는 건 아니죠?”

그렇다니까,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근데 왜 갑자기......”

난 알고 싶어요. 뭘 어쩌자는 건 아니에요 그냥

잊으래두.......애야 하나만 부탁하자.”

뭘요?”

모른 척 했다지만 어떻게 연통을 넣어 내가 송녀언닐 한 번 만나볼 수 없겠니?”

만나서 무얼 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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