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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31 18:06
실화: 용수야 생각나니?(1) 정우남 작<펜문학4호>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487  

실화

용수야, 생각나니?

정우남

 

우리 직장 막내인 성국이가 비닐봉지에 삶은 옥수수를 가득히 넣어가지고 나타났다. 짜식! 출출했던 모양이지? N책상마다 돌며 한 송치씩 나눠주는 옥수수에 고요한 긴장은 깨어지고 시원한 웃음소리들이 피어난다.

 

옥수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지겹도록 먹어야 했던, 그나마 옥수수라도 있으면 죽음을 면했던그래서 북한을 떠나 올 때 다시는 이 옥수수만은 먹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대한민국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옥수수와 영원히 이별했다 생각했다. 근데 너무도 오랜만에 따뜻한 옥수수 이삭을 받았다. 손바닥 안에서 퍼지는 구수한 냄새, 내 고향 푸른 들의 향기

 

× × ×

 

용수야, 생각나니?

그게 아마 7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늦장마로 무너져 내린 도로보수공사에 온 공장이 내몰렸던 날, 너는 도시락도 없이 일하려 나왔었어. 비지땀을 흘리며 등짐으로 돌을 나르는 네 모습이 지금 갑자기 생생하게 떠오른다. 작업반장 형님이 아침은 먹었냐?’고 조용히 물을 때 맥없이 머리를 끄덕이던 네 모습이 어찌도 측은하던지, 그래, 아침이야 먹었겠지. 어제 저녁 네 여동생이 광주리에 한가득 호박순을 따서 다듬더구나. 풀죽이라도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불리 먹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는데

 

온 강산이 죽음의 지옥으로 변했던 고난의 행군도 다 지나고 1999년이었지. 장마당에 놓을 물건을 사려 도회지에 갔던 너의 어머니가 뜻밖의 자동차 사고로 다치면서 너의 집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척추에 심한 손상을 입은 어머니가 제대로 운신조차 못하면서 너는 겨울이면 나무를 해다 팔고 네 동생은 술장사를 하며 정말 이악스럽게 버텼어.

 

 ‘군 인민병원부업 밭에서 소관리공으로 일하시는 너의 아버지는 가끔씩 달구지에 나무도 실어오고 돈을 벌기 위해 짬짬이 집에서 목수일도 하며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해 왔지그날 점심시간에 모두가 도시락을 펼칠 때 슬그머니 없어진 너를 찾아 나와 반장형님이 한참이나 헤맸다. 어데 가서 숨었는지, 찾을 재간이 있어야지?

 

점심시간도 한참 지나고 모두가 휴식을 취할 때 슬그머니 네가 나타났었다. 반장형님이 가방에서 비닐봉지에 든 삶은 옥수수 두 이삭을 건네자 너는 얼굴을 붉히며 받아들고 숲속으로 들어갔었지. 뒤따라 온 내 앞에서 그 옥수수를 어찌도 맛있게 먹던지

알아? 넌 그때 어린 아이처럼 옥수수 속괭이까지 쪽쪽 빨면서 버리기 아쉬운 듯 한참이나 쥐고 있었어. 내 손에서 담배쌈지를 받아들고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우리는 함께 풀판에 누웠다. 솜 같은 하얀 뭉게구름이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 저 구름을 타고 나 혼자 시름없는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다하고 중얼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애잔하게 안겨온다.

 

20013, 그렇게 너희와 몇 년을 함께하며 벽돌을 만들던 건재공장에서 나와 나는 혜산사범대학에 가게 되었다.

그때 너는 제일처럼 기뻐하며 외상 술 한 병 들고 내 앞에 나타났었지?

 

그날 밤 우리 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중학교 동창생들끼리 모여 밤새 술도 마시고 가슴 아팠던 지난 이야기들도 더듬었었지. 군대에 나가서 영양실조로 죽은 영학이, 훈련도중 열차 지붕위에 올랐다 전기 감전 사고로 떠나간 승룡이, 백혈병 진단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죽기 싫다고 우리 손을 꼭 잡고 외치던 금철이중학교를 졸업한지 4년인데 벌써 몇 명은 우리 곁에 없었다.

나는 군에서 60리 떨어진 도회지로 떠나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 토요일 저녁이면 대학생활을 하는 고향친구들이 모두 모여 함께 걸어서 집에 오곤 하였다. 그나마 집에 와서 주린 창자를 달래고 월요일 새벽 5시면 또 모두 모여 대학까지 걸어갔었다. 그래서 월요일엔 항상 11시부터 시작되는 세 번째 강의부터 참가했지. 그렇게 일요일에 집에 오면 친구들이 모여들고 뽀얀 담배연기 속에 흥수(포커놀이의 일종)를 노느라 정신들이 없었어.

 

용수야, 너도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일요일에 집에 올 땐 자주 놀려 왔었지. 그런데 얼마 지나고 나서부터 네 얼굴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흥수놀이에서 지는 사람들이 돈을 내 술을 사야 했는데 포커 실력이 시원치 못한 너는 자주 돈을 내야 했어. 그런데 너는 늘 지고나면 망연자실했지. 그리고 돈이 없어 점차 동무들 축에서 멀어지고 말았어.

 

한동안 나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학 2학년 시절, 그러니깐 그때가 200210월이었다. 6개월간의 교도’(예비역 군인훈련)’생활을 마치고 집에 오니 너의 집 막내 동생 경수가 결핵으로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가 앓아누운 집안에서 동생마저 몹쓸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도 기가 막혔다. 솔직히 결핵환자가 있는 집이라 좀 께름하기는 했지만 나는 기철이랑 하금이랑 함께 너의 집을 찾았었다.

 

그 사이 너의 집은 눈에 띄게 변했었어. 빗물이 흘러내린 천정은 여기 저기 구멍이 뚫리고 대낮에도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썩거렸다. 아랫방 따뜻한 온돌위에 핏기 없이 해쓱한 동생 경수를 품에 꼭 껴안은 너의 어머니가 누워 있었어. 방안 한 구석엔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틈틈이 만들어 놓은 책장과 경대 틀도 보였다. 집에서 술도 하고 아버지가 목수 일을 해서 그런지 집안은 그리 춥지 않았다. 경수가 결핵이라는 소문에 동네에서 술이 팔리지 않아 동생 영숙이는 술을 팔려 농촌을 다닌다고 했다.

 

우리가 너의 집을 찾았을 때 너는 돈을 벌려고 근일이와 함께 (양강도) 백암군에 가고 없었어. 벌써 두 달째 백암에 가서 잣도 따고 개구리도 잡아 돈벌이를 한다고 들었다. 너의 어머니 말씀이 유엔( UN)에서 지원한 결핵약을 장마당에서 팔고 있는데 한 달 분을 사려면 천원을 주어야 한다고, 그 약을 사서 동생을 살리겠다고 네가 백암으로 떠났다고 하더구나.

그런대로 아버지가 병원 노동자로 일하시니깐 조금씩 약을 얻어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했다.

 

너무도 가슴이 아픈데 해줄 것은 아무도 없고그때의 답답하던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그러던 2003년 봄, 나는 대학에서 고향친구로부터 불행한 너의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기르던 병원 소를 훔쳐서 밀수꾼들에게 팔아먹은 죄로 감옥에 갇혔고 이제 곧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그 을씨년스럽던 2003년의 봄, 내가 대학생활을 하던 혜산시에서는 억만장자로 소문난 주길녀와 차태화가 인민군대에 염소 60마리를 지원했다고 떠들썩했지.

 

그런데 그 녀들이 중국에서 물까지 사서 마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오히려 민심은 더 흉흉해 졌다. 그런 가운데 혜산백화점에서 천 장사를 하던 매장 주인의 집에서 2억 원의 돈이 나와 온 시내가 발칵 뒤집혔고 위연동에 있는 철도병원 원장은 집에 감춰두었던 4억 원의 돈이 보위부에 발각되자 목을 매 자살했었다.

 

한쪽에서는 감춰둔 돈에 곰팡이가 슬어 난리이고 또 한쪽에서는 몇 푼의 돈도 없어 스스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비극의 악순환이 끊이질 않던 그 시절, 어쩌면 그렇게 마음씨 곱던 너마저도 범죄의 구렁텅이에 던져져야 했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 해 328, 봄기운을 안고 시커먼 눈석임물이 질적 거리는 길을 걸어 나는 집으로 왔다. 29일에 있을 너의 재판을 보기 위해서였어.

 

 그날 오후 2, 군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재판에 참석하니 머리를 박박 깍은 네가 다른 밀수범들 속에 끼여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그때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네가 훔친 소를 백영란에게 팔아넘겼고 영란이가 그 소를 끌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팔아먹었다는 사실이었다.

 

중학교 동창인 영란이는 졸업 후 가난한 집안 살림을 참을 수 없어 방랑의 길에 나섰고 혜산시에서 몸을 팔며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애였지.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예쁘고 활달해 중학교시절 수많은 남학생들을 시선을 끌었던 영란이가 그런 길을 걷게 된 것도 꿈같고 또 네가 어떻게 그런 애를 만나 죄를 짓게 됐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재판 결과 영란에게는 8년 노동교화형(교도소)이 구형되었고 너는 3년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지. 바짝 마른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고 안전원(경찰)들이 등을 떠밀며 너를 재판장에서 끌고 나갔다.

 

그날 저녁 우리는 안전부 감찰과에 있는 광호 형님을 통해 감옥에서 너를 면회할 수 있었다. 움푹 팬 두 눈, 툭 삐어져 나온 광대뼈, 그리고 시퍼렇게 번들거리는 머리너는 그때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져간 밥과 두부를 굶주린 짐승마냥 마구 먹어댔고 오래도록 말없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옆에서 흐느끼는 여동생의 울음소리도 들었는지 말았는지그때 네 모습이 갑자기 뛰어 일어나 모든 것을 물어뜯을 맹수같이 보여 나는 공포감에 전율했었다.

 

그런데그게 너를 보는 마지막 모습이었을 줄이야

415일이 지나 5월 초까지 나는 대학에서 실시하는 혁명전적지 답사일정에 따라 보름동안 고달픈 여행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답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가 조심히 내 눈치를 보며 너의 죽음을 알려 주었다. 그 사이 너에게 있었던 기막힌 사연들도 들려주었다415일을 앞두고 너는 병보석으로 감옥에서 나왔다.

 

사실은 병보석이 아니라 감옥에서 죽는 것이 불편해 안전부에서 너를 내보낸 것이라고 했다. 너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옮겨졌고 집에서도 계속 고열과 헛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했었다고그러던 425일쯤, 네가 갑자기 우리 집에 나타났었다 한다. 그때 나의 어머니는 갑자기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가 너무 놀라 기절초풍했다지?

 

밖에는 네가 서있었는데 앓던 사람 같지 않게 우뚝 서서 날카로운 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어떻게 왔냐?’고 물었지만 너는 아무 말도 없이 집안만을 들여다보며 여기저기를 살폈다는구나. 어머니가 얼른 밥을 내놓자 너는 시커먼 두 손으로 밥덩이를 움켜쥐고 마구 입에 쑤셔 넣었다고집에 있는 밥을 모두 비닐봉지에 싸서 주었는데 너는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대로 나가버렸다지?

 

그리고 며칠 후, 아낙네들이 빨래를 자주 하는 운총강 기슭에서 네가 잠자듯 반듯이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숨져 있었다고 하더라.

 

미안하다, 용수야!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너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해서뒤늦게 술 한 병 들고 너의 집을 찾았는데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문을 열자 역한 냄새가 확 풍겨 나오고 집안에 들어서니 너의 어머니 옆에 꼭 붙어 누운 경수가 피골이 상접한 눈가에 맥없는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와 함께 덮고 있는 이불 위엔 시커먼 핏자국들이 물들어 있어 이제 경수의 운명도 며칠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옆에도 이불이 펴져 있었고 거기엔 너의 아버지가 누워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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