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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2 10:58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46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341  

 

그러나 삼촌의 허점은 그 이후에 드러났어. 삼촌은 박지언을 법에 고발한 것을 뒤집었고 그런 후엔 그 악당 같은 자의 수족이 되어 살았으니까, 사내가 지위를 위해 남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였을 때처럼 역겨운 일은 없었어. 사람 같지 않은 너절하고 추한 모습에 난 환멸을 느꼈고 가슴에 자리한 그 사람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싹 다 지워버렸어 아주 깨끗이, 나도 같이 더러워지려 했으니까, 사람이 하루를 살아도 제 모양대로 살아야지 그게 뭔가? 참 공산당에서 한 자리 한다는 사람들은 다 그리 살아야만 되는가?”

 

윤 씨의 얼굴에 측은한 빛이 어린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한때는 환상과 미련에 공연히 올 가슴을 태운 것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옥님의 앞이어선지 윤 씨는 얼른 말을 바꿨다.

이젠 까마득히 세월이 흘렀어. 그냥 공담이야. 용서는 뭐고 죄는 뭔가, 싹 다 잊고 세월 따라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언니, 그 삼촌이 지금 성진에 나와 있다우

? 그게 정말인가? 아니 나이로 치면 이제 팔순이 가까운데, 이미 귀국한지 오랜 사람이 무슨 일로? 혹 조카인 동생을 찾아보려는 건가? 아님?”

 

윤 씨의 얼굴에 일순 불안의 빛이 흐른다.

가만, 그 사람이 우리 진이애비존재를 아는가?”

아마 알고 있을 거요. 이제 돌아가실 때도 됐으니.......모르긴 하겠지만 난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내내 그 생각을 했소.”

나랑 진이애비랑 탄광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도 그 사람이 알고 있는가?”

글쎄 보다시피 난 산속에 틀어박혀 살아 잘은 모르겠지만 혹 그럴지도 모르지 않소. 언니, 춘희에게 물어 보면 알 수 있을 거요

하기야 아비가 아들을 찾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올 테면 오라지.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내 앞에 나타날꼬. 역겨운 인간.”

 

저도 모르게 나가는 욕 같았다.

오해 마. 나로선 욕이 절로 나가네 젊은 과부로 해산할 때 받은 뭇사람들의 눈총이 아직도 내 등을 찔러, 진이애비를 낳고 떠돌이도 많이 했지. 근데 가는 곳마다 사내들 성화에 어디 견딜 수가 있어야지, 결국엔 제 고장으로 돌아 왔었지. 그렇게 몇 해 만에 돌아와 보니 애초의 소문은 개인 날 빗물 잦아들듯 자취도 없더군. 괜한 짓을 했던 거야. 돌아보면 참 허무한 세상살이였어.”

그러게요 언니 미모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삼촌 때메 그리 됐구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젠 죽을 일만 남았구만 뭘.”

 

두 여인이 동시에 한숨을 쉰다. 벌써 동녘이 희붐히 밝아왔다.

집으로 내려오면서도 윤송녀는 개운치 못한 기분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옥님의 앞에 끝내 털어 보이지 못했다. 그건 다름 아닌 태수를 향한 춘희의 접근이었다. 이제 다시 만나게 될 땐 꼭 물어보리라 생각하며 아쉬운 대로 내려왔다.

 

 

 

4 보이지 않던 것들

 

 

1

잔잔한 파도 위에 유람선 한척이 달린다. 시월에 접어들며 아침이면 쌀쌀한 바람을 보내던 날씨가 정오가 가까워지자 마치 아랫목구들처럼 따뜻해졌다. 거센 파도가 일던 지난밤과 달리 바다는 지쳐버린 듯 아니 한 숨 자는 것 같다. 푸른 색 유람선은 거침없이 잔잔한 호수수면 같은 물 위를 제법 갈기를 날리며 달렸다. 힘든 세월이지만 배위에 오른 사람들은 오히려 이 세월을 즐기는 듯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얼굴에 희열이 넘쳤다. 그 눈길을 따라가 보면 아득히 무인도가 보인다. 유람선의 속도를 낼수록 외로워 보이던 섬이 점점 근접해 왔다.

 

가까워진 섬은 무척 아름다웠다. 깎아지른 절벽과 기묘한 바위들, 기슭을 메운 무성한 숲이며 단풍이 들어 붉게 탄 나무 잎들이 반갑다는 듯 와스스 설렌다. 푸른 바다위에 갑자기 불쑥 떠 오른 신비의 산호섬 같다.

 

뭍에서 10여 키로 미터 떨어진 무인도는 계곡 경사면이 느리고 깊은 골짜기엔 샘이 터져 보기에도 시원한 물이 흐른다. 바다 새들의 천국인 이곳엔 바다를 지키는 군 경비초소가 있을 뿐 사람들의 왕래가 전면 금지된 곳이었다.

청호라는 글이 새겨진 유람선은 섬에 닿자 느릿한 속도로 배회하기 시작했다. 선실 특별실인 듯 꽤 넓은 방의 상석으로 뵈는 소파에 백발의 노인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옆 소파에 앉은 두 사내의 표정도 무척 감상적이다. 정면에 드리운 스크린엔 가까워진 무인도의 정경이 컬러화폭으로 물 흐르듯 펼쳐지고 있다. 거기에 비쳐진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는 백발노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모영민이었다. 팔순에 가까운 나이지만 아직 기력이 왕성함은 물론 젊은 패기까지 잃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선상에 나왔다.

아름다운 섬이야. 가질 수만 있다면 이 섬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군.”

감상에 젖어 있던 모영민이 느닷없이 던지는 말이다.

뭐 회장님 뜻이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요. 말 그대로 무인도가 아닙니까?”

언젠가 춘희가 주체한 동지회모임에서 본 적이 있는 성진 시 당위원회한성원부장이 곁에 서 말했다.

 

무인도라.......이름은 있겠지?”

원이라는 이름은 있습니다.”

그럼 원도?”

. 계란처럼 둥글게 생겼다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나봅니다.”

경치가 좋고 샘까지 나오는 섬이라는데 왜 사람이 살지 않나?”

군 위수 구역이니까요 예전엔 거주민이 있었는데 모두 이주시켰습니다.”

 

모영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 좋은 곳이야 인생 만유지로는 손색이 없어. 난 조선정부와 저 섬을 거래하고 싶어. 자네가 도와 줄 수 있겠나?”

회장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근데요 엄청 비쌀 텐데요.”

뭐라?”

가격 말입니다.

? 그래 그게 중한 거지 얼마면 될까?”

글쎄요 미처 거기까진......”

한성원이 멋 적어 하자 모영민이 껄껄 웃는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했군. 하도 욕심나 한 번 던져 본 말이야 자고로 공산국가에서 더욱이 조선이라는 아주 특이한 이 사회주의왕국의 안방에서 내가 섬을 사겠다고 했으니, 허허 참 미쳤지?”

“?”

 

한 부장,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 보면 말이야 참 감회가 새로워, 공동체형태의 국가건설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신념이었고 최대의 목표였지. 그래서 우린 그러한 신념과 원칙을 목숨 같이 여기며 살아왔고, 그건 자본의 철쇄에서 벗어나보려는 인류의 염원을 담은 절대적인 사상이 낳은 노선이었으니까,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이 지구상에는 새로운 사상에 기초한 국가가 생겨났고 또 번창해졌지. 가난했지만 국가를 위한 개인의 헌신은 새 시대의 개척이라는 의미에서 너무 아름다웠더란 말이지.”

 

모영민이 일장 연설을 하려는 듯 긴 말을 늘인다. 대개 그 나이에 이른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아름다움이 배척을 받기 시작했어. 물질소유라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 수호해 보려는 공고한 사상에 변질이라는 세균을 심었고 그것이 인간본성인 욕심이란 날개에 실려 순식간에 모든 걸 초토화시켰다고 할까? 지도부인 당은 부득불 현실에 따라 무언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어. 헌데 바꾸어 보니 닫아야 했던 목구멍이 열렸고 걸쳤던 누더기는 이내 박물관에 전시되더란 말이지. 사회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대신 애초에 내세웠던 공산주의자의 신념과 양심이란 것은 헐어빠진 휴지장이 돼 누구나 짓밟아도 문제되지 않았어. 말 그대로 세상은 인간이 내뱉는 욕심의 전시장이 돼버렸던 거야. 허허허,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조선이란 이 작은 나라를 모국보다 더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네. 나라전반이 폐허가 돼도 한 번 내 짚은 길을 에돌 줄 모르는 그 지구성에 감복했다고 할까?”

 

모영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저 혼자 껄껄 웃는다. 느긋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눈길엔 쾌감의 여유뿐이 아닌 미묘한 교만함까지 흐른다. 그 교만함에는 무엇을 비웃는 눈치가 가득했다. 한성원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불만족한 표정이다.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회장님이 벌써부터 그렇게 심중하시면 오늘의 유람은 별로 즐겁지 않겠는데요.”

 

? 심중해? 이런 참 당 간부라는 사람이 말하는 본때란, 역시 자네도 어쩔 수 없이 범람하는 물질만능의 늪에 깊숙이 빠져 버렸어. 시 당 간부가 그리해도 괜찮은가?”

야유가 섞인 목소리다. 그렇지만 한성원은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응수한다.

 

길을 걷다 보면 사막을 만나 듯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세균의 치명적 감염으로 정신을 잃을 때도 있지요. 그러한 순간 사람은 어떻게 하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나 봅니다. 아무리 강한 신념을 가졌다 해도 주입된 사상을 죽음 앞에서까지 부둥켜안을 필요까지야 뭐 있을까, 이러면서요.”

그 말은 변질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자네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오해하지 마십시오. 물질만능에 미쳐 돌아가는 현대에 와서 주의주장의 변질은 시간문제로 봐야겠지만, 그걸 변질이 아닌 난을 넘기는 전술로 볼 수도 있잖습니까?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그 무서운 감염을 이겨내는 힘도 어쩌면 이 배에 앉은 기름 층의 두께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이따금 가져 보긴 합니다만

한성원은 씩 웃으며 불룩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를 슬슬 쓰다듬는다.

 

허허허 자넨 참 재밌는 사람이구만 맞아, 입 구멍에 거미줄을 치고서도 국가를 위한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린다면? 하하.......그래 내 중년 때만 해도 그런 게 통했어. 아주 멋있게 통했지

회장님 섬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셔야지요.”

모영민과 함께 국경을 넘어 온 그의 보좌관이 곁에 와 깍듯이 말한다. 배는 벌써 정박했다.

그래 내려야지. 이렇게 아름다운 원도에 오게 될 줄이야 한비서, 한비서는 참 재밌어.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 , 먼저 내리지

그의 손짓에 따라 뒤에 섰던 사람들이 모두 예를 표하며 나가자 보좌관이 다가와 귀속 말로 뭔가 보고한다. 화색이 돌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진다.

 

뭐라? 화차에 흑연정광이 아닌 석탄을 실었다? 그걸 누가?”

, 회장님 춘희 전주님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춘희 그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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