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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31 18:13
실화: 용수야 생각나니?(2) 정우남 作
 글쓴이 : 이지명
조회 : 2,408  

네가 소를 훔친 사건이 있은 후 아버지는 병원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제때에 씻지 못한 이불에선 이상한 냄새가 진동했고 술장사마저 그만 둔 동생 영숙이가 부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토록 처참한 집안 모습을 보면서도 내가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옥수수 5kg,

 

그때 벌써 너의 집안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 내가 다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일요일에 너의 집에 찾아오니 이미 너의 동생과 어머니는 저세상을 떠나갔어.

 

미안하다, 용수야!

너의 어머님과 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너무도 미안하고, 또 무엇이라 위로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너의 집 주변을 맴돌면서도 차마 들르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음 주 집에 왔을 때 너의 아버지마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밖에 모르던 과묵하신 너의 아버지마저도

 

 그렇게 한 달 새에 너의 집 식구들은 모두 떠나고 여동생 영숙이만 세상에 남았다. 영숙이만은 살려야겠기에 우리 중학교 동창들, 그리고 옛 건재공장의 친구들과 군병원 간부들이 나서 네 동생을 일건제련소 상설고사기관총 중대에 넣어주었다. 그나마 그런 곳에 가면 매 끼 밥이라도 먹을 수 있어 목숨은 건질 수 있었으니깐

 

이따금은 주말에 집에 오면 근일이랑 철복이랑 친구들이 모두 모여 영숙이를 보러 갔다.

예전엔 어려운 가정사를 도맡아 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미소가 떠날 줄 몰랐던 영숙이는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다. 늘 말이 없었고 헤어질 땐 글썽이는 눈물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해 가을, 19살밖에 안된 영숙이는 대홍단군 농사동 분장에 있는 이모의 손에 끌려 고향인 운흥군을 영원히 떠났다. 들리는 말에는 그곳에서 농장원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집에 와 보니 떠나기에 앞서 영숙이가 나에게 남긴 쪽지 한 장이 있었다.

 

오빠! 그동안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저의 오빠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을 대신해서 제가 진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만나지도 못하고 떠나게 되어 너무 죄송합니다.

오빠, 이제 기차도 없는 대홍단군으로 가면 언제 한 집안 식구 같은 오빠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도 자주 못 올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못 오더라도 오빠와 오빠 친구들이 저의 부모님들의 산소를 꼭 좀 돌봐주세요.

그 동안 신세만 지면서 살았는데 이렇게 떠나면서까지 폐를 끼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나도 잘 사는 날이 오면 그동안 신세를 졌던 오빠와 친구 분들께 꼭 갚음을 하고 싶습니다.

오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20031018일 영숙 올림

 

이듬해인 2004년 봄, 나는 친구들과 함께 너와 너의 부모님들 묘를 찾았다. 그곳에서 너무도 끔찍하고 야속한 한 가정의 운명을 친구들과 함께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그해 여름, 나는 평양 철도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승일이로부터 몰래 받은 소련정탐역사카네기 인간관계론’, 기무라 히즈가즈의 조기교육과 천재라는 책을 학급친구들과 돌려보았다는 죄로 도보위부에 구금되었다. 불법출판물을 돌려 본 죄였다.

 

난생 처음, 그것도 보위부 감옥에 갇혔는지라 나는 간이 콩알만 해졌고, 보위부 반탐과 지도원은 조사를 받을 때마다 너는 정치범 수용소감이다고 위협했다. 이대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나는 탈출구를 찾았고 드디어 823, 도 보위부 외사과 건물공사에 동원되어 감시가 조흘한 틈을 타서 도망을 쳤다. 혈혈단신 중국으로 탈북했고 공안에 쫓겨 여기저기 숨어살았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댈 가나 먹을 것 하나만은 흔했고 배를 곯지 않아다. 조금만 일하면 이것, 저것 마음에 드는 것을 얻을 수도 있었다.

 

홀로 중국에서 먹을 것을 앞에 놓고 친구들 생각을 많이 했다. 일찍이 너와 함께 중국으로 왔다면 너의 집안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지금은 대한민국에 도착하여 컴퓨터도 배우고 마음에 드는 일터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고향에 대한 생각은 자주 하면서도 어느덧 친구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가물거리는 추억 속에 푸르른 이깔나무 숲들만 보인다. 나에게서 멀어지고 사라지던 고향! 고향의 향기를 다시 새겨주는 옥수수 한 이삭

 

용수야, 생각나니?

솜 같은 하얀 뭉게구름이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 저 구름을 타고 나 혼자 시름없는 세상으로 휠 휠 날아가고 싶다하고 중얼거리던 그 때를이제 돌아가고 싶다.

 

내 모든 마음의 짐 훌훌 털어버리고 운총강 맑은 물에 뛰어들고 싶다. 그러면 정다운 친구들이 한꺼번에 달려와 철없이 물보라를 날리며, 우리는 어린 시절에 다시 살게 되겠지?하지만 그토록 소원이던 자유의 땅에서, 하나로 합쳐진 통일의 강토에서 너의 삶이 아닌 초라한 무덤을 볼 때 우리 가슴에 흐르는 눈물은 누가 닦아 줄까? 세월도 봉합하지 못한 내 찢겨진 가슴은 누가 치유해 줄까?

 

용수야, 생각나니?

우리 함께 바라보던 그 푸르른 자유의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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