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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6 12:50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1) 오대석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522  

단편소설

삼류 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

 

오대석

 

1

 

정식 씨는 삼류 작가다. 등단한 지 삼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겨우 작품집 두어 권을 낸 것이 그가 지금까지 쓴 소설의 전부다. 두 번째 창작집을 낼 때 책머리 작가의 변에 게으름과 뻔뻔스러움 즐기기 23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게으르고 무능한 작가의 표본이 바로 자신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사람의 버릇이란 좀처럼 바뀌지 않는가 보다.

정식 씨는 최근 몇 년간 삼류 작가 시리즈로 연작을 몇 편 발표하였다.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공연히 삼류라는 사실만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 되었다. 그러나 정식 씨는 삼류작가라고 맘을 먹고 소설 쓰기를 시작하면 편하게 잘 써진다. 어떻게 보면 게으르고 뻔뻔스런 작가에게는 더없이 창작활동에 유리한 타이틀이라고 자위하며 글을 쓴다.

북한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L 작가를 만난 건 그에게 행운이었다. 소설가들이 모이는 세미나에서 몇 번 만난 게 전부인데, 의외로 말문이 쉽게 열리고 대화가 편한 상대였다. L 작가의 경력은 꽤나 다양하다. 소설가가 되기 전 언론사 기자에다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 승려 경력까지 갖췄다면 다양성을 인정하리라. 최근에는 통일문학 관련 단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북한을 소재로 한 그의 소설을 여러 편 읽은 기억이 있다.

그와 사적으로 몇 번 술자리를 같이 했는데, 어느 날 불쑥 신문 칼럼을 청탁했다. 과거 근무했던 중앙지에 칼럼을 한번 써보란다. 최근 S대 교수로 있는 젊은 문학평론가 B 교수가 문단을 향해 무슨 선언을 했다. 요지는 이제 우리 작가들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북한 당국에 대해서 인권개선 요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며, 작품 활동을 통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단의 호응에 자신이 없었던지 선언문에 초안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북이 고향인 원로작가 Y씨의 적극적인 지지 표명이 있었다고 한다. 지극히 당연한 내용을 가지고 B 교수가 비장한 선언을 한 데는 우리의 묘한 문단풍토와 관계가 있다. 묘하게도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일수록 북한 인권문제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이런 행태는 정식 씨가 봐도 한참 비정상이다.

L 작가의 청탁은 이와 관련하여 입장을 표명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B 교수의 선언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있어서 정식 씨는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을 했다. 200자 원고지 12매라면 그리 고민할 분량도 아니었다. 몇 번 중앙지에 기고를 해보았는데 좀처럼 크게 실어주는 법이 없었다. 좋은 기회였다. 더구나 L 작가는 이번에 잘 쓰면 가끔 쓸 수 있도록 신문사에 추천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식 씨는 삼류작가를 자처하고 있는 자신을 까맣게 잊고 그의 달콤한 유혹에 빠졌다.

그러나 다음날 컴퓨터 앞에 앉은 정식 씨는 고민에 빠졌다. 우선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해서 그런 글을 쓸 만한 전문성이 있는가에 대하여 자신이 없었다. 글을 발표하고 나서 후유증에 대해서도 걱정이 생겼다. 소설가들이 모인 협회의 상임이사로 근무한 지가 이제 6개월 남짓한데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켜 협회에 누가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들었다. 정식 씨는 술을 먹으면 부탁을 쉽게 승낙하는 자신의 성격을 한탄했다.

정식 씨에게는 고민을 시작하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우선 서재의 책을 뒤집는 버릇이다. 좁은 공간에 수천 권의 책을 보관하다 보니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늘 주제별로 정리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때뿐이다. 과거에 읽어 기억에 저장했던 책을 찾아보고 글을 쓰는 습관을 그는 평생을 가지고 산다. 정리 안된 책이 많다 보니 원하는 책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더위와 씨름하며 책을 뒤적이는 게 퇴근 후 그의 일이다. 이상하게 며칠 전에 보았던 것 같은 책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당신 무슨 고민 있어요?”

아내의 눈치는 비상하다. 글을 못 쓰고 끙끙거리는 정식 씨를 금방 읽어낸다.

. 간단해 보여서 칼럼을 하나 약속했는데, 잘 안 써지네.”

무슨 내용인데……?”

, 북한 인권에 대해서 이제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글도 잘 안 나가고 부작용도 있을까 싶기도 하고…….”

당신 왜 그래요? 조용히 잘 살다가 괜히 벌집 건드릴 일 있어요? 안 돼요. 당신뿐 아니라 식구들까지 못살게 구는 사람이 생길 거라구요.”

아내가 의견을 단호하다.

누가 나 같은 삼류를 건드리겠어. 허허.”

삼류니까 더 만만히 본다고요. 안 돼요. 절대로 안 돼. 당신 나하고 그런 글은 안 쓰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정식 씨의 아내는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트라우마가 있다. 장인이 6.25 때 인민군에게 끌려간 것이 월북인지 납북인지의 문제로 불거져 오랫동안 시달려온 탓이다. 국립사범대학을 나오고도 교사 발령이 6개월 늦게 난 이유도 그 탓이라고 아내는 믿고 있다. 아내만이 아니다. 교육전문직 시험을 응시했던 정식 씨도 처가 쪽의 가족사가 임용에 걸림돌이 될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시대가 변하면서 연좌제의 아픈 기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무렵 정식 씨는 장학사에 임용되어 교육전문직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북한의 인권문제가 개선되는 것이 장인어른에게도 유리한 거 아냐? 어떻게 작가라는 사람들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이렇게 둔감할 수 있어. 남북한 정책당국자들이라면 현 시점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남북화해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 따져서 행동할 수 있다고 치자고. 하지만 작가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냐? 작가는 좀 더 순수해야 한다고.”

당신은 너무 순진해서 탈이에요. 그쪽 사람들은 그리 단순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은 안 겪어봐서 몰라요. 친정을 생각해서라도 당신 그러면 안 돼요. 아무튼 안 되니 그리 알아요.”

정식 씨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혹을 하나 더 붙인 꼴이 되었다.

 

2

 

정식 씨의 처가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이다. 홍길동이 쌓았다는 무성산성이 있는 무성산의 서쪽자락이다. 대중리에는 산성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진다. 무성산성을 홍길동이 아니라 홍길동의 누나가 쌓았다는 전설이다. 홍길동처럼 그 누나도 장사였단다. 김동리의 황토기에서 보듯 신분이 낮은 가문에서 장사가 나오면 그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나라의 동량이 되어 나라를 구하는 이야기는 양반가문의 가정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더구나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장사라니. 두 명의 장사는 횡액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홍길동과 그의 누나 중 한 명은 죽을 운명이었단다. 문중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매는 목숨을 건 내기를 치르게 된다. 과제는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서 누나는 무성산 정상에 둘레가 십 리 높이 두 길이 되는 석성을 쌓아야 하고, 길동은 쇠로 된 나막신을 신은 채 코뚜레도 안 뚫린 목매기송아지를 끌고 서울을 갔다 와야 하는 것이었다. 지는 자가 죽기로 했다. 누나는 행주치마로 부지런히 돌을 날라 석성의 완공을 눈앞에 두었다. 넓적한 돌 두 개를 골라 성문 두 개만 막으면 끝이었다. 커다란 돌 두 덩이를 양 겨드랑이에 끼고 누나는 무성산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뜨끈뜨끈한 팥죽 한 동이를 쑤어서 딸에게 권했다. 딸은 시장하기도 하거니와 길동이 하루아침에 서울을 다녀오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생각에 팥죽을 먹느라고 한참을 지체하였다. 막 숟가락을 놓고 돌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땀을 뻘뻘 흘리며 길동이 송아지를 끌고 사립문을 들어섰다. 결국 누나는 내기에서 졌다. 어머니가 날 죽였다고 누나는 울부짖으며 죽어갔다.

성문을 막으려던 두 개의 큰 돌은 지금도 마을로 들어가는 고개 양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 사람들은 그 고개를 돌고개라고 부른다. 정식 씨의 처에게 이 전설을 들려주면서 처조모는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했다고 한다.

네가 고추를 달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여러 사람을 살릴 길을 열 수 있었는데…….”

처조부는 일제 말에 담배상을 하면서 백 섬 가량 추수하는 마을 부자 소리를 들었다. 장인은 삼대독자 종손이었다. 손이 귀한 집이다 보니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장모는 일제 말 소위 처녀공출이라고 소문이 흉흉하던 정신대를 피해 서둘러 혼사를 치르느라고 장인을 만났다. 그러나 남편이 징용에 차출되는 바람에 오랫동안 후사를 잇지 못했다. 장인은 해외로 잡혀가지는 않고 김포 비행장을 닦는데 동원되었다고 한다. 부인이 면회를 가면 하루 밤 외박은 허용해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손이 귀한 집 아들답게 장인은 딸 하나만을 남겼다. 그것도 해방이 되고 나서야 겨우 낳았다.

그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정식 씨 장인은 피란을 떠나지 않고 집에 남았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일제 말 공출을 피하기 위해 쌀을 숨겨두었던 지하실이 사랑방 밑에 있기 때문이었다. 지하실은 급하면 아무도 모르게 며칠 몸을 숨길 공간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인공치하에서 몇 달을 버티었다.

그러나 끝내 운명의 밤을 맞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928수복 소문이 돌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무성산 쪽으로 퇴각하던 인민군 대대병력이 마을을 덮쳤다. 장인집에도 들이닥쳤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장인이 지하실에 숨어 있는 사실을 알고 왔더란다. 누가 밀고했을까? 해방 후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소작인들과 갈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춘궁기에 돈이나 쌀을 빌려달라는 마을사람들의 청을 다 들어주지 못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그런 이유로 앙심이라도 품었다면 충분히 밀고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인민군들은 저녁을 마을에서 시켜먹고 밤새워 마을 아낙들을 시켜 주먹밥을 뭉치게 했다. 아낙들은 뜨거운 밥에 소금물을 적시느라고 손바닥에 온통 물집이 잡혔다. 주먹밥을 뭉치는 일 외에도 그날 밤에 무슨 일이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사람들 누구도 그런 일에 대해서는 서로 묻지도,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었다. 아마 장모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인민군들은 장인과 장인집 외양간에 매어 있던 소를 끌고 무성산 방향으로 퇴각했다.

정식 씨 처가에서 가까운 마곡사의 뒤쪽에는 상원골이 있다. 그 주변이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지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이래 난시에 몸을 숨기기 좋은 10대 구난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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