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구글광고
 
작성일 : 18-02-23 10:38
단편소설: 복귀(1) 펜문학 창간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552  

 

단편소설

   복 귀

                      이지명

 

1

서장우가 끌려 온 곳은 본인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이외의 곳이었다. 예심이 끝나고 억울하지만 죄가 확정되어 가족과 함께 평양을 떠날 때만 해도 그는 추방되어 어느 시골 농장 쯤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트럭에 실려 구불구불한 계곡을 따라 들어 온 곳은 사방 전기철조망을 둘러치고 입구에 세운 높다란 망루에 무장 보초까지 서 있는 살벌한 곳이었다.

대뜸 여기가 말로만 듣던 정치범관리소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털털거리며 정지한 트럭에서 내리는 그의 두 다리가 힘을 잃고 휘청거렸다. 애써 몸을 추스른 서장우는 아내와 딸이 내리는 것을 거들었다.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도 공포로 하얗게 질렸다. 밤새 비포장 길을 달린 트럭위에서 일곱 살 잡이 딸은 너무 지쳐 도무지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

총을 멘 두 병졸이 실개울이 흐르는 골 안 양 옆으로 쭉 늘어선 반토굴식 주택에 그들을 안내했다. 이게 너희들 살 곳이라며 구석진 곳에 있는 토굴집을 가리키고는 어서 짐 옮기라고 떡떡대곤 다시 망루 쪽으로 내려갔다.

막 생긴 돌을 쌓아 지은 움막 같은 집안으로 서장우는 아귀도 안 맞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거적을 깐 방바닥에 애를 앉히고 나서 그때까지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아내의 어깨를 한 번 쥐어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사방을 휘 둘러보니 협곡을 낀 반대편에 덩실하게 지은 콘크리트 건물이 보였다. 삐죽한 지붕에는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마당 끝에 세운 보초막에는 총 든 병졸이 부동으로 서 있다. 관리건물인 것 같다. 그 뒤에 병영으로 뵈는 누런 집도 보인다.

윗 쪽을 올려다보니 남루한 옷을 걸친 초췌한 사람들이 사래긴 밭에 한창 파종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서장우는 다시 망루 쪽에 내려와 던지다시피 부려놓은 짐을 들었다.

큰 짐들은 가져올 수 없었는지 올망졸망한 보따리들뿐이다. 그가 한차례 짐을 갖고 올라가자 아내도 기운을 차렸는지 말없이 따라나섰다. 무척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깊은 수심이 어렸다. 아내의 신상을 살피는 서장우의 입에서 또 한 번 깊은 한숨이 쏟아졌다.

 

망루 쪽에 내려와 가벼운 짐을 골라 아내에게 쥐어주는데 경비군 병영에서 경비병 여럿이 나오다가 그들을 보고 목석처럼 굳어진다. 모두 입을 하, 벌리고 여자만 쳐다본다. 봄 파리가 이빨 안 닦은 녀석이 있는지 입 주변을 뱅뱅 돌다 내려앉아도 헤, 벌어진 입은 다물려지지 않는다.

, 곱구나야. 저게 사람 맞아?”

침방울을 떨어뜨리며 하는 병졸의 말이다.

 

그러게, 오늘 평양서 간부급 입소자가 온다더니 그건가 봐. 일급 도시에서 좋은 것만 먹고 멋진 것만 보고 살아 그런가? 되게 멋지다야. . 저 허리 좀 봐. 버들개지 같잖아?”

나긋나긋한 버들잎 같은데?”

어 씨. 저런 여자 한 번 안아봤음 원이 없겠다.”

뭘 그래. 그래봐야 입소잔데, 기회를 봐 한 번 자빠뜨리면 되지. 까짓 거 저런 것들은 말이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맛 좀 보여야 돼. 지금까지 되게 잘살았을 거잖아

, , 무슨 개수작이야?”

마당 귀퉁이에서 담배를 빨던 자가 빽 소리치며 다가온다. 졸병은 아닌 것 같고 반장 쯤 하는 급이 있는 놈 같다.

 

듣자니까 자식들. 저 여자 남편 되는 놈 너들 다섯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아마 못 당할 걸. 괜히 흔들려다가 부러지지나 마라 알았나?”

두억시니 같은 졸병들이 그 말에 얼이 빠진 듯 꺼덕꺼덕 고개만 주억거린다.

왜 겁나냐?”

아니요. 그래봐야 입소잔데, 한 번 맞장 떠 보디요 뭐

진짜야?”

내무반장 동진 구경이나 하시라요. 우리가 알아서 해볼 테니 신고식이야 치러야디, 안 그래요?”

좋아. 기카면 가자우

우르르 망루 쪽에 몰려온 무리는 방금 짐을 들고 올라가려던 서장우 부부를 빙 둘러싼다.

이름이 뭐야?”

깡마르게 생긴 자가 나서며 씨벌이자 서장우는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시답잖게 대답한다.

서장우라고 하오.”

, ? 하오? 이 자식이 대체 어느 앞이라고 감히 오자를 붙여?”

“?”

 

반장을 내놓고 다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발길질을 한다. 서장우는 아무 반항도 하지 않고 무지한 매를 말없이 받아들인다.

, 너 아직도 평양 살던 간분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여긴 정치범관리소야. 선생님들 앞에서 그런 불손한 대답을 하면 안 되지. 다시 말해 봐

내무반장이란 자가 제법 훈계조로 뇌까렸다.

서장우라고 합니다.”

입술에 밴 피를 문지르며 대답하는 서장우의 얼굴에 얼핏 사나운 빛이 스친다.

그래 그렇게 예보를 써야지. 나인 어려도 우린 다 네 선생님이니까 앞으론 최대의 존칭을 쓰라. 알았어?”

알겠습니다.”

뭘 해먹다 온 놈이야?”

. 평양서 무역 일을 했습니다.”

무역일? 그럼 비행기 타고 왔다리갔다리하며 돈 벌었단 거야?”

말하는 꼬락서니가 조금 우스웠는지 아님 어처구니없어 그랬는지 옆에 섰던 부인이 새물 웃는다. 대뜸 난리가 났다.

오라, 야 그거 웃으니끼니 사람 같지 않게 곱구나야. 데거

좋은 것만 골라 처먹으며 살아긴지 거 여자 몸이 야들야들한 게 참 뼈가 있는지 모르갔다야.”

반장동지. 웃는 것도 거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 같습니다. 거 있잖습니까? 기래. 아침이슬요정. 아이구야 이자 생각나네.”

뭘 대단한 것을 생각해 낸 듯 우줄거리던 병졸이 갑자기 아랫다리에 쥐가 일었는지 스르륵 주저앉기까지 한다.

 

, 자 개소리들 말고 이 짐 하나씩 들어

내무반장이 꽥 소리쳤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병졸들이 모를 리 없다. 보다 구석진 곳에 가기 위한 구실이다. 머리위엔 망루에 버티고 선 병졸도 보이니까, 아무튼 서장우로서는 쉽게 짐을 가져갈 수 있었다. 모두 짐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공지를 벗어나 토굴집에 도착했다. 골 안은 한적했다. 지금 이 시간에 집집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군복을 입은 무리들이 우르르 밀려들자 일곱 살 쯤 돼 보이는 여자애가 문밖에 나와 그들을 쳐다본다.

 

얘 넌 들어가라.”

병졸 하나가 애를 토굴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왜들 이럽니까?”

, 자식 짐을 들어줬으니 값을 내야지. 설마 공짜라고 생각하진 않았갔지?”

그렇긴 합니다만 잡혀온 신세라 가진 게 없군요.”

가진 게 왜 없어.”

희한한 걸 갖고 있으면서, 안 그래? 흐흐

그것도 백만 냥짜린데, 히히

두서없이 지껄이는 자들의 입에는 모두 침이 게 발렸다. 내무반장이라는 자가 나선다.

정 없음 말이야. 네 여자 가슴 한 번만 보여 주라. 그럼 되갔어.”

뭐요?”

서장우의 눈이 대뜸 치솟는다.

, 뭘 그래. 지금껏 너 같은 반역자새끼들 이삿짐 들어 준 선생님들은 없었어. 글고 그깟 것 한 번 보자는데 왜 눈 치뜨면서 기래야. 혹 너들 우리와 같은 급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갔지 말해 봐?”

암팡져 보이는 자가 서장우의 가슴을 툭툭 치며 뇌까린다.

 

한 놈이 슬슬 여자 뒤로 다가서며 엉덩이에 손을 댄다. 기겁한 소리가 터질 줄 알았는데 여자는 침착하게 그 손을 쳐버리며 서장우의 뒤에 붙어 선다. 내무반장이 다시 지껄였다.

, 네가 이해하라. 모두 총각들이고 춘궁기가 돼서리 말이야 거 있잖아. 갈증 같은 거 말이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니끼니 이거이 치솟는 거 있잖아. 땅에서도 새싹이 돌멩이를 들어 일구는 봄철 아니가. 눈 질끈 감고 살짝 한 번만 보여주라 기럼 앞으로 여기서 사는데 우리가 네 색시만은 특별히 살펴 주갔어.”

 

우르르 떼거지들이 여자의 팔을 잡아 저희 쪽으로 왈칵 당겨 간다. 가는 비명이 터졌지마는 그게 달아오른 개떼들의 열기를 식혀주진 못한다. 대뜸 한 놈이 여자의 가슴에 손부터 쑥 밀어 넣는다.

이 개새끼들 당장 놓지 못해? 물러서라.”

서장우의 입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터졌다. 여자를 당기며 시시덕거리던 자들의 입이 거의 동시에 떡 벌어진다. 사람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아서인지 서로를 마주본다. 내무반장이란 자의 눈은 불거지다 못해 당장 빠져버릴 것 같다. 그 눈에 이내 독기가 서린다.

 

이 새끼레 이자 우릴 보고 개새끼라 했나? 야 뭣들 해 저 자식 버릇 가르쳐. 좋게 말하니까니. 니미

다섯 명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우지끈 툭 탁, , , 여러 잡음이 한데 어울린 난잡한 싸움이 벌어졌다. 서장우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적당한 힘을 넣어 한 놈씩 급소를 쳤다.

 

조금은 버거웠다. 아예 죽여 버리라면 그까짓 어려울 것도 없지마는 죽이는 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설 익혀 놓으면 다시 달려들겠고 아무튼 진땀을 흘리며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대는 놈들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손에 힘을 가해 급소를 쳤다. 잠간 사이 다섯 놈이 모두 땅바닥에 구겨 박혔다. 그래도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모두 급소를 맞고 너부러져 헐떡거리자 서장우는 천천히 반장 앞으로 걸어왔다.

 

 


 
 

Total 69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69 단편소설: 복귀(4)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594
68 단편소설: 복귀(3)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573
67 단편소설: 복귀(2)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618
66 단편소설: 복귀(1) 펜문학 창간호 이지명 02-23 553
65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3) 오대… 이지명 01-06 565
64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2) 오대… 이지명 01-06 494
63 단편소설: 삼류작가는 늘 뒷북만 친다(1) 오대… 이지명 01-06 521
62 풍자콩트: 충신의 진정성 (5) 이지명 05-11 1453
61 단편소설: 칠보산(4)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311
60 단편소설: 칠보산(3)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317
59 단편소설: 칠보산(2)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238
58 단편소설: 칠보산(1) 송시연작 펜문학제4호 이지명 05-06 1300
57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4)윤양길 이지명 04-03 1576
56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3)윤양길 이지명 04-03 1678
55 단편소설: 어떤 여인의 자화상(2)윤양길 이지명 04-03 1687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