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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31 18:00
하늘땅에 사무친 사랑이야기(펜문학제4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1,723  

일본도야마대학에서 만난 K교수

 

하늘땅에 사무친 사랑이야기

                                                          이지명

2016930일 오전 열 두 시 나는 난생처음으로 일본도야마 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5년 서울대학교통일평화연구소에 의해 발간된 남북공동소설집국경을 넘는 그림자를 번역 출간하려 애쓰는 도야마대학 와다교수의 초청에 의한 출국이었다. 서울대국문과 방민호교수님과 탈북 작가 2명과 함께 동행 했다.

솔직한 심정이지만 나는 그때까지 일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36년간의 일제강점하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러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본다. 물론 지나간 역사에 연연해 어떤 대상에 대한 증오가 현시대의 쟁점으로 발화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30일 당일로 도착한 도야마대학구내는 마치 서울의 한 지점에 온 것처럼 온화했고 평화로워 내가 품은 감정을 드러낼 어떠한 계기도 없었다. 도야마대학 한국어 와다교수의 친절한 안내와 혈육 같은 보살핌에 솔직히 눈시울을 적실만큼 감동까지 받았다. 물론 이 글에서 그런 감정적인 사연이나 도야마방문소감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어떤 감정이든 또 어떤 일상에서든지 뜻하지 않게 깊은 감동을 받으면 그걸 쉽게 잊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도야마도착 이틀 후에 느꼈다.

 

102일 오후 한 시, 목적한 세미나가 열렸다. 북한현실에 관해 창작된 소설내용을 개관하기 위한 세미나였다. 나를 포함해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소설을 실은 탈북 작가 삼명은 차례로 직접 창작한 작품에 대한해설과 그 속에 담긴 북한주민 삶에 대해 진지한 발표를 했다.

당시 세미나장에는 10여명의 저명한 일본학계의 교수들과 유명작가 분들이 참석했는데 처음으로 발표를 하게 된 나는 은근한 불편을 느꼈다. 바로 눈 앞, 내가 앉은 책상에 함께 마주 앉은 한 여교수 때문이었다. 여기서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냥 K교수라고 부르겠다. 그 여교수는 백발의 머리칼을 가졌고 쉽게 넘기지 못한 세월의 흔적이 스민 잔주름과 한 번 보면 잊혀 지지 않을 깊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하 많은 사연을 담은 호수 같은 눈빛이 말을 하는 나를 세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발표를 하면서 차마 마주 볼 용기는 내지 못했다. 처음엔 왜 이렇게 사람을 불편하게 할까 하는 고까운 생각도 했다.

 

세 명의 발표가 끝나고 질문이 이어졌다. 대체로 공동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 기준한 질문들이었다. 나와 두 분의 탈북 작가들은 일본학계에서 그렇듯 북한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80세정도의 연세가 높아 뵈는 한 작가 분은 일어로 번역된 소설책을 직접 들고 오셨다. 그 책은 2년 전 조갑제닷컴에서 출간된 반디라는 익명의 북한내부현역작가작품집이었다. 일어로 번역된 새 책을 나누어 주며 북한인권상황에 대해 묻는 작가와 듣는 사람들의 안색은 굳어졌다.

 

남북공동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발표된 탈북 작가 여섯 작품 역시 질문의 주요 화제였다. 그만큼 어두운 북한실정에 대한 관심 깊은 논의였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 대해 지금도 나는 당시 그곳이 일본이 아닌 북한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물릴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애초 한국을 출국하며 가졌던 일본에 대한 부정의 감정이 서서히 가셔짐을 느꼈다. 그 느낌은 그날 저녁 만찬자리에서 더 강해졌다.

동경대학과 오사카, 혹가이도 등 여러 곳에서 온 학자들과 교수들은 우리 탈북 작가들과 만찬을 즐기면서 북한현실과 각자의 견해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와 마주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세미나의 두 시간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머리 흰 여교수였다. 명함장을 교환하며 나와 대화를 시작한 K교수는 내가 세미나장에서 불편했던 심정을 단번에 날려주었다. K교수가 담담한 어조로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나를 뭐라 답할 수 없는 감동에로 몰아넣었다. K교수는 한국어에도 능수였다. 그 여교수의 말을 요약해 아래에 적는다.

 

젊은 시절 K교수는 한국서울대학교에서 공부했다한다. 어느 날 독일에서 유학 온 한 남학생과 K는 그만 사랑에 빠졌다. 피부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서양남학생과의 만남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각자 모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무렵 헤어져야 했던 두 사람의 마음은 아팠다.

모국에 돌아왔어도 K의 마음은 그냥 독일로만 달렸다. 이후 결혼해서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해 결국 이혼할 수밖에 없었고 머리가 흰 지금까지도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어 이따금 바다로 나와 먼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애달픈 마음을 달랜다는 얘기였다. 나는 K교수의 진지한 얘기를 들으며 처음엔 그냥 추억에 잠긴 한편의 로맨스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시지 못한 K교수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일순 당황하기까지 했다.

 

그 긴 세월 단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느냐는 내 질문에 K교수는 웃으며 가끔 만나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마음만 아팠다며 이런 말을 했다.

왜 한 때의 사랑이 그처럼 평생을 그리움에 함몰돼 헤어 나올 수 없게 하는지 나도 몰랐어요. 하늘에 사무친 그 그리움의 깊이에 대해 누가 물어도 시원한 대답을 할 수도 없었고요. 내가 왜 이러는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매달리게 되는 내 마음의 답이 대체 뭔지 지금까지 몰랐어요. 한데 오늘 선생님의 소설과 말씀을 듣고서야 아, 그거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 그게 무슨? 제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내 눈이 커졌다.

남북공동소설집에 실린 선생님의 소설 불륜의 향기를 읽으며 나는 막연하게나마 평생을 괴로워하면서도 몰랐던 내 사랑의 답을 찾게 됐거든요.”

 

...그러셨습니까? 그렇게 봐 주셨다니 참 너무 고맙군요. 한데 대체 무엇이......”

사랑이란 역시 조건이 없고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그 사람의 순정......이 나이에 순정을 논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날의 순정처럼 가슴에 새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셔낼 수가 없더군요. 오늘 선생님의 발표 때 하신 말씀이 나를 공감시켰어요.”

나는 K교수가 왜 이런 말씀을 하는지 그제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 소설을 쓰게 된 근원에 대해 사랑에는 이론도 없고 체계도 질서의 구애도 방식도 없다. 왜 그러냐에 대해 부디 찍을 필요도 없다. 사랑은 상식과 의식으로 좌우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며 영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지요. 영적인 행위, 공감합니다. 그게 내가 지금껏 그 독일 사람에 대해 잊지 못했던 것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영적인 어떤 계시가 없다면 어찌 수십 년 세월 이미 떠나간 한 남자에 대해 평생을 그리워할 수 있겠어요.”

 

펜 문학3호에 실린 소설 인간향기’(국경을 넘는 그림자엔 불륜의 향기로 실림)의 주인공의 삶이 내 눈 앞에 다시 떠올랐다.

장애인인 한 여자를 사랑했던 북한의 보안원, 그 사람은 유부남이었다. 여자는 범죄자로 중형을 면치 못할 처지에 있었지만 남자의 결심에 의해 위기를 면한다. 결국 그 여자는 그때까지 모아놓았던 전 재산을 바쳐 법망에서 남자를 빼돌려 남쪽나라로 가게 했고 나중에 남자의 가족까지 모두 탈북 시켜 한국으로 보낸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있을 법한 일도 아니었다.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평생을 다시 볼 수 없는 남쪽나라에 보내고 이미 이혼했던 사랑하는 남자의 전처와 아이들까지 가진 재산을 통틀어 보내는 그 장애인 여자의 헌신은 대체 무엇에 어디에 바탕을 둔 것이었을까?

 

 그건 작품을 쓴 작가도 모른다. 몰랐기에 답을 낼 수 없었다. 다만 그러한 사랑과 헌신이 다름 아닌 어떤 영적계시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발표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함에도 K교수는 바로 이 점에 무척 공감한다며 기뻐한다. 아마도 그건 그 역시 감당할 수 없었던, 그러나 더없이 소중했던 사랑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기나긴 수십 년 세월 혼신까지 다 빼앗기고 살았음에야......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매우 허전했다. 허탈하기도 했다. 이번 도야마에서의 작품세미나가 한 일본여교수의 지나온 시절의 잊지 못할 사랑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악한 북한독재정권하에서 가진 권리를 박탈당하고 죽지 못해 신음하는 전 북한주민침해에 관한 세미나였기에 내 허전함은 더 짙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K교수가 하는 말에 난 그만 충격에 빠졌다.

 

사랑과 이별로 인한 한 개인이 당하는 고통이 이러할진대 분단으로 인해 수십만 이산가족이 당하는 그 슬픔의 깊이를 대체 누가 어떻게 대답해 줄까요. 긴 세월이긴 하지만 난 가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을 만나보기도 했답니다. 만나는 데도 떨어지면 가슴이 무너지는데 수십 년 세월 만날 수 없고 생사조차 모르는 한민족의 아픔이야 무슨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난 선생님의 소설과 발표를 들으며 한반도분단의 아픔을 절감했어요. 지적된 영적세계, 실지로 그런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꿈속에라도 서로 만나 회포라도 풀 수 있다면 한은 맺히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K교수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와락 일어나 그녀를 꽉 안아주고도 싶었다. 어떻게 갈라진 한민족의 아픈 심정을 일본인인 여교수가 이렇듯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을까, K교수가 우러러보였다. 그 순간만은 그가 일본인이 아닌 같은 동포로 생각되었다. 물론 나 역시 소설을 쓰면서 갈라진 민족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실체가 없었을 뿐이었다. 실체를 느끼지 못하는 이해란 결코 이해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K교수를 보며 자책했다.

 

실체란 바로 한이다. 이따금 만나는 이별엔 슬픔은 있어도 한은 없다. 그러나 한 번 헤어져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만나기는커녕 안부조차 모른다면 그것으로 인해 쌓이고 쌓이는 한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해소한단 말인가?! 한은 무한대한 하늘에 사무칠 것이었다.

만찬이 끝나고 호텔에 돌아왔어도 나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홀로 오래도록 불빛 밝은 도야마거리를 걸었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속에서도 웃고 웃으며 서로 부비며 거리를 걷는 그곳 사람들을 나는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한 일본여교수가 들려준 헤어짐에 관한 가슴 뜨거운 이야기는 결국 분단조국의 풀 수 없는 아픔으로 이어졌다. 서울에서 같은 일상의 사람과의 이야기였다면 그렇게 생각 깊게 장시간 걷지 못했을 것이었다.

돌아올 때의 나는 이미 갈 때 가졌던 부정의 감정을 말끔히 지운 상태였다. 이륙했어도 기의 작은 창으로 오래오래 도야마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낯설었던 무원한 도시가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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