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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3 11:03
단편소설: 복귀(4) 펜문학 창간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570  

, 출발일어서는 서장우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 끝내 찾아내지 못했구나. 용삼이가 그리도 둔한 사람인가?)

일행과 함께 지하로 내려오는 서장우의 얼굴이 다시 고통으로 이지러진다. 30만 달러는 정지된 화면 속 위치에 언젠가 서장우가 매몰했었다. 누구도 주의를 돌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위치이기도 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용삼은 모란봉구역하수사업소직원이다. 서장우의 오랜 지기였다. 무슨 일이 터지면 이 돈으로 살 구멍을 찾으려는 주도 세밀한 장우의 작전에 따라 둘은 사전에 면밀한 계획을 세웠었다.

바로 어젯밤 숫자로 된 통화도 용삼이와의 대화였다. 약속대로라면 매몰된 돈을 용삼은 새벽에 꺼내 갖고 오늘 밤 아내와 처가식솔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야 했다. 그리 했을 줄 믿었다. 모든 줄은 돈만 있으면 재빠르게 가동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면에 비쳐진 매몰 장소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거푸 생각해도 보위부에서 저런 외지고 추한 지하하수시설까지 통제했을 리는 없는데,

벌써 계단을 내려 물이 질척거리는 바닥에 내려선다. 매몰 위치가 가까워질수록 서장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따라 선 요원 셋은 손에 총을 들고 긴장하게 장우만 주시하며 걷는다. 예사롭지 않은 장우의 거동 때문이다. 맨 앞엔 상하수도지배인이 선정해 준 인부 두 사람이 콘크리트 벽을 뚫을 지렛대며 망치 같은 도구들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매몰위치로 가는 길 안내자이기도 했다.

드문드문 매달아 놓은 전구의 희뿌연 빛이 비치는 갱도 벽에 일행의 그림자가 비쳐 어룽어룽 춤을 춘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구정물엔 악취가 진동했다.

모두 얼굴을 찡그리며 한 시간 반 만에 매몰 장소 근처에 도착하자 서장우는 힘없이 물 바닥에 주저앉는다.

왜 그래. 다 온 것 같은데?”

박일천이 날선 눈을 굴렸다. 서장우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아 혹 거짓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 아까부터 가슴을 조였다. 만약 거짓이라면 공로를 세울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게 된다. 거짓이 아니더라도 서장우의 다른 속심이 드러나면 그에게도 치명적인 후과가 차례질 것이었다.

 

왠지 불안한 감정이 지하도에 들어설 때부터 그를 휘어잡고 놓지를 않았다. 갈등의 정점을 헤매는 것 같은 장우의 표정 때문이었다.

왜 막바지에서 서장우가 갈등하는지, 순순히 내놓기만 하면 직성에 맞는 본직에도 복귀하고 그처럼 중시하는 가족과 함께 편히 살 수 있는데, 기쁨이 스멀거려야 할 대신 저승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안색이 죽어있다. 침중한 모습은 돈을 매몰했다는 장소를 본 순간부터다.

누가 벌써 파 헤쳐 돈을 가져갔다면 그리될 수 있어도 멀쩡히 보존되어 있음에도 그런 갈등에 휩싸인다면? 박일천은 그 순간 30만 달러의 거취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자가 이리도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이르지만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감히 보위기관을 능멸한 죗값을 만 탄창이 된 권총의 탄알을 모두 그 거짓몸뚱이에 쏘아 박는 것으로 치르리라.

 

구정물이 흐르는 바닥에 주저앉아 깊은 한 숨을 내쉰 서장우가 천천히 일어난다.

? 정작 큰돈을 내 놓으려니 아까워서 그러는 건가?”

박일천이 야릇한 미소를 짓고 뇌까렸다. 그를 돌아보는 서장우의 눈에 경멸의 빛이 번쩍 했지만 입에서는 온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돈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10여 년 동안 내화가 아닌 외화를 주무르면서도 돈에 대한 애착을 가져본 적은 없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허둥거리는 거요.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소?”

있소. 내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것이, 그런데 그 소중한 것이 왜 나를 떠나려 하는지 모르겠소.”

그게 무슨 소리야?”

서장우는 침통한 표정을 끝내 풀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발 두발 매몰 장소로 걷는 걸음마저 비칠거렸다.

순간. 침침하던 서장우의 얼굴에 밝은 빛이 확 어린다. 무얼 숨기거나 감추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하게 파 헤쳐진 매몰 장소가 두 눈에 확 들어온 순간부터다. 장우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시멘트로 부착된 벽돌 층을 허문 큼직한 공간이 그렇게 반가운 듯 그는 거기에 손을 넣고 마구 헤집었다. 헤쳐진 이상 그 안에 아무것도 남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는 환희에 넘쳐 부르짖었다.

용삼아 고맙다. 네가 끝내 해냈구나.”

물 바닥에 주저앉는 그의 볼로 하염없는 눈물이 곬을 타고 거침없이 흐른다.

 

짧은 그 한 순간에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박일천의 눈이 커진다. 지금 아무 것도 없는 그 공간이 어찌하여 서장우에게 그렇듯 당장 미쳐버려도 무방할 커다란 기쁨을 주었는지 그의 머리로서는 익히 분별할 수 없었다. 저 사람은 이제 자기에게 어떤 처벌이 가해지리라는 걸 정녕 모르는 것인가?

무엇인가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뇌리를 휘감는 것이 있었으나 실체를 짚어 내기에는 내재된

사고가 모자랐다. 박일천은 인부들에게 얼굴을 돌렸다.

아까 사무실에서 화면으로 본 지점이 예가 맞소?”

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보았을 땐 여기가 헤쳐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이요?”

위치 확인을 위해 보았을 뿐입니다. 바로 엊저녁 쯤 아니면 새벽 쯤 누가 여길 헤친 것 같습니다. 구조물에 대한 영상은 썩 전에 찍어둔 것입니다.”

인부 하나가 떨어져 나온 벽돌장이며 시멘트 부스러기를 살피며 말한다.

 

박일천은 다시 서장우를 돌아보았다. 지배인 실에서 아무 이상이 없는 장소를 보며 몹시 실망하던 그다. 정작 헤쳐진 장소를 보고는 그 실망이 환희로 바뀌며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소리친다. 그렇다면? , 그래서였구나, 이자는 애초부터 30만 달러를 넘겨 줄 요량이 아니었다. 철저히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이 번개 불처럼 번쩍한다.

그런데 어인일인지, 심경과 달리 측은한 마음이 분노를 누르며 머리를 다독였다.

달러가 없으니 이제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서장우는 죽는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자는 애초부터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죽는 걸 알면서도 세상을 통짜로 가진 듯 기쁨에 설레는 모습. ? 박일천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는 부드러운 자세로 서장우를 일으켜 세웠다. 이러한 장소에서 그가 거짓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돈은 어디로 갔소?”

내 아내가 지금쯤 처가와 함께 국경을 넘고 있을 거요. 아니 이미 넘었을지도 모르겠소.”

뭐요?”

그제야 무엇인가 섬광처럼 번뜩 떠오른다.

그럼 애초부터 30만 달러는 우리에게 넘겨 줄 생각이 아니었던 거요?”

그렇소.”

왜 그랬는데, 그리되면 다시 복귀된다고 분명이 약속했잖소?”

서장우가 씩 거친 숨을 내쉰다. 하지만 보는 눈길엔 모든 것을 체념한 온화함만이 흐른다.

난 그런 복귀를 원하지 않소.”

무슨 말이야?”

지나온 뒤를 돌아보면 참으로 허무하오. 타국을 메주 밟듯 다니며 난 당을 위해 모든 걸 바쳤소. 남보다 더 많은 외화를 벌어 늘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수금하군 했지. 잠도 못자며 아내와 딸에게 색다른 음식과 좋은 옷도 못 입히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당에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었소. 지난 10여 년 간 내가 바친 외화만 해도 실히 수백만 달러는 넘었을 거요. 그런데 어느 날 내게 차례진 것은 차디찬 수갑뿐이었소. 이국의 하늘 아래 휘 뿌려진 내 충성스런 땀이 결국 반역이라는 철퇴로 변해 나를 사정없이 쳐 갈겼단 말이요. 배신은 한 번이면 족하오.”

 

배신? 배신은 당신이 한 것이오. 우리에겐 무슨 일을 하던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지. 그걸 당신도 승인했고, 그리고 어겼을 뿐 그렇게 역설하면 안 되지.”

그런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사람이 살아 가다보면 뭔가 어길 수도 있는 거 아니요?

하지만 그것이 곧 치명적 올가미가 되어 나뿐이 아닌 가족까지 죽음으로 몰아간다면 그 규칙은 대체 무엇에 필요한 거겠소. 그건 인간사회가 수용해선 안 되는 일인 것 같아. 당신도 이제 한 번 오라를 지고 잡혀가 보시요. 당신 눈앞에서 아무 죄도 없는 가족이 남에게 능멸당하는 꼴을 직접 목격한다면 아마 나보다 더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될 거요

박일천은 쩝쩝 입을 다셨다.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서장우다. 6개월에 걸쳐 그를 심문하며 전혀 느껴 보지 못하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서장우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자기의 억울함이나 감정 같은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려 애쓰는 형이 아니었다. 한마디만 증명해도 자신에게 유리했지만 그는 부디 그것을 제 입으로 말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더 입을 닫는다. 그런데 지금은 묻지도 않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보위원 생활 20여 년. 많은 인간들을 직접 예심 해봤지만 서장우처럼 마음 속 기둥이 든든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자신이 진행한 일에 자그마한 부끄럼도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뱃심이었다. 그런 사람을 죄수로 몰아 매장해 버렸으니, 이제 다시 본직에 복귀시킨들 그걸 감지덕지 받아들일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그걸 왜 이제야 느껴보는 것일까?

 

한 가지만 묻겠소. 그런 복귀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럼 어떤 복귀를 원했던 거요?”

복귀라......”

서장우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부디 복귀를 원했다면 그건 아마 인간복귀였을 거요.”

인간복귀? 언제는 인간이 아니었소?”

인간이라 자부했지만 내 가족을 정치범관리소에 넣는 순간 나는 이미 인간이 아니었소. 죄 없는 아내와 딸을 아무런 보호도 없는 죽음의 수용소에 넣고 어찌 나를 인간이라 말 할 수 있었겠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합시다.”

“?”

손전화기 한 번만 쓸 수 없겠소?”

 

박일천은 무슨 정신에 전화기를 내주었는지 모른다. 마치 친구의 부탁을 받은 듯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꺼내 내밀었다.

그걸 받아든 서장우는 번호를 눌렀다. 그 다음 천천히 귀에 갖다 대자 이미 통화지역을 벗어났다는 통신사 안내원의 말이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전화기를 닫는 서장우의 얼굴에 한없이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 미소는 마치 이른 새벽, 산천을 감싸는 젖빛 안개처럼 소리 없이 주위의 사람들을 감쌌다.

 

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와 달랐다. 빈틈없이 포박됐지만 서장우는 마음이 가벼웠다. 거칠게 떨어지는 천정의 물방울도 질척거리는 구정물도 지하도를 꽉 채운 구린 냄새도 서장우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 모든 것들이 또 다른 향기가 되어 그의 넓은 가슴에 스며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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