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구글광고
 
작성일 : 16-12-08 10:14
수기: 나는 억울한 죄인이였다.-김길영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268  

수기                                 나는 억울한 죄인이었다.

                                                                                                                                김길영 2007년 입국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앞의 아찔하다. 젊은 시절 내가 당했던 일을 이제 와서 쏟아놓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체제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몹시 원망했다. 한국전쟁 중 아버지의 경력 때문이다. 고향이 황해남도 평산인 아버지는 전쟁 때 유엔군이 들어오자 미처 후퇴를 못했다. 그리고 치안대가 시키는 일을 했다고 한다. 완장을 두르고 대리보초도 섰는데, 그것이 치안대원 노릇한 것이 되어 내 계급성분은 타도대상으로 떨어진 것이다.

나중에 시켜서 할 수 없이 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아무튼 그러한 계급성분 때문에 나는 늘 어깨를 떨어뜨리고 살았다. 나는 군대도 못가고 산골농장에 배치 받아 농사를 지었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그런대로 살만하던 참이었는데 뜻밖의 사고가 터졌다.

 

23살 되던 해다. 그날 나는 동네 또래들과 함께 마을 뒷산 계곡에서 산천어 잡이를 했다. 산천어는 고지대의 찬물 속에서만 자라는 고기로 맛이 일품이고 약재로도 쓰인다. 반두를 가지고 올려치고 내리치며 열심히 잡고 있는데, 계곡의 소로를 따라 농장 트랙터가 퉁퉁거리며 올라왔다.

운전수 곁에는 농장 청년대장이 앉아있었다. 군제대후 청년간부로 농장에 파견된 사람이다. 그는 잠시 우리가 고기 잡는 모양을 보더니 다들 오라고 손짓했다. 우리 일행 셋이 다가가자 그는 트랙터 뒤에 싣고 온 전선을 풀어놓았다. 그리고는 머리 위 전주를 가리키며 뭐라고 소리쳤다.

그때야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우리는 환성을 지르며 그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물속에 전기를 흘려 고기를 잡는 거였다.

전에도 이런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 본 적이 있다. 전선을 이은 어망을 물속에 넣으면 고기가 감전되어 물위로 뜬다. 그걸 어망으로 거두어 다래끼에 담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새끼고기마저 모조리 죽이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농장청년동맹 비서라는 간판이 용기를 부추겼는지 대장은 아무 거리낌 없이 계속 이런 식으로 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다래끼에 어느 정도 산천어가 찼을 때쯤 대장은 무리지어 헤엄치는 산천어를 보고 생각 없이 전선을 연결한 어망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순간 아래쪽에서 비명소리가 터졌다.

19살 막내가 감전된 것이다. 그 애는 물에 뜬 고기를 집으러 발을 물에 들였는데, 위쪽에서 그것도 모르고 전선을 집어넣은 것이다.

기겁해서 그 애를 건져내보니 눈 흰자위가 돌아가 있었다. 모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중에도 군대 물을 먹은 대장이 달려들어 인공호흡을 했다. 하지만 그 애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후에 안 것이지만 그 애는 어릴 때부터 심장병을 앓았다고 한다. 크면서 조금은 나아졌다고 했지만 380볼트 고압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내게 돌아온 일이다.

 

우리는 보안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크게 조사할 것도 없는 단순사고였으므로 며칠 후 우리는 모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 달 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보안서의 호출이 있어 갔더니 그 자리에서 나를 체포해 구류장에 집어넣는 것이다. 나는 졸지에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마구 항의했지만 내 말은 전혀 먹혀들지가않았다.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얼마 후 나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재판은 해당농장에서 진행되는데, 농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감찰과장이 나를 감찰과로 불러 들였다. 이미 사무실엔 해당 보안원이 여러 명 있었다. 과장은 살갑게 수갑까지 풀어주고는 회의를 시작했다.

 

오늘 현지에서 너에 대한 군중재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감찰과장이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깊이 숙였다. 이미 쑤어놓은 죽인데 내가 뭐라 한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잖습니까? 구류장에서 머리 희도록 생각해 보았지만 책임질 사람은 나 밖에 없더군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그저, 아버질 저주할 밖에요.”

간신히 얼버무리며 새어 나간 말이다. 웃음이 터졌다. 모두 큰소리로 웃는다.

그건 아니야 이놈아! 뭘 그렇게 깊이 생각했어?”

? 그럼 그게 이유가 아니란 말입니까?”

 

과장이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일어나 오락가락 걷기 시작했다. 내 옆에 선 순간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졌다.

 

네가 이 사건책임을 지지 않으면 관여된 다섯 명 모두 감옥에 들어가야 돼. 사람이 죽은 이상 어느 누구도 빠져 나가지 못하니까. 하지만 본의 아닌 사고니까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기로 했어, 그게 바로 너야! 너라면 능히 감당하리라 생각했지. 넌 다른 네 사람을구했단 말이다. 어차피 감옥에 갈 일, 함께 가면 어떻고 혼자 가면 어때? 다른 사람 같으면 앙탈을 부리겠지만 넌 묵묵히 참았어. 우리가 널 제대로 봤다는 증거야. 3년만 참아라! 그 사이 대사령도 이끌어 볼 테니까. 잘만 되면 일 년이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농장에 내려가서 재판할 때도 별로 얼굴 뜨거운 일은 없을 거야! 자 가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참 바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이곳 자유민주주의 맛을 본 다음의 생각이고 그 당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용히 불러서 사연을 설명해 주는 감찰과장에게 감사했고, 동료 넷을 구했다는 긍지까지 느꼈기에 말이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호송차에 올랐고 농장 선전실에 마련한 재판장에 섰다. 검사의 논고가 이어졌다.

 

피고 김길영은 실수로 사람을 죽이는 죄를 범했다. 그러나 본 검사는 사건일정을 세밀히 분석한 결과 사망자가 이미 심장병으로 심신이 약해진 상태였기에 감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사가 진행한 조사에 의하면 피고는 평소 건실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맡겨진 농장일과 기타 사업에도 타인의 모범이 될 만큼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비록 사고라 해도 법이 금지한 전기 물고기 잡이로 일어난 사건이기에 살인죄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 검사는 피의자 김길영을 본 재판소에 정식 이관하는 바이다.”

 

잇따른 판사의 판결은 징역 5년이었다. 말과 달리 2년이 더 붙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재판과정을 지켜보던 청중의 입에서 판결순간 가벼운 한숨이 쏟아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래도 내가 남의 미움은 사지 않았구나하는 안도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밖에 나와 호송차에 오를 때 여러 사람이 다가와 내손을 잡으며 울먹였다. 같은 또래들은 언제 준비했는지 먹을 것을 싼 자그마한 뭉치를 차 위에 던져 넣기도 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를 쳐다보는 농장처녀들의 안타까운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호송차에 올랐다.

 

사건은 그것으로 일단락 지었지만 오늘에 와서 나는 참 어처구니없는 기분으로 그때 일을 떠올린다. 그런 경우엔 언제나 나 같이 계급성분이 나쁜 자가 책임져야 한다. 또 그렇게 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곳이 바로 북한사회다. 솔직히 그때는 그것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제야 그것이 바로 세뇌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나는 아버지만을 원망했다.

 

3년 후 나는 4,15명절에 대사령을 받고 풀려나와 다시 본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쓴 웃음만 나온다.


 
 

Total 60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 웹지기 05-12 3223
60 작은 천국 이지명 06-06 40
59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기원 이지명 06-06 38
58 양초 2개 이지명 06-05 40
57 혼자사는 방법 터득하기 이지명 05-29 105
56 은혜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이지명 05-24 111
55 천국과 지옥 이지명 05-24 116
54 잘못 건 전화 이지명 05-20 118
53 장자의 신상구(愼桑龜) 이야기와 그의 좌우명 이지명 05-20 113
52 두 친구 이야기 이지명 05-20 110
51 명의 허준 선생 어록 이지명 05-20 97
50 結草報恩(결초보은) 이지명 05-01 166
49 갓을 쓰고 다니는 조선인 이지명 05-01 203
48 실화 '송이' 이주성 09-08 770
47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 웹지기 05-12 3223
46 실화: 노력영웅의 소원(2)이주성 작 이지명 12-31 2446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