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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02 13:39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44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53  

                                                                              

                                                                               6

사흘 후 두 번째로 윤 씨는 춘희를 만났다. 이번엔 춘희가 먼저 윤 씨를 찾아와 옥님이가 사는 귀틀집으로 모셔갔다. 윤 씨를 마당까지 모시고 나서 춘희는 천천히 뒤돌아 내려왔다.

올라올 때만 해도 날이 훤했지만 골 안에 들어서자 이내 어두워졌다. 윤 씨는 어둑한 마당을 한 번 휘, 둘러보고는 출입문을 두드렸다.

이것 봐, 옥님이 예서 산다며? 내가 왔어,”

언니

송녀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은 듯 벌컥 문이 열리고 옥님이가 천방지축 뛰어나온다. 맨발이다. 두 사람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 발 한발 다가선다.

옥님아,”

언니야

젊었을 때 부르던 목멘 부름이 한 덩이가 되어 마당을 울렸다.

헤어져 어언 30여년 세월이 흘러도 항시 가슴 한구석에 알알이 맺혀있던 그리움이 이 순간 눈물로 폭발했다.

이게 얼마만이요 으응?! 으흐흐.......”

산 위에 조성한 다락 밭에 물을 대기 위해 끌어들인 전기선에서 따온 방안조명이 어두워진 마당을 희끄무레 비췄다.

 

이리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서로 모르고 있었다니,

조금 후 방에 들어와 구들에 앉으면서까지 윤 씨는 눈가를 훔친다.

그러게요, 며칠 전 춘희가 와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모를 번했잖소. , 언니

어디 보자구, 다친 얼굴은 괜찮겠지,”

윤 씨가 옥님의 고르지 못한 얼굴을 전등불을 빌어 유심히 들여다본다.

괜찮소, 언니도 참,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으흐흑 으으으

이윽히 들여다보던 송녀가 왈칵 오열한다. 꺼이꺼이 울며 하소연 하 듯 가슴을 치며 웅얼거린다.

 

그 곱던 얼굴은 어따 다 팽개치고.......억장이 무너지는구나, 으흐흑.......그때 너의 별 같던 눈동자며 웃을 때면 그리도 귀엽게 피던 보조개는 대체 어느 귀신이 다 씹어갔단 말이냐 엉? 옥니임아.......”

송녀의 거쿨진 손이 향방 없이 아문 옥님의 상처자리에서 이리저리 헤엄친다. 입에서는 산천을 흔드는 통곡이 터져 나왔다.

그만하오언니. 다 지나간 일이요. 이 나이에 젊었을 적 보조개 타령이 웬 말이요 예? 으흐으으으........”

 

삼라만상이 아무리 기기묘묘한들 어둠이 덥힌 다음에야 뉘가 알아보랴만 송녀에게는 지금 옥님의 두드러진 상처 속에 숨겨진 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마도 그건 어젯밤 찾아왔던 춘희의 얼굴이 옥님의 상처 입은 얼굴위에 고스란히 덧 씌워져 그리 보이는 것이리라. 너무 아까웠다. 아쉬웠고 통분했다. 외인의 마음이 이럴진대 당사자의 쓰린 마음이야 무엇에 비길까, 올려 쓸고 내리쓸고 목울대가 아프도록 흐느낀들 사라져 간 아름다움이 되올 리 없건마는 송녀는 그냥 옥님을 안고 놓아줄 줄 모른다.

부뚜막에서 귀뚜라미가 하염없이 울었다. 하 많은 그네들의 설움이 고스란히 녹아든 구슬픈 곡이다. 지난 세월이 두 사람 사이에서 다시 살아났다. 기억에서 멀리 쫓아버리고 싶었던 것들이 때를 만난 듯 소리치며 몰려왔다. 몰려올수록 쏟아지는 눈물, 한숨, 분노, 허탈감, 텅 빈 가슴은 마냥 쓰리고 허전했다. 이맘때면 들리는 밤새의 정겨운 울음소리마저 그들은 듣지 못했다.

 

밤이 이슥해서야 옥님이 문득 물었다.

언니 제 삼촌소식은 알고 있소?”

삼촌? 모영민 삼촌 말인가?”

동생은 전혀 모르고 있는가?”

아니오, 삼일 전에 춘희를 통해 듣긴 들었는데,”

그럼 지금까지 전혀 소식을 모르고 지냈단 말이요?”

송녀의 표정이 일순 진중해진다. 슬픔이 지나 잔잔하던 얼굴에 언뜻 사나운 기운이 실린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옥님은 흠칫했다.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그래 내 평생 잊지 못할 사람임은 틀림없었지.......내가 혼신을 바쳐 사모했던 사람이었으니까 한데......”

 

윤송녀의 눈동자에 찬 빛이 번쩍였다, 전구불빛을 빌어 얼핏 그걸 본 옥님은 오싹해지는 전율에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쥔다. 왠지 청천벽력 같은 말이 이제 그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럴 근거가 무엇인지 딱히 짚을 수 없었지만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이 이 순간 온 육신을 꽉 부둥켜 잡는다. 옥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번쩍 꽈르릉, 모영민이란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송녀의 머릿속엔 이미 번개가 치고 천둥이 일었다. 그때까지 잠자던 기억모두가 이때를 기다린 듯 천방지축 뛰쳐나왔다. 옥님을 보기 전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춘희를 만나보기 전까진 깊은 호수 속에 잠겨 형체조차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말하기조차 거북한 쓰린 기억들, 다시 돌이켜서는 안 될 추한 일들이 곧추 머리를 들고 육박해왔다.

 

동생이 알면 속상하겠지만 이제야 뭔들 숨길까, 난 정말 삼촌을 믿었어.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내 몸을 쓰다듬는 그 손길이 왜 내게 그토록 애틋한 정으로 다가왔던지. 의지하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드리고 싶었건만......”

그런데 왜?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아픈 사연이 있는 것일까? 옥님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 송녀만 직시했다.

동생하고도 무관하진 않아, 남자를 잘못 만나 불운에 떠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그때 그 모든 걸 제자리에 돌려놓을 유일한 사람으로 내 눈엔 삼촌이 정말 거룩한 영상으로 남았었거든,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한다고 나무라지 마, 지금도 동생은 삼촌에게 불효했던 죄책감이 남아 있겠지?”

 

괜찮소. 언니야말로 내 대신 온갖 고생 다하지 않았소. 어린 아기도 팽개친 채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든 비정한 나를 대신해 엄마가 돼준 언니가 아니었소. 우리 춘희도 그걸 다 알고 있소. 언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면 말해 주오. 삼촌이 혹 강압으로 언니 몸을 빌어 아들까지 낳게 만들고 이후 나 모른다는 식으로 내쫓아 버린 거였소?”

아니야, 난 그때 내 발로 그 집을 뛰쳐나왔어. 여인의 얼굴에 강수를 들부은 악마에 비길 만큼 비루하고도 추한 모습을 직접 봤으니까

뭐요? 그게 무슨?”

가슴이 확 번진다. 옥님은 화등잔처럼 눈을 치뜨며 나직한 어조로 말하는 송녀의 입을 얼없이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경직되어 갔다.

 

날마다 배가 부어오르듯 커졌다. 초산도 아닌 송녀가 그게 임신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죽으려 한 행위가 실패하자 더 이상 삼촌을 볼 면목이 없어진 옥님이가 갑자기 숨어 버린 이후였다. 처음엔 당황했다. 세살인 태명이를 데리고 그냥 모영민의 집에 남아 있던 송녀는 엄마의 젖가슴을 찾으며 울어대는 옥님의 어린 딸 때문에 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다행이 젖줄이 마르지 않아 어린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있었다.

 

하루, 이틀, 날자가 지나감에 따라 송녀는 아기가 밥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어쩌면 옥님이가 돌아 올 때까지 그냥 이 집에 남아 있어야 함을 느꼈다. 삼촌은 바쁜 사람이었다. 가진 직책이 있어 남들처럼 아기를 안고 젖동냥을 다닐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혈육처럼 스스럼없이 대해 준 옥님의 삼촌에게 젖먹이아기를 맡기고 인정머리 없이 집을 나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남아 있던 송녀에게 어느 날부터 뜻밖의 일이 생겼다. 그건 삼촌의 은근한 눈빛이었다. 정면뿐이 아닌 돌아서면 떨어지지 않고 주시하는 눈빛이 무엇을 원하는 눈빛인지 송녀는 알고도 남았다. 평소 구세주처럼 의지했던 사람이어서 거부할 수도 없었다. 모영민과 동침하게 된 날 송녀는 이 나이 많은 중국남자가 성인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순진한 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벗은 여자를 품에 안고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다음 순위가 무엇인지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남자, 눈길이 마주치면 얼른 피해 멀뚱멀뚱 천정만 바라본다. 처음엔 그게 우스워 소리 없이 웃었다. 뭘 어쩌지도 못하고 머쓱해 제 방으로 도망치 듯 내빼는 남자를 보고 어쩜 저 나이 먹도록 이토록 여자경험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이불을 들쓰고 키득키득 웃었다. 신기했다. 그러나 다음부턴 생각지도 않았던 스승노릇을 해야 했다.

 

남자도 아닌 여자가 그것도 엄엄하기 짝이 없는 타국의 관리를 상대로 실물로 성교육을 하던 날, 이렇게 저렇게 시키는 대로 부끄럼 가득한 얼굴을 숙이고 허둥대는 남자를 안고 씨름할수록 숨어있던 기혼여자의 본능이 외피를 벗고 무섭게 요동쳤다. 시작한 일을 끝내기까지는 단 몇 초, 남자는 늘어졌지만 여자의 눈은 생먹이를 덮치는 맹수의 눈처럼 번뜩였다.

몇 달이란 날자가 흘렀다. 어쩌면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렇게 이 집에 익숙해 가던 송녀에게 어느 날 일이 닥쳤다. 그즈음이면 송녀가 명실공이 이 집 안주인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송녀의 순진한 생각일 뿐,

 

어느 날 저녁 무렵, 외국인 상점에 나가 필요한 식품들을 구입해 들고 집에 들어서던 송녀는 방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에 조심조심 창 밑으로 다가갔다. 필요이상의 힘이 들어간 목소리 억양이 심상치 않아서다. 거칠게 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시 당조직부장인 박지언이었다.

대답해 보오. 아직도 날 범죄자로 보는 게요? 당신의 고소에 의해 난 지금 파직의 위기에 놓였소.”

그렇게 오리발을 내민다고 해서 무난해질 문제가 아닙니다. 자중하시지요. 옳고 그른 것은 이제 곧 밝혀지겠지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가 있습니까?”

맞받아 말하는 모영민의 목소리다. 옥님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이제라도 잘못된 신고라고 당신이 말하시오. 만약 그렇게 못하겠다면 난 당신을 부녀자강간죄로 맞고소할 거요.”

부녀자강간죄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 이집에 사는 젊은 과부를 당신이 건드리지 않았단 말이요? 벌써 배가 남산만큼 불렀는데, 그게 당신 짓이 아니란 거요. 날만 어두우면 짐승이 되잖소. 난 여기에 당신의 행위를 낱낱이 담았소. 여자를 유혹하는 당신의 추잡한 행위를 말이요 한 번 들어보겠소?”

그만

모영민이 급한 소리였다. 이어 이죽거리는 박지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중국 사람이요. 외국인과의 접촉을 엄격히 금하는 우리노동당의 방침을 오랜 기간 예서 산 당신이 모른단 말이요? 그런 의미에선 중국공산당의 원칙도 마찬가지겠지만. 좋아요. 어디 일 한 번 쳐 봅시다.”

 

우쩍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송녀는 급히 창턱에서 물러났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듣고 보니 실로 큰일을 저지른 것 같다. 서로 혼자 몸인 남녀 간 문제가 이렇게 정치적문제로 심각해질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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