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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2 11:05
연재소설: 뻐꾸기운다 (제47화)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344  

 

 

, 정광품질이 형편없어 그랬다고는 하지만......”

품질이 나쁘면 그만큼 값을 깎으면 되잖은가?”

그러게요,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만 예정된 기일에 정광이 들어오지 않아 통화의 본 공장에서 강력한 항의를 했다는군요. 청진영사관을 통해 전달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석탄을 실었다는 화차는?”

이미 국경을 넘었습니다.”

으음,”

모영민이 지그시 눈을 감는다. 그의 볼이 실룩거렸다. 이젠 서산에 해질 나이가 되었어도 모영민은 아직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다시 눈을 뜬다. 입가엔 알릴 듯 말 듯 엷은 미소가 어렸다.

 

곧 다시 화차를 들여보내라고 이르게.”

알겠습니다.”

돌아 나가려는 보좌관을 모영민이 다시 불러 세운다.

모든 걸 은밀하게 진행시키게. 관계자누구도 아직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아

최춘희 전주께는요?”

어허

모영민은 대답 대신 눈을 치뜬다. 급해 난 보좌관은 알겠습니다.”하며 급히 물러간다.

 

(눈치코치 없는 녀석, 근데 춘희가 왜 그랬지? 친부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이것 참 이 애가 일을 망치려고 이러는가?)

 

그는 배에서 내리려다 말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치 석고상 같았다. 삼일 전 춘희와 함께 조선에 나온 그는 성진에 내리지 않고 곧장 평양으로 올라갔다. 그랬다가 오늘 아침 성진에 왔다. 오전 10시경 성진시 당 협의회에 참석하고 책임비서의 호의로 이렇게 원도유람을 나왔다. 유람이긴 하지만 그에겐 매우 중요한 현지답사이기도 했다.

 

배에서 천천히 내려 선 모영민은 섬의 경관에 취해 여기저기 돌아보았다. 한 시간 쯤 지나 멀리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둔덕에 올라선 모영민은 무원하게 펼쳐진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족한 놈들 이 풍요한 바다를 남에게 내어주다니.......외화에 환장을 해도 유분수지

 

눈이 감겼다. 그는 평양에 올라가 이곳동해어장을 중조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척할 데 관한 협약에 도장을 찍었다. 이 협약에 따라 이제 이 성진과 청진앞바다엔 머지않아 수백 척에 이르는 중국 어선들이 들이닥칠 것이었다. 공동이라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엔 광활한 어장을 누빌 어선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다. 풍부한 수산자원을 생산할 여력이 없어 결국 어장을 몇 푼 외화에 팔아넘긴 거나 다름이 없었다.

 

오전에 열린 성진 시 당 협의회는 말 그대로 팽팽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다. 공동어장관리권을 함북도당관하 성진 시 당이 가지느냐 아니면 국가안전보위부가 가지느냐 하는 문제토의다. 그건 모영민의 선정하는 대로 정해질 문제였다. 그러나 모영민은 성진 시 당이 이 관리권에서 배제되리라는 것을 이미 평양에서 알고 내려왔다. 때가 때니만치 현재 이 나라의 세관권과 무역권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전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국경에서의 거래문제가 아니었기에 이제 곧 국가안전보위부 쪽에서도 어떤 연락이 닿을 거란 생각을 모영민은 갖고 있었다. 그건 모영민에게 기본선택의 총적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모영민도 이 관리권을 두고 남모르는 속타산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건 그에게 있어 타산뿐이 아닌 반드시 실현해야할 사활의 문제이기도 했다.

중조 두 나라간 거래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모영민은 협의회 내내 시물시물 웃기만 했다.

한성원이 왜 곁에 바싹 붙어 쫓아다니는지도 그는 잘 안다. 어장관리권소유는 말 그대로 노다지였다. 모영민에게는 그 담당자가 함북도당산하 성진시당이든 국가안전보위부든 누가 가져가도 상관없지만 그는 지금 이 일을 계기로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안중엔 어디에 관리권을 줘야한다는 것이 벌써 든든히 내장돼 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성진시당에선 어떻게 하나 모영민에게 합리적 방안을 제시해 보이기 위해 협의회까지 열었었다. 물론 그가 전개하려는 일이 폐쇄된 이 땅에서만 엄청난 일이지 개방된 국가라면 부디 그런 무게 있는 표현을 쓸 필요까진 없는 일이었다.

 

모영민에게는 많은 외화를 벌 수 있는 국경세관권과 대외무역권이 국가안전보위부점유물이라 해도 필요에 따라 어장 관리권을 함북도당 성진시당에 넘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만큼 그는 평양정부와의 관계가 깊었고 역할도 컸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듯 성진 시 당 책임비서는 모영민의 환심을 사려 일정에도 없는 원도유람까지 조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못지않게 주도 세밀하게 움직이는 세력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국가안전보위부였다. 어쩌면 모영민도 그러길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원도에서 돌아와 시 당위원회에서 조직한 성대한 저녁만찬까지 치른 모영민은 정해준 해안호텔에 돌아왔다. 방은 크고 정갈했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컵에 부어 단숨에 마셔버린 그는 잠간 소파에 앉아 액틀에 넣어 벽에 건 백두산천지그림을 쳐다보다가 베란다로 나왔다. 너른 공간가운데 놓인 탁자 옆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몹시 침울한 표정이다.

 

원도에서 호기를 부리던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깊은 한숨까지 내쉰다. 아래를 향했던 눈길이 어둠에 싸인 공간으로 들렸다. 앞은 넓은 바다였다. 비릿한 냄새가 해풍에 실려 그의 콧구멍을 건드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캄캄한 시야 속에 여러 인물들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모옥님, 윤송녀 강성대 그 아들 강홍범, 춘희는 과연 내가 이른 말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려는가?”하고 모영민이 중얼거린다. 부른 이름들은 조선에서의 파란만장했던 그의 인생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모영민이 또 중얼거린다.

 

춘희는 왜 흑연정광을 실을 화차에 석탄을 실었을까? 혹 태수를 위해서?’

지금에 와서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아들인 정태수를 이번 걸음에 중국으로 데려가려 모영민은 작정했다. 이일 때문에 벌써부터 춘희에게 단단히 임무를 주고 지금껏 추진해왔다. 그런 관계로 이 땅에서 태수를 위해 뭔가 전개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면 친부를 향한 복수? 아니야 그 앤 그렇게 경솔한 애가 아니야. 그렇다면

모영민의 안면에 깊은 주름이 생긴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언제 한 번 내 뜻을 거스른 적 없던 아이였는데, 혹시?’

 

갑자기 모영민은 어떤 전율이 온 듯 몸까지 부르르 떤다. 답답한 듯 긴 숨을 내쉬는데 방안탁자에 놓았던 핸드폰이 울었다. 보좌관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던 모영민은 들여보내게하고 짧은 대답을 준다.

조금 후 방에 들어선 사람은 성진시 국가안전보위부부장 장덕수였다. 수하도 없이 수수한 인민복을 걸친 장덕수는 미소 띤 얼굴로 들어서자 모영민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장부장이 어떻게.......그러잖아도 만날 생각을 했네만, 아무튼 반갑소.”

저도 반갑습니다.”

방금 방황하던 표정을 말끔히 지운 모영민은 얼른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입가엔 만족한 미소가 찰랑거렸다.

 

 

2

한편 제집 윗방에서 노트북에 연결된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 듣던 박철진의 두 눈이 커졌다. 그는 낮에 은밀한 방법으로 모영민이 들어 갈 방에 도청기를 설치했었다.

영상은 없지만 소리를 녹음해 이렇게 집에 앉아서도 들을 수 있는 음성전송도청기였다. 뜻밖에 등장한 보위부장의 목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철진은 지난여름 중동이발소에서 춘희가 넘겨 준 수화기를 통해 거칠게 울리던 보위부장의 질책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다음 날로 부장실에 불려간 철진은 다시 부장의 엄한 질책을 들어야했다.

 

그날 전화연락을 받고 반탐과에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도수 높은 안경테위로 눈길을 쏘던 반탐과장이 픽, 웃고 나서 중동엔 왜 갔댔어?” 하고 물었다.

제기된 정보를 확인해 보려고요.”

뭘 확인 한다는 건데

과장동지, 저는 저의 영역에서 미지수를 남기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혹여 제가 손보지 말아야 할 대상에 접근한 겁니까?”

보위원이 접근하지 못할 대상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눈치도 있어야지, 위에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 따라와

 

과장이 이내 철진을 보위부장실로 데리고 갔다. 부장은 젊었을 때부터 이 계통에서 일해 온 오랜 노장이다. 과장은 보위부장이 앉은 책상위에 들고 온 서류를 놓고 나서 제꺽 나갔다. 왠지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철진은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말단보위부원이 보위부장과 마주서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부장은 철진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과장이 가져온 서류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앉게하며 의자를 가리킨다. 그다음 유심히 들여다보는 눈길에 쫓겨 철진은 고개를 숙였다.

자네가 박철진인가?”

. 그렇습니다.”

중동농장이발소엔 왜 갔었나?”

 

부장의 물음 속에 예리한 것이 배어있음을 직감한 철진은 좀 전 과장 앞에서처럼 편하게 말할 수 없었다. , 춘희로부터 정태수가 낳은 아이와의 관계를 전해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 순간 떠올랐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끝난 일을 갖고 이렇게 다시 말단부원을 부장실까지 불러들일 이유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아니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로라하는 수사 일꾼이지만 부의 최고 상관 앞에서는 모든 사유가 엉망으로 흐트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여러 생각이 교차됐다. 그런 그의 염려를 부정이라도 하 듯 부장이 물었다. 이외의 질문이었다.

 

자네도 혹 뭔가를 얻기 위해 돈 좀 있어 뵈는 사람을 지겹게 쫓아다니는 건가?”

네에?”

아니면 좋고, 내 듣기로는 집의 안사람이 공산품장사고수라면서? 돈 욕심은 말이야 돈을 쓰는 양만큼 늘어난다고 했어. 써 보지 못한 놈이야 돈의 진 맛을 모를 테니까, 안 그런가?”

, 그렇습니다.”

철진은 얼결에 대답하고 나서 급기야 이건 아니다싶어 정정했다.

 

그렇지만 부장동지. 전 돈에 대해 흑심을 품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국가안전을 위해서......”

그런 틀에 박힌 대답을 부장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철진은 스스로도 유치해 보여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내가 왜 이리 허둥거리지?)

 

얼굴이 붉어졌다. 다행이 부장은 그런 그의 대답을 흘리는 것 같았다.

내가 오늘 자넬 부른 것은 몇 가지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네. 혹 자네 자신도 모르는 문제일수도 있어.”

갈수록 아리송한 말이다.

자넨 현 정치정세를 어떻게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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