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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6 12:57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2) 오대석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7  

경북 영주 풍기, 경북 봉화 춘양, 충북 보은 속리산, 전북 남원 운봉, 충남 공주 유구와 마곡사, 강원 영월 정동 쪽, 전북 무주 무풍, 전북 부안 변산, 경남 합천 가야산, 경북 예천 금당동이 그곳이다.

이처럼 풍수지리상 천하의 길지라는 마곡사는 대웅전에서 앞에서 S자 모양으로 물이 돌아나간다. 물 들어오는 자리와 나가는 자리가 보이지 않는 태극도형이다. 산태극, 수태극의 명당자리인 것이다. 한국전쟁 때에도 사곡면 안산(마곡사 주변 30 )에서는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탓에 정식 씨 장모는 아직도 장인이 북에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계신다.

같은 사곡면이라도 장모의 친정 쪽 마을은 피해가 컸다. 면사무소가 있던 호계리 쪽은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이 심했고 피의 보복이 횡행했다. 그 때문에 장모의 친정은 절손이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정식 씨의 처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장모는 시댁을 나와 딸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장인은 돌아오지 않고, 문중의 대를 끊을 수 없다는 문중 어른들의 거센 압력 때문이었다. 처조부는 문중의 친척 중에서 양자를 맞아들이고 그에게 종손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다. 어쩔 수 없이 장모는 자의 반 타의 반의 심정으로 시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세월 고향을 등지고 사셨다. 어찌 보면 또 다른 실향민이 된 셈이다. 소문에 의하면 종손이 된 양자가 방탕하여 가산을 다 탕진하고 객지로 나갔는데, 그 뒤부터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처가가 거의 폐가수준으로 몰락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정식 씨는 장모집에서 처가살이를 오래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애들을 장모가 키워주어야 했다. 정식 씨는 장모와 사이가 좋았다. 장학사가 되었을 때도 장모는 정식 씨를 자랑스러워했다.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도, 교장이 되었을 때도 그랬다.

정식 씨가 장모와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가족사를 소설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정식 씨가 어머님 가시는 곳’, ‘아버님 계시는 곳등의 소설을 발표하고, 처가 쪽 가족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눈치를 챈 장모가 갑자기 정식 씨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체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을 꺼리신다. 이 상황에 관광이 타당하냐는 반론만 돌아왔다.

이런 처지여서 정식 씨는 집사람이 반대한다면 칼럼을 쓰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라, 월드컵이나 보며 편히 살자. 삼류작가인 주제에 뛰어봐야 벼룩 아닌가.

 

3

 

월드컵의 한국출전 경기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가 아니라 하늘과 땅만큼이나 간극이 컸다. 국가대표팀 감독과 단장의 사임 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었다.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그런 기사들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옆에 조그만 박스기사가 눈에 띠였다. ‘브라질월드컵 4강 진출. 북한, 중국을 2:0으로 이기고. 유튜브 나돌아’. 이게 무슨 소리일까? 북한이 언제 지역예선을 통과해서 4강까지 갔단 말인가?

정식 씨는 궁금한 나머지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를 검색했다. 북한이 일본을 7:0으로 이기고, 미국을 4:0으로 이긴 다음, 중국을 2:0으로 이기고, 4강에 진출했다는 동영상이 떴다. 외국신문의 논평까지 실려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는 북한의 지도자라는 어린 뚱뚱이가 환호에 답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지도자에게 세계인이 환호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종종 보도사진을 조작하더니 동영상까지 조작하고 있었다. 이런 조작으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이웃하여 살고 있다는 생각이 한심했다.

동영상에 대한 댓글 중에 누군가가 북한을 음해하려고 조작했다는 것이 꽤 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댓글을 단 사람들의 집착도 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실리보다 이념에 집착할까? 왜 북한문제만 개입되면 사실보다 추측과 억지가 더 설득력을 얻게 될까?

북에 대해서 체험을 한 것이 정식 씨는 많지 않다. 남북교류가 활발할 때 아름다운학교 어쩌고 하는 운동단체가 주관한 개성공단 견학을 하루 한 것과 남북한 작가교류를 빙자해 금강산세미나에 다녀온 것이 전부다.

개성공단 견학은 현대그룹의 브리핑을 받고 지극히 제한된 구역을 둘러보는 데 그쳤다. 봉제공장과 시계공장을 견학했다. 통제구역에 대한 사진을 찍고 곤욕을 치른 일행 중 한 사람에 대해서도 기억이 난다. 정식 씨 일행을 안내한 공단관리인들은 기세 당당한 북한 경비병들에게 사과하기에 바빴다.

금강산관광은 꽤 어렵게 다녀왔다. 소설가들이 모인 협회의 남북작가세미나가 추진된 것은 겨울이었는데, 정식 씨는 학교장으로 23일 동안 학교를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연가나 복무관계에 관해서는 교육장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북한 작가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 그들과 술잔이라도 기울이면서 속내를 들여다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교육장은 쉽게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교구업체가 돈을 대서 교장단에게 금강산 여행을 시킨 것이 말썽이 된 탓이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서……. 다음에 가면 안 되나요?"

"다음에 언제 다시 남북작가 교류가 있을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한번 선처해주시죠."

쉽지 않은 줄다리기였다. 결국 협회가 교육청에 협조공문을 보내고, 정식 씨를 세미나 발표자로 명단에 올린 다음에야 허락이 떨어졌다.

겨울 금강산은 아름다웠다. 하긴 어느 계절인들 금강이 아름답지 않으랴. 그러나 육로관광을 위하여 휴전선을 넘어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의 산하는 모두 헐벗고 빈곤한 티를 감출 수 없는 게 확연했다. 그들은 감추고 싶었겠지만 가난이란 그리 감추고 싶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세미나는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애당초 북측 작가들은 참가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상당한 금전적 지원을 요구했으나 협회가 지원할 여력이 없는 것 알자 불참을 통보해왔다고 한다. 참 아쉬운 일었다.

정식 씨가 금강산에 간 목적은 하나가 더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이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남겼다는 옥류동 계곡의 글씨를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옥류동에는 많은 문사들이 글씨를 남겼다. 지워져서 판독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있고, 제법 뚜렷한 자형을 간직하고 있는 글씨도 있어서 면암의 글씨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렵게 안내원을 찾아 물어보았으나 대답은 신통치 않았다.

"여기 옥류동에 면암 최익현 선생의 필적이 남아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만."

"면암이 누굽니까?"

"왜 그 구한말에 유명한 항일 의병장."

"우린 백두줄기만 우뚝하다 할 뿐 나머지는 다 곁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정식 씨는 할 말이 없었다. 하기야 통제체제의 사람들이 개방체제의 사람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려니 접촉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교육시키고 훈련시켰을까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역사란 누군가 작심하고 조작하려면 조작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저녁에 룸메이트 K 작가는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했다. 북측 안내원 한 사람을 친하게 접하면서 많은 사적인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매점에서 술을 한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북측 안내원은 어렵게 담배 한 보루를 사달라고 하더란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보내고 싶다고 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하기야 사람 사는 사회를 통제한다고 인간의 욕구를 다 통제한다는 사실이 쉽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정식 씨는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바로 접었다. 위험부담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삼류작가 정식 씨는 그런 사람이다.

금강산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리를 나란히 앉은 사람은 J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정식 씨가 전에 두어 번 읽어본 기억이 났다. 베트남 참전했던 그는 고엽제 피해를 입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참전용사는 보수 쪽 인사들이 많은데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얼마 전 중견작가 이 모 씨의 책장례식 참가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있었다. 정식 씨는 작가가 같은 작가의 책장례식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정식 씨 입장에서는 적어도 작가로서 곤경에 처한 작가를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심정적으로는 같은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J 작가가 가해자 쪽에 동조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정식 씨는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훼손한 사례라고 정식 씨는 생각했으나 생각을 굳이 남에게 밝힐 필요를 느끼진 못했다. 정식 씨는 그런 사람이다.

금강산은 우리 것이나 마찬가지입디다. 사방이 다 우리나라 사람들 천지던데요, . 하하.”

정식 씨의 생각은 다르다. 남북의 체제경쟁이 남쪽으로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체제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권이라는 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정식 씨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도 않았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생각이 많이 다르다 보니 대화에 흥미를 느끼기도 어려웠다. 정식 씨는 피곤하기도 해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것으로 불만을 대신했다. J 작가는 계속 앞자리 뒷자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정식 씨는 부담 없이 듣다가 자다가 하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몇 년 뒤 남쪽 관광객이 통제구역을 벗어났다는 혐의로 피격, 사망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J 작가의 호언장담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계속 대립과 긴장의 적대관계를 계속하고 있다. 체제경쟁은 그런 것이다. 치사하고 치열하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4

 

정식 씨는 장모에게 여러 번 금강산 관광을 제안했다. 그러나 장모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관광은 무슨, 그럴 생각 없어요.”

해외는 물론 국내관광도 전혀 안 다니시는 분이었다. 경치가 아름다운 만큼이나 장모의 올곧은 성품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장모는 이산가족상봉이 추진될 때마다 꼬박꼬박 상봉신청을 했다. 상봉이 안 되더라도 장인의 생사라도 알아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으셨다. 그러나 번번이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고 이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마저 남북대치상태 속에 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장모는 성격이 깔끔한 분이셨다. 이십 청상에 딸 하나를 고이 길러 훌륭하게 키우셨다. 맞벌이를 하는 정식 씨 부부를 위해 외손자 둘을 키워주신 분이다. 어려서부터 아들들은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를 더 따랐다. 정식 씨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산다. 입으로는 늘 장모님 제사는 제가 모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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