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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2 10:47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45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337  

하지만 이건 몰랐다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다시 조용해지는 방안 분위기를 조심히 감지하며 송녀는 귀를 도사렸다.

정말 부장님이 한 짓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한풀 죽은 어쩌면 타협적인 모영민의 말이다.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겠소. 난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소. 나란 사람은 말이요, 젊은 여자의 얼굴을 그 정도로 짓이길 사악한 사람이 못 되오. 당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요. 그런 인간사적사명을 지닌 당 일꾼이 그런 사악한 짓을 벌였다면 난 스스로 오라를 지고 벌을 받겠소. 생각할 시간을 주겠소. 오래는 못 기다려. 내 말을 명심하길 바라오.”

 

부엌에 들어 와 훌렁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송녀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론 동자질도 할 수 없었다. 박지언은 가고 서재로 다시 들어가려던 모영민이 풀 죽은 모습으로 부엌문을 열어본다. 엉거주춤 서 있는 송녀를 이윽히 지켜보던 모영민은 깊은 한 숨을 쉬며 도로 문을 닫았다.

 

저녁 식사 후 서재에서 송녀는 모영민과 마주 앉았다.

왜 말을 안했어?”

다소 거친 어투였다. 대체 무얼? 무얼 말 안했다는 소릴까? 미처 대답 못하고 송녀는 말똥말똥 모영민만 쳐다보았다.

임신했으면 임신했다고 말을 했어야지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잖소.”

 

아니 배가 이리 불렀는데도 임신을 모르다니.......한심한 소리 같았지만 고쳐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소리였다. 그만큼 모영민은 이성의 변화에 형편없이 무딘 사람이니까,

내가 참 어리석었어. 여기가 중국이 아닌 조선이라는 것도 깜박했고, 여자를 안으면 곧 임신된다는 것도 몰랐고 휴......”

 

개탄 비슷이 중얼거리며 모영민은 우묵한 눈으로 송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 아이가 그 뱃속에 들어있다는 건가? 그것 참 희한한 일이군, 이리 좀 와 보오.”

송녀는 주춤주춤 다가갔다. 풍만해진 배가 다가오자 모영민은 손을 내밀어 어리어리 쓸어 만졌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의 눈빛이 왠지 송녀의 가슴에 짙은 불안을 심어주었다.

 

방금 전 박지언의 협박을 들어서인가?! 처음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땐 송녀도 무척 당황스러웠다.

젊은 과부가 더부살이로 얹혀사는 집 주인의 애를 가졌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떳떳치 못한 일이지만 모영민의 정 어린 모습과 그를 향한 애틋한 사모로 하여 슬슬 눈치만 보며 어느 날엔가는 그가 알고 축복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무심한 이 남자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송녀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정말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중국의 관리가 조선여자의 배를 불룩하게 만들었다면 이 사람은 이제 어떻게 될까? 이 사람에게 화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하고 송녀는 그 와중에도 모영민을 걱정했다. 민족의 순결성을 중히 여기는 나라 법에 걸려 혹 태어날 아이에게 불민한 일이 생기진 않을지, 하는 걱정이 비로소 머릿속에 찾아들었다. 만약 문제가 된다면 이건 그냥 일반 사람들처럼 남녀 간 불륜으로만 취급될 일이 아니었다. 임신 후 처음으로 송녀의 얼굴에 굵은 그늘이 졌다.

 

송녀 못지않게 모영민의 심경도 복잡했다. 비로소 아들의 혼인을 결사반대한 박지언의 삐뚤어진 심경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뜻밖에 찾아온 이성의 향기에 취해 미처 그 뒤를 계산해 보지 못했다. 조선에 나와 조선여자를 집에 들여 시중들게 하면서 잠자리까지 같이 한 것도 모자라 덩실하니 애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여론화된다면 당 지도부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중국공산당지도부의 핵심관리였다.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 일심전력해야할 당관리가 파견지에서 이와 같은 불민한 일을 저질렀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든 사상문제로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어쩌면 엄정한 법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생각이 치닫자 갑자기 여자의 큰 배가 자신을 삼키려 큰 입을 짝, 벌리고 달려드는 맹수처럼 보였다. 으윽, 모영민은 손으로 머리칼을 잡아 뜯었다.

 

(그래 역시 여자는 함정이야, 내 생에 도움 되는 존재가 아니었어. ,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삽시에 충혈 된 눈이 송녀에게 꽂히며 순간적인 발작을 일으켰다. 다소곳이 앉은 여자가 사람이 아닌 요물로 보였다. 아니 요물보다 더한 괴물이다. 빨간 입술이 지금도 뭔가 유혹하려 나물나물 한다. 저 실팍한 가슴을 헤치면 순식간에 정신을 빼앗는 요상한 물건도 가졌다거기에 머릴 틀어박는 날이면 좋은 날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박지 말았어야지,

 

 공산당이 가장 중시하는 노선이 군중노선인데 그 중대한 노선을 어겼으니 이제 무엇으로 그 보상을 해야 하나, 그건 분명 사상과 노선에 반기를 든 이색분자의 덜 떨어진 행위이고 결과로는 역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자는 공산당의 권위를 훼손한 죄로 잔인하게 처형당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문득 머리에 총탄을 받고 마른 바람만 설치는 황야에 던져진 끔찍한 시체가 보였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몸뚱이였다. 들개의 피 묻은 주둥이에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마구 찢겨도 누구하나 치워 주는 사람이 없다. 되레 더럽다고 침을 뱉는다. 침도 아주 고약하게 속 깊은 곳까지 긁어 토하듯 뱉어 버린다. , , .......

 

모영민은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송녀를 덮쳤다. 와락 덮친 뚱뚱한 배를 두 주먹으로 마구 두들겼다.

삼촌, 왜 이래요?”

송녀는 두 팔로 배를 감싸 안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나 부르쥔 주먹은 조금도 사정 두지 않고 빗살처럼 송녀의 등과 머리에 떨어졌다.

? 삼촌? 내가 네 삼촌이냐?”

그럼 뭐에요, 왜 이러는 거예요 네?”

 

더러운 것, 삼촌이라면서 나를 부둥켜안고 옷을 벗어? 네가 그러지만 않았더라도 난 공산당원의 절개를 굳건히 지켰을 거다. 너는 분명 작당을 했다. 삼촌이라 부르면서 어떻게 알몸으로 나를 덮친단 말이냐. 말해, 너 분명 박지언, 그놈과 짜고 나를 무너뜨리려 했지? 맞지?”

 

억장이 무너져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지금까지 그토록 존경하고 사모했던 이남자의 진짜 모습이란 말인가? 사람을 잘못 봐도 너무 잘못 봤다. 살뜰한 눈길, 섬세한 손길로 늘 마음 설레게 하고 무엇이나 챙겨주려 애쓰던 모영민의 뜻밖의 발광을 보며 송녀는 사람이 이렇게도 양면적인가 하고 개탄했다. 내려치는 무지한 주먹세례의 아픔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발광을 거듭하던 모영민이 그만 바닥에 얼굴을 틀어박으며 신음을 토한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바닥을 치고 다음은 벌렁벌렁 송녀 앞으로 기어왔다.

 

미안해,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송녀, 한 가지만 약속해 줘라. ?”

뭘요?”

뱃속의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증언만 해주라 응? 해줄 수 있겠어? 안 그러면 난 당 책벌을 받아. 내가 공산당원임을 너도 알지 않니, ? 송녀야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하신에서 굵은 통증이 왔다. 심한 동통이다. 송녀는 몸부림쳤다. 어찌 임신한 여자에게 이런 폭행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어찌 이다지도 가혹할 수 있단 말인가? 동통보다도 유린당한 자존심이 더 아파 송녀는 줄줄 눈물을 쏟았다.

 

 이런 개만도 못한 놈을 삼촌으로 받들고 밤에는 기꺼이 여자로 변신해 분통같은 젊은 몸을 개여 올렸다. 여리고 만문한 속살을 가질 땐 함지처럼 입 짝 벌리고 공산당원의 존엄에 누가 끼치게 될 땐 병아리를 덮치는 독수리가 되어도 무방한가?! 너희들 공산당원의 절개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더란 말이냐? 분했다. 억울했다. 아들과 결혼하려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의 얼굴에 청강수를 붓게 만든 악당과 네가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이냐,

 

송녀는 그때 난생처음으로 세상의 악랄함과 인간의 사악함을 곁붙여 체험해 본 셈이다. 다행히 그날 밤으로 병원에 실려 간 덕에 송녀는 뱃속의 아기를 지켜낼 수 있었다. 대신 천추의 한이 앙금처럼 가슴밑굽에 덕지덕지 앉았다.

 

그 이후 난 다시는 동생 집 주변에 얼씬하지 않았소. 동생이 남조선에서 들어 온 사람과 새 가정을 이루고 그 집에 다시 들어와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가보고 싶지 않았어. 모영민, 그 사람이 내게 준 상처는 지금도 한겨울 고드름처럼 날 얼어들게 만드니까

언니

옥님은 울음을 터트리며 송녀의 무릎에 엎어졌다.

내가 삼촌 대신 죄를 받겠으니 어서 실컷 때려 주우, 언니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서럽게 우는 그녀의 잔등을 토닥이며 송녀도 눈물을 훔쳤다.

 

? 대체 왜 그랬단 말이우,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닌데, 내가 본 삼촌의 그 점잖은 모습 속에 그런 악마가 숨어 있었다니

옥님으로선 천만뜻밖일 수밖에 없었다. 송녀를 보는 삼촌의 눈길이 범상치 않아 당시 옥님은 두 사람이 이루어지길 은근히 바랐다.

어린 나이에 애까지 낳고 난 이후 홀로 지내는 삼촌이 안쓰럽게만 보였었다. 그래서 셋이 있을 땐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옥님의 바람대로 두 사람의 연은 이내 맺어졌다.

 

중국에 갔다 오면 은근슬쩍 옥님이와 똑같이 머릿수건이며 얼룩 셔츠, 머리장식 핀 같은 선물을 주던 삼촌, 송녀를 바라보는 눈길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한껏 어렸었다. 그런 사람이 어찌 그렇게 돌변할 수가 있는지, 놀라운 일이었다.

 

훗날 집을 나간 송녀가 떡돌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강성대를 통해 들었다. 이름을 태수라고 지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죽은 남편에게서 낳은 아들 태명의 이름항렬을 따른 것 같았다. 속내를 모른 옥님은 삼촌이 돌아오자 그 소식부터 알렸다. 그런데 그때만큼 천둥같이 화를 내는 삼촌을 옥님은 십 수 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왜 아들의 출생에 기쁨 대신 화를 내는지, 그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 지금 송녀의 말을 들고서야 그 진면목이 확 안겨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삼촌의 입장이 이해되긴 해

? 뭐가 이해된다는 거요. 그런 짐승 같은 행위를 언니는 이해할 수 있단 말이요?”

울던 옥님의 눈이 커졌다.

 

이해해야지 삼촌에겐 공산당에서 준 직책이 있었지 않나. 내 머리에 먹물은 없지만 노선이나 사상에 매어 사는 공산당원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당의 존엄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 중국에선 공산당원이 규칙을 어기면 일반사람보다 더 엄한 벌을 받는다는 것도 난 그 이후에야 알았어. 그러니 박지언의 입에서 그와 같은 말이 나왔을 때 삼촌이 얼마나 당황했겠나. 당 지도부에 보고만 되면 그는 사실 상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지.”

네에.......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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