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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6 13:01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3) 오대석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395  

 

물론 받아들일 분이 아니시다.

남의 집안 대를 끊어놓은 사람이 무슨 염치로 사위 제삿밥을 얻어 묵겠소. 화장해서 마곡사 영은암에 맡겨주구려.”

시종일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그런 분이 이제 여든을 넘기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지셨다. 딸과 사위에게 신세지기 싫다며 얼마 전에는 요양원으로 거취를 옮기셨다.

정식 씨는 아직도 칼럼을 포기하기 싫은 게 사실이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게 당연한 요구라는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글이 잘 안 써질 때 나타나는 버릇이 나오고 있다.

당신, 아직도 그 글을 쓰려고 하는 거 다 알아요. 당신은 집필이 잘 안될 때 하는 습관이 하나도 안 변했거든요.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해서 그럴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사실 정식 씨는 요즘도 부지런히 인터넷서핑을 하면서 자료를 모으는 중이다.

정식 씨는 승부처에서 결기를 보이지 못하고 늘 현장을 회피하며 살아왔다. 단 한번 결기를 보였던 적이 있었다. 마침 쟁점화 되었던 고등학교 근현대교과서 파동에 정식 씨가 적극 교육부와 교육청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교육부에 의해 가장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폄하한 것으로 지목된 K출판사의 교재를 정식 씨가 근무하는 학교도 채택하고 있었다. 마침 덜 편향된 것으로 알려진 J출판사의 필자가 같은 학교 역사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정식 씨는 교육부의 K출사의 교재를 바꾸는 게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격렬하게 저항한 것이 바로 그 역사교사였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이득이나 영달보다 노조의 권익이 우선이었다. 교육부의 수정권고, 교과서집필자들의 거부, 출판사에 대한 교육부의 검정 취소 압력, 출판사의 거부 등의 지루한 공방을 거치면서 학교는 피폐해져 갔다.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어 이러는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불면증과 소화불량의 증상이 정식 씨에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그 동안 공들였던 인간관계나 안면은 도무지 효력을 못 냈다. 진영논리와 협박, 충돌로 일관했다. 교육과정심의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도 분규에 휘말렸다. 우군이라 믿었던 학부모위원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정을 망설였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담임교사에게 자녀를 인질로 잡힌 신세가 학부모의 처지 아니던가. 오랜 줄다리기 끝에 문제가 된 교과서의 상당부분이 수정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지만 학교의 피해는 컸다.

정식 씨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의 인생이 생생한 현대사자료라는 깨달음이 왔다. ‘어머님 가시는 곳이라는 단편을 부랴부랴 집필하였으나 부실하기 짝이 없는 단편이 되고 말았다. 어머님뿐만 아니라 이모, 고모, 백부, 외삼촌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야 지나온 시대의 증인들이 주변에서 사라진 걸 깨달았다. 너무 미루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생존해계신 분들도 기억이 희미해져서 별 도움이 안 된다.

아버님이 치매로 언어능력을 상실한 지금에서야 일제 강점기 사범학교를 나와 훈도로 일제의 식민지교육현장에 서셨던 아버지의 체험을 기록하거나 녹음해놓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곤 한다. 늘 뒷북이나 치면서 분주하게 허둥대지만 성과는 언제나 미미하다. 고향 이야기, 처가의 가족사는 꼭 좋은 소설로 남기고 싶어서 아내에게 접근하였지만 아내도 고향 이야기에 대하여는 알레르기를 보인다.

장모도 처음에는 별 경계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허나 정식 씨의 의도를 간파한 뒤부터는 완강하게 거리를 유지하셨다.

모질고 험난한 팔자를 광고까지 할 염치가 없구려. 그저 묻어두는 것이 떠난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우.”

그리고는 입을 굳게 다무셨다. 특히 한국전쟁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지난 주말에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장모를 뵈러 갔다. 안 하시던 행동을 하셔서 정식 씨는 많이 당혹했다. 모처럼 만난 정식 씨에게 장모는 큰소리로 말했다.

사위, !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

평상시 사위에게 말을 낮추어하신 분이 아니다. 그날을 왜 그랬을까? 정식 씨는 그저 웃는 것으로 어색함을 누그러뜨리려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은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았다.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장모님이 오늘 왜 그러셨을까? 혹시 당신이 내가 쓰려는 글에 대해서 말했소?”

전에도 어머님은 당신이 글이 잘 안 써질 때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어요. 방해가 안 되려고 필요 이상으로 주의를 하신 분이죠. 아마 당신 질문이나 표정, 분위기에서 낌새를 채신지도 모르고.”

그래도 평상시 안하시던 언행이시잖아.”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저도 당신에게 서운한데 어머님은 더하실 거예요. 눈치가 비상하신 분이잖아요.”

이제 그만 내려놓으셔도 좋으련만……. 그날 밤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신 미쳤어요? 아무리 글에 욕심이 많더라도 그리 잔인할 수가 있어요? 당신 자꾸 이러면 같이 못 살아요.”

아내의 최종 결론은 단호했다. 정식 씨는 더 버틸 여력을 잃었다.

며칠을 더 끙끙거리던 정식 씨는 드디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칼럼니스트로 명성을 얻고도 싶고 명예욕도 없는 것은 아니나 도무지 불감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 씨는 L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의는 고맙지만 아무래도 글에 자신이 없다고. 다음을 기약하자고.

정식 씨는 그런 사람이다. 남의 뒤나 따라가다가 늘 뒷북이나 치는 사람이다. <>

 

-펜문학 3호에 실린 초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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