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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08 10:29
수기: 존엄 -정미향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360  

수기 존 엄

정미향 부천거주(2009년 입국)

 

그날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을씨년스러운 밤이었다. 나는 홀몸으로 두만강에 들어섰다. 바로 강 건너 중국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년 25세의 여자 몸으로 그것도 홀로 야심한 시각에 그 같은 일을 해냈는지 나도 놀라곤 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죄랄까? 내 아래로는 일곱 남매가 세살 터울로 연줄연줄 있다. 병들어 누운 아버지를 대신해 행방(행상)으로 열 식구를 먹여 살리던 어머니마저 기진해 자리에 눕자 우리 식구들의 생계는 사실상 풍전등화에 놓였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집안의 암운을 25살이나 먹은 맏이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독심을 품은 여자 앞에서는 검푸른 강물도 삼엄한 국경경비대의 눈초리도 비켜가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러나 불행은 그때부터였다.

 

강 건너 숲에 들어서서 젖은 바지를 벗어 물기를 짜던 내게 소리 없이 다가드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 남자들에게 꼼짝없이 붙잡혔다. 집안 사정을 말하며 눈물겹게 호소했으나 무단으로 강을 건너는 여자들을 잡아 대륙 안쪽에 팔아 톡톡한 재미를 보던 이 남자들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았다. 우악스런 손에 이끌려 나는 등을 떠미는 대로 지프차에 올랐다. 그 날 밤과 다음 날 낮 동안 정처 없이 달려 저녁 어스름이 깃들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결국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25천원이라는 거액에 팔려갔던 것이다. “남편이라 소개 받은 중국남자는 40이 된 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며칠 지내보면서 관찰한 결과 시집은 그곳 농촌마을에서 갑부로 불리는 집안이었다.

들어 온 날부터 벙어리처럼 아예 입을 봉해 버린 나를 앉혀 놓고 시어머니되는 분은 좋은 옷에 기름진 음식을 주면서 그저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무엇이던 소원대로 다 해주겠다고 손시늉을 해가며 역설했다. 하지만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정말 그 집에 눌러 앉아 착실한 며느리 노릇을 제대로 해 주었다면 그 후 내가 겪은 무시무시한 시련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너무 쉽게 나뿐이 아닌 우리 집 식구들도 넉넉히 구제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의 이성은 절대 닥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언제 한 번 외국 남성과의 결혼에 대해 꿈도 꿔보지 않은 나였고 더욱이 나보다 15년이나 위인 삼촌 같은 남자와의 합방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남자는 울면서 내 마음을 돌려세워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멀어져 갔고 나중에는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무슨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싫었다. 이런 환경에서 돈을 벌어 식구들을 구제하리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시집에서는 그러는 나를 위협했다. 그냥 그렇게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공안에 신고하거나 다시 더 먼 중국 서부지역에 되팔아 버리겠다고 했다. 그곳에만 가면 철 그물망에 여자를 가두고 마치 야생동물 길들이 듯 학대한다는 것이었다.

마을에 사는 조선족인지 어디 가서 데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통역까지 내세워 나를 설복하는 시집의 노력은 참으로 가상했다. 얼리고 욕하고 제발 말 좀 해보라고 해도 나는 벙어리마냥 그냥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꾸도 안했다.

 

무슨 말을 하랴, 떠날 때부터 내 안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기름진 음식을 마주한 순간부터 굶고 있는 식구들 생각에 눈물부터 앞선 나였다. 그냥 무슨 일이 있던지 언제 건 이 집을 벗어나리라 결심했다. 통역을 하던 사람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가버렸다. 그 후부터 그 집에서는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 현 상황에 적응되리라 믿었던 모양이다.

 

사실 당시 내 처지로서는 당장 가라고 해도 갈 수 없는 몸이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했고 손에 단돈 한 푼 쥔 것이 없었다. 남편이란 작자는 나를 텔레비전도 못 보게 했다. 그걸 자꾸 보면 말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적잖은 말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말을 익히려는 나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그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입놀림을 보고 나도 속으로 따라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무작정 중국말을 외웠다. 혼자 뜰을 거닐면서도 중얼거렸고 익힌 다음에는 그 말뜻을 알려고 노력했다. 헛된 일은 아니었다. 무엇이던 감각이 중요했다.

 

그렇게 1년 반 세월을 보냈다. 어느덧 내 손에는 몰래 모아 둔 돈 700원이 생겼다. 그 돈을 보면서 나는 결심했다. 어느 날 정작 떠나려고 보니 한쪽으로 걱정되는 일이 생겼다. 다름 아닌 내 몸에 아기가 잉태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심상히 여겼지만 점차 불러오는 아랫배를 보고 사태를 알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환각이 그걸 안 순간에 찾아들었다.

정말 황당했다. 내가 아기를 갖다니? 밤마다 못살게 굴던 중국남자가 그렇게 미워 보일수가 없었다. 그건 사실 미움을 초월한 증오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이 낯 선 집에 운명을 묻어야만 하는가? “시집사람들은 변형된 내 몸을 보고 무슨 경사라도 난 듯 좋아했지만 그럴수록 난 내 갈 곳을 가고야 말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나에게는 없었다. 1년 반이라는 세월 속에 이미 식구들 모두가 굶어 죽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생의 갈림길에서 고통 받는 식구들과 달리 타국에서 의식주 걱정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 온 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아기를 지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몰래 비누도 먹어 보고 계단에서 굴러도 보았다. 그래도 아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어느 날 시장에 나온 틈을 이용해 택시를 타고 읍 거리를 벗어났다. 아마도 시집에서는 임신한 나를 두고 조금은

경계를 늦춘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장에 나가는 것까진 내버려 두었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 집에서 아기를 순산한 순간부터 다시는 북한의 식구들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탈출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내 생각처럼 무사하지 못했다. 택시 기사는 남편의 돈에 친해진 인물이었다. 다시 집에 돌아온 그 날 남편이란 사람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사람이 아닌 개처럼 사정없는 폭행에 뜻밖에도 내 몸에서 낙태가 이루어졌다. 벌건 핏덩이가 하신에서 흘러내림과 함께 그 남자의 얼굴이 야수처럼 일그러졌다. 분노와 절망감, 실망에 따른 포기와 함께 남자는 그때까지 바라던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독한 베쵸센 여자를 죽어라 하고 내려쳤다. 온통 핏 칠갑이 된 몸이 되어서도 나는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흘리지 않았다. 이제는 이 집에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편하게 매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얼마 후 더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연 사흘 동안 악몽 속을 헤매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마을 병원 침대위에서다. 여명이 어둠을 밀 듯 맑은 정신이 찾아옴과 함께 무언가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늘게 눈을 뜨고 말소리 임자들을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은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방 사람인지 내가 가려들을 수 있는 말은 몇 마디 안됐지만 분명한 것은 남편이란 작자가 그 사람에게 나를 팔아넘기기 위한 대화임을 알아들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나는 어둠을 타고 그 마을을 벗어났다.

정신을 잃은 환자여서 감시가 없었기에 그 밤으로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다음 날 열차를 이용해 연선까지 나올 수 있었다. 속옷 깊숙한 곳에 감춰 둔 돈 700원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나는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해를 넘긴 오랜 기간 식구들이 다 굶어 죽지 않았나, 하는 위구심 때문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줄을 밟아 국경 경비 대원에게 100원을 주고 강을 건너 온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 왔다. 다행으로 집 식구들은 그런대로 그때까지 목숨은 부지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만은 벌써 1년 전에 돌아가시고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허름한 무덤 앞에 엎드려 슬피 울었다. 팔려만 가지 않았어도 좀 더 일찍 돌아왔더라면 아버지를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후회의 슬픔은 가슴을 찢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내가 가지고 온 600원의 중국 돈이 북한 돈으로는 당시 만 오천원이 되었다. 시장 가격으로 쌀 1키로 그램에 60-70원을 하던 때라 우리 식구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나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렇지만 나는 무단으로 강을 건너 갔다왔다는 죄명으로 법적 제재를 받아야 했다.

나서 자란 조국이었지만 북한 사회는 근 2년간 배신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 보위부 조사를 받고 보안 서에 넘겨져 군 노동단련 대에 끌려갔다. 끌려간 그 순간부터 도강자라는 죄명아래 맞고 굶고 여자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교화생활 6개월을 보냈다. 뼈 밖에 안남은 앙상한 몸으로 단련대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지만 맘 편히 몸을 회복할 형편이 안 되었다.

역적감투까지 쓰며 간난신고 끝에 중국에서 가지고 왔던 돈은 이미 다 써버린 뒤였기에 죽음이 드리운 가난은 다시 식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법적 제재는 끝났지만 다시 굶주림이란 무서운 마귀와 싸워야 했다. 모든 걸 잊고 그냥 콱 죽어버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한 번 내짚은 길에서 당한 갖가지 일들이 억울함으로 다가와 그대로는 물러앉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죽음을 각오하고 앞길을 개척하면 반드시 헤쳐 나갈 길이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된 나였기에 그렇게 패배자로 물러앉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죽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 안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밤을 도와 강을 건넜다. 그리고 다시 잡혀오고, 다섯 번에 걸친 도강과 북송, 그 과정에 얻은 상처로 젊은 내 몸은 성한데 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 같은 집착, 어쩌면 악착하리만큼 짓궂게 강을 넘었기에 아버지 없는 우리식구 아홉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이후의 고초에 대해 더 이상 이 글에 옮기지는 않으련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 갈 수 있게 선을 놓아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한 조선족 언니에 대해서만은 절대 잊지 않고 있다. 다섯 번째로 강을 건너 내가 만난 언니는 공안기관에 근무하는 경찰가족이었다. 쇠진할 대로 쇠진해 더 이상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된 내 육체를 한 떨기 백합처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분도 바로 그 언니였다.

혈육의 정으로 나를 살펴 준 그 언니가 있었기에 나는 건강한 몸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있었고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본다.

 

나는 지금 정부의 지극한 보조로 대학에서 공부하며 틈이 있으면 일을 해 북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게 가장 기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에게 송금할 때이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것은 돈 뿐이 아닌 내 가족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처음 팔려 갔을 때의 일이 이따금 떠오른다. 그때 내가 현실에 순응하고 마음에도 없는 그 중국집에서 아이나 낳고 살았다면 내조국의 품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미래를 꿈꾸는 내 모습을 상상치도 못했을 것이다. 늘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남의 눈치나 보며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을 삶, 그런 삶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죽음이었다.

 

사람을 돈으로 흥정하는 자들, 그런 자들의 손아귀에서 고귀한 인간 존엄을 묻고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소중한 국민 존엄을 초개처럼 짓밟는 북한 위정자들에 대한 분격도 금할 수 없다. 너무도 살기 힘든 오늘의 북한실상, 사람 사는 마을이 아닌 폭정의 희생물로 소중한 인권을 무참히 짓밟히는 노예의 현장을 과연 누가 만들고 누가 주인 노릇 하고 있는가? 운명에 도전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 실행할 줄 아는 인민이 있는 한 권력 중심의 북한 사회도 어느 날엔가는 꼭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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