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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8-05 14:30
삶은 어디에(17)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293  
NK-PEN | 2014-06-29 17: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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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극장

삶은 어디에 (17)


라디오 극장

삶은 어디에 (19)

 

해설

한태규

강기수

김행우

최문기

송영숙

 

마윤 (잠수부)

길재 (잠수부)

여1 (승객 악착)

여2 (승객 악착)

여3 (승객 악착)

남1 (승객 악착)

남2 (승객..

남3 (승객..

남4 (역무원 방송; 2009. 1. 19 (월)

녹음; 2009. 1. 14 (수)

원작; 리 지 명

극본; 박 길 숙

연출; 임 종 성

 

라디오 극장

삶은 어디에 (19회)

 

M 시그널

타이틀 라디오 극장 <삶은 어디에>

원작 리지명/ 극본 박길숙/ 연출 임종성/열아홉 번 째

M up & down

 

 

E (해변..파도 소리)

 

기수 이제 한소장 마음대로 하시오..

 

태규 좋아. 그렇다면 그 말을 내가 참작하지. 그래 얼마면 되겠나?

 

기수 정말..날 용서하고 돈을 줄 생각이요?

 

태규 응..

 

기수 못해도 50장은 받아야겠소. 딸라로..

 

태규 그렇게 많이?

 

기수 나도 살아야잖소. 이 일이 끝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오. 그러니 한 사람 구제하는 셈치고 형님이 좀 크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소.

 

 

 

해설 한태규는 아무 말 없이 강기수처럼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

 

했다.

 

 

 

태규 (에코) 어리석은 놈...이 세계의 규율을 모두 무시해버린 한심한

 

놈...지금껏 아편 거래에서 긁어모은 돈만 해도 그 만큼은 족히

 

될텐데.. 돈에 대한 그 욕심에는 끝이 없군..더러운 자식...

 

 

 

해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 요절내고 싶었지만 한태규는 한

 

눈 지그시 감고 자기를 억제했다.

 

M 브릿지

 

 

 

E (방안..해변 골목의 소음..오프에서)

 

행우 (가쁜 숨을 쉬면서 행우는 팔을 휘적거리는)

 

영숙 왜 이래요... 여보.

 

문기 (부축) 정아 아버지

 

행우 비켜.. (손 뿌리치며 기는 호흡)

 

 

 

해설 문기는 급히 그를 부축하려 들었지만 행우는 기를 쓰고 뿌리치

 

며 곧추 누워지는 애들에게로 기어갔다. 가지런히 누운 애들에게

 

이르자 행우는 잠시 두 팔로 방바닥을 버티고 앉아 하염없이 그 애들이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온 몸의 수분이 다 모여 흐르는 듯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행우 으흐흑, 난 정말 죄가 많은 놈이지. 문기. 자넨 날 용서했지만

 

정아를 보는 내 눈엔 왜 눈물만 흐르는가. 응? 가슴은 왜 이리

 

답답하고. 어이 태어났던고... 살아온 생을 저주하며 떠나갈 운명

 

이라면 이 세상에 태어나긴 왜....(숨 훅 들이키는)

 

 

 

해설 행우는 말을 채 맺지 못하고 흑- 숨을 들이킨다. 허공을 향한

 

그의 두 눈이 뒤집혀지고 잇달아 정아 얼굴을 감싸 쥐었던 두

 

손을 맥없이 늘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무너지듯 옆으

 

로 쓰러졌다.

 

문기 (행우 안으며) 정아 아버지..

 

해설 문기는 급히 그를 안아 자기 무릎에 반드시 눕혀 놓았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이다.

 

M 브릿지

 

 

 

E (해변..파도소리)

 

태규 좋아. 자네 요구대로 하지. 내일 밤 거사하게.

 

기수 내일 밤이요?

 

태규 그래! 나도 준비해 가지고 들어가겠어! 일이 끝나는 즉시 주겠

 

네. 그러나 이번에도 딴맘 먹었다간 그땐 정말 용서하지 않겠어.

 

알겠나?

 

기수 고맙습니다. 그리해 주신다면 못할 이유가 없지요. 걱정 마십시오.

 

태규 명심하라구. 춘희의 존재는 나뿐이 아닌 자네에게도 위험한 것이

 

라는 걸. 그녀가 없어야만 이번 일은 우리 계획대로 마무리 짓는

 

거야.

 

기수 알고 있소. 정말 이번만큼은 믿어 주시오

 

태규 그럼 가봐! 내일 열차에서 보자구!

 

기수 네..(걸어가면)

 

태규 (발로차면서) 빨리 사라?!

 

기수 네..(OL/뛰는)

 

태규 개 자식! 내일..널 죽여주리라!

 

 

 

해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강기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태규는

 

으드득 이를 갈았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강기수를 두고 한

 

태규는 내일 열차에서 깨끗이 죽여주리라고 결심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의 손으로 김춘희를 제거하면 곧장 그도 없앨 계획이

 

었다.

 

 

 

태규 최문기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강기수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춘희를 없애든 안 없애든 이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시간을 끌면 지금껏 공들여 준비했던 일들이 모

 

두 수포로 돌아갈 수 있어..목숨을 내건 도박판에서 실패는 무자비한 죽음으로 연결되지..

 

E (파도 소리 up & down)

 

 

 

해설 한태규는 밀려드는 밤 파도를 직시하며 다시 한 번 어금니를

 

으드득 소리가 나게 깨물었다.

 

M 브릿지

 

 

 

E (방안..해변가 골목 소음..깊은 밤)

 

문기 (행우 안고) 정아 아버지...

 

행우 여...여..보..(숨 몰아쉬더니 절명)

 

영숙 (절규) 여보...정아 아버지..

 

문기 불쌍한 사람..

 

 

 

해설 행우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몇 번 입을 우물거리더니 그대로 절

 

명했다. 문기는 가슴이 쓰렸다. 그의 마지막 말처럼 제 가족에게

 

조차 말 못할 한을 품고 가버린 그의 생이 너무도 허무했다.

 

 

 

문기 부디..저 세상에 가서는 편안하시오...

 

 

 

해설 문기는 부디 저 세상에 가서라도 이승의 한 속에 묻혀버린 자기

 

의 영혼을 부둥켜안고 괴로워하지 말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김행우의 부릅뜬 두 눈을 내리 쓸어 감겨 주었다.

 

 

 

영숙 (절규) 정아 아버지...

 

정아.영아 (울음) 아버지...

 

영숙 여보...

 

 

 

해설 자정이 지난 깊은 밤, 그들이 터뜨린 울음소리는 깊은 의미를 가

 

지고 도시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M 브릿지

 

 

 

E (기차 역.. 플렛홈 사람들 바글바글)

 

E (기적 소리 내며 들어오는 기차..혼잡한 기차역)

 

 

 

해설 다음날, 낮 열두시 십분. 평양발 혜산 행 제9열차는 긴 기적 소

 

리를 내지르며 역 홈에 들어섰다. 맨 앞 화물칸과 침대 그 다음

 

상급 차 바곤을 제외한 나머지 열 개의 유리 한 장 제대로 없는

 

차, 바곤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E (사람들 아수라장.. 앞에 서려고 기를 쓰는)

 

여1 이거는 기차가 아니라 콩나물 시루네..

 

남1 (여1 밀어내는 호흡) 앞에서 가로막지 말고 비켜!

 

여1 (남1 악착같이 밀어내며) 당신이 비켜욧!

 

E (기차 서서히 들어오는)

 

 

 

해설 차 바곤엔 한 치의 공간도 없이 사람들로 꽈악 채워졌다. 승강대

 

계단까지. 심지어 차체 밑 바퀴 돌아가는 앞에 나무로 궤짝처럼 만들어 매달아 놓은 그 안에까지 새우등처럼 꼬부리고 들어가 처박혀 있는 사람까지 있다.

 

 

 

남2 (서성이며) 아이고..저 사람 바퀴 앞에 턱 하니 자리도 잘 잡았네

 

저렇게라도 차를 탈 수 있으면..

 

E (기차 멈춰서자..사람들 와 하니 달려 올라가는)

 

 

 

해설 열차가 멎자 와, 하고 사람 물결은 맹렬한 기세로 바곤마다 달

 

라붙었다. 그들이 목표 삼고 매달리는 것은 열차 창문이다. 승강

 

대로 오른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여2 (짐 주면서) 이 자루 좀 받아줘요

 

남3 (안에서) 뭐라도 줘야 받아주지

 

여2 (담배갑 던지며) 담배 받아욧

 

남3 에이..그것 갖고는 어림도 없지!

 

여3 (담배 던지며) 내 담배 받고 내 물건 좀 받아줘요

 

E (여기저기서 아우성..여자들 창문 안으로 들어가는 호흡들)

 

 

 

해설 창문 앞에 서서 안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물건 좀 받아 달라고

 

사정을 거듭하면서 아낙들이 던져 넣은 담배들이 우박처럼 창문

 

안으로 날아갔다. 이제는 익숙한 창문 넘기여서 안의 사람이 손

 

만 잡아 웬만한 힘만 빌려주면 아낙들은 배낭을 진 채로 휭휭

 

날아 들어간다. 들어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제 몸 세울 곳은 생긴다. 108명 정원의 열차 바곤(객차)이지만 그 10배 20배까지도 사람이 탈 수는 있는 것이다.

 

 

 

E (열차 안..사람들 와글와글)

 

남4 (역무원..사람들 막대로 치며) 거기 변소에 앉는 작자! 더 당겨서 앉아! 포개서 앉으라고!

 

남3 (당겨 앉는 호흡으로) 예..

 

 

 

해설 변소, 화구실, 세면장은 물론 의자 등받이 위에까지 사람이 걸터앉고 심지어 짐 올려놓는 선반에도 체통 작은 사람과 아이들이 두 눈을 디룩거리며 올라앉아 있다. 역에서의 열차 정차시간은 10분이었지만 오르지 못한 사람들의 성화로 보통 30분 이상 지체를 한 후에야 겨우 출발을 했다.

 

M 브릿지

 

 

 

E (기차 달리는데 기차 지붕 위에 사람들 빼곡히)

 

마윤 어제 하루 9열차 운행이 중지되더니 사람의 머리 수가 평일보

 

다 두배는 더 되는 것 같네..

 

문기 마윤은 이 열차를 자주 타나?

 

마윤 가끔씩..문기 형님은요?

 

문기 혜산 쪽에 친척이 없으니 갈 일 이 없지..9호 열차는 처음 타네(두리번) 안 탔나..

 

길재 누굴 찾으시오?

 

문기 아..아냐.. (에코/속마음) 한미숙이라는 여자가 이 차를 타기로 했는데..혜산 역에서는 만나겠지..(두리번)

 

영숙 (사람들 너머에서) 아저씨

 

마윤 아니?

 

문기 아주머니가 웬일이요?

 

해설 여인은 송영숙이다.

 

길재 행우 형님 숨 끊어졌단 소릴 들었는데 묻기나 하고 온 거요?

 

문기 어째 이 차를 탔소?

 

영숙 (자리 바꿔 앉으며..사람들 두털) 좀 비켜봐요..이걸 시에 가서

 

팔지 못하면 우리 식구 모두 굻어 죽어요

 

길재 그게 뭔데요?

 

 

 

해설 길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으나 송영숙은 곧장 대답을 못

 

하고 쭈뼛거렸다. 배가 뚱뚱해지도록 무엇인가 허리에 두르고

 

서 있는 영숙을 보고 문기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마윤과 길재는

 

벌써 알 만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비좁은 자리를 내주었다.

 

 

 

마윤 금방 남편을 묻고 기운을 차리지도 못했을텐데...

 

오죽했으면 이렇게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애들만 집에 남겨놓고

 

뛰쳐나왔을까.

 

 

 

해설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무정한 세월이다.

 

문기나 길재 마윤이 왜 여인의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빗물이 흘러내릴 수 있게 만든 둥그런 지붕 위였지만

 

그런대로 앉아 갈 만했다. 지붕 위도 빈틈없이 사람들로 빼곡이

 

들어찼다. 손에 잡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보면 안전 같은

 

것은 하늘이나 운수에 맡길 수밖에 없다.

 

 

 

문기 (걱정) 열차가 흔들리고.. 커브 길을 돌아 갈 때 미끌어 떨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까. (올려다보며) 이건 또 뭐야..? 저 시커

 

먼 것은 고압선?

 

 

 

해설 새끼손가락 굵기 비슷한 전선은 아랫부분만 누렇게 제 빛 같이

 

보일 뿐 온통 시커멓다. 지붕면과 줄 사이 거리는 사람이 앉은키와 거의 비슷하다.

 

 

 

마윤 형님 뭘 그렇게 유심히 보시오?

 

문기 으응..머리 위에

 

길재 전선이요..거기에 이만 볼트의 전류가 흐른다오.

 

문기 이만 볼트?

 

길재 일어설 때 자칫 잘못하거나 전선 존재를 잠깐이라도 잊는 경우

 

엔 ..저 선에 머리가 닿아 그 자리에서 까맣게 타버리지

 

문기 그런 일이 종종 있나?

 

마윤 부지기수요..

 

E (기차 기적 소리 내며..심하게 흔들리는 기차)

 

해설 문기는 저도 모르게 긴장되어 자리를 고쳐 앉는다.

 

그 순간 열차 견인기 쪽을 무심코 내다보던 문기의 눈이 한 곳

 

에서 멈춰섰다. 그 여자를 본 것이다.

 

문기 (자신도 모르게) 한미숙이다!

 

마윤 한미숙이 누군데요?

 

문기 저기..세번째 칸에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여자

 

길재 야..이쁜데..

 

마윤 저 칸은 상급자만 타는 칸인데..

 

 

 

해설 문기가 한미숙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 한미숙의 머

 

리 위로 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짧은 순간, 사내는 한미숙에게 뭐라고 말을 건내는듯 했다.

 

 

 

문기 깡마른 얼굴의 저 남자..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해설 문기는 세 번째 상급자가 탄 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한미숙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깡마른 얼굴의 사내가 고개를 내

 

밀었다.

 

 

 

문기 날선 매부리코.. 우묵 들어간 작은 눈, 얄팍한 입술의 사나이,

 

아, 한태규다! 분명 한태규다. 한미숙이라는 여자가 어찌하여

 

한태규와 함께 있는 것인가...

 

예상했던대로 한미숙은 좋은 여자가 아냐..

 

아내를 만나면 알 게 되겠지..

 

E (기차..기적 소리 )

 

 

 

해설 마치 그의 생각을 알아주기라도 한 듯 기차는 긴 기적 소리를

 

내며 덜커덕 거리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M 브릿지

 

 

 

E (기차 위..바람 소리..)

 

문기 이거 온갖 꽃이 피어나는 5월에.. 바람이 너무 차네.. (온몸 움츠

 

리며)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애..

 

마윤 형님, 비닐막 안 가져 왔소?

 

 

 

 

 

문기 미처 생각 못했어

 

마윤 그럼 이걸 같이 써요..

 

문기 아, 괜찮아. 바다 기슭만 지나가면 일 없겠지

 

길재 형님. 차 굴 들어갈 때 특별히 조심하우

 

문기 왜?

 

길재 그땐 이놈의 전기줄이 더 낮아진단 말이요.

 

차굴이 다가오면 무조건 엎드려요

 

문기 알았어...

 

마윤 (넘겨주며) 자..비닐막 써요..

 

문기 그럼..(받아서)

 

해설 문기는 안 받으려다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송영숙을 보고 비

 

닐막을 들고 가 그녀에게 씌여 주었다.

 

문기 이것 써요.. 바람이 장난이 아닌데..

 

영숙 고맙습니다.

 

해설 아직 슬픔이 가득 어린 여인의 파리한 얼굴엔 미안한 기색이

 

어린다.

 

문기 이렇게 다녀보긴 처음이지요?

 

영숙 네.

 

문기 그런데.. 뭘 가지구 갑니까?

 

 

 

해설 송영숙은 시무룩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문기는 어색해 하는

 

여인에게 더 묻기가 멋쩍기도 해 묻는 것을 그만두고 탄식 비슷한 소리를 뱉었다.

 

문기 모진 세월입니다. 아주머닐 보니 내가 지금껏 너무 편안히 살았

 

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른지, 한계는 모르겠지만 아주머니처럼 강한 분이라면 넘지 못할 것도 없겠죠...

 

해설 문기는 송영숙의 비닐막에 쌓인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녀의 눈가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

 

남편을 묻고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 구차한 여로에 나섰을까...

 

M 엔딩

 

등장인물

 

해설

장신미

한태규

강기수

김행우

최문기

 

신철

주모

방송; 2009. 1. 17 (토)

녹음; 2009. 1. 12 (월)

원작; 리 지 명

극본; 박 길 숙

연출; 임 종 성

 

라디오 극장

삶은 어디에 (17회)

 

M 시그널

타이틀 라디오 극장 <삶은 어디에>

원작 리지명/ 극본 박길숙/ 연출 임종성/열일곱 번 째

M up & down

 

E (산속의 저녁을 나타내는 소리들..오프에서)

신미 (상 놓으며) 신철아..우리 한잔 하자

신철 누나두 술 마시오?

신미 왜 누난 술 마시면 안 되니? 신철아. 우리 오늘 맘껏 취해 보자..

누난 내일 또 떠나야 하는데 언제 또 만나겠니? (술 따르며)

자 마시자.. 신철아..억울하지 않니?

신철 ... ... 누나..

 

해설 지금 이 시대. 군부 집권의 이 선군 시대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자기들에게 그토록 충실했던 신철이와 같은

병사들을 기억 속에서 점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은 명예나

영예보다 당장 목을 추길 것이 더 급한 세월이다. 신철이를 위해

무엇인가 베풀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미 넌..두 다리가 잘려 이러고 있는데..

신철 (역정) 누나

신미 (시니컬) 억울한 건 육신이 잘린 본인 당사자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믿으라는 것인가!

해설 신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신철 누나. 오늘 무슨 일 있었지?”

신미 무슨 일 있긴.. 널 이렇게 만들고도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는 그

작자들이 괘씸해서 그래..

신철 누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은 고난의 행군 시기야. 나라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데 자기 일신상만 생각하면 안되지.

신미 그럼 뭘 생각해야 하니?

신철 난 조국 앞에 병사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야. 그 어떤 보수를 바

라고 한 것이 아니란 말이야. 그걸 생각했다면 금방 터질 수류탄

위에 내 몸을 덮지 못했을 게야.

신미 (허탈한 웃음) 장하군..

신철 (상 밀치며 격한) 누나가 생각하는 건 도대체 뭐요?

설마 날 보구 시 당 책임비서 앞에라도 뛰어 가서 쌀을 달라고

손을 내밀라는 건 아니겠지? 그거야? 누나?

 

해설 똑 부릅뜬 신철의 두 눈에서 열기가 철철 흘러 넘쳤다. 당장 잡

아먹을 듯이 다그쳐 대는 동생의 열띤 얼굴에는 정의에 대한 열광 뿐, 불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열광의 실제는 무모한, 어쩌면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신미는 그 두려움을 읽었다.

M 브릿지

 

E (역전동 아지트..방안)

태규 강기수! 리영식 상좌를 만나고 오는 길인가?

 

해설 자기를 쏘아보는 한태규의 시선 앞에서 예전 같으면 허둥거렸을

강기수였으나 오늘은 어인 일인지 두렵기는커녕 가소롭게만 보

인다.

 

기수 그렇소. 아침에 만났소. 그런데 그건 왜 묻소?

태규 왜? 내 자리에 자넬 앉히든가?

기수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태규 너무도 기고만장하니 하는 소리야...

기수 (능청) 에, 무슨 그런 말씀을. 소장 자리에 앉을 재목이면야 지금

까지 이러고 있었을라구요. 그리구 앉힌다 해두 난 생각이 없소.

태규 그래? 영감이 멀리 떠나라고 한 모양이지?

기수 (뜨끔) 아니 그건? (에코) 이놈이 어떻게 그걸 알지..(헛기침)태규 흐흐..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 그렇다구 지금껏 함께 일해 온

자기 상급자에게 그런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안 되지.

기수 (에코) 역시 한태규야..(기침하면서) 그런 거 절대..아..아닙니다..

태규 한푼이라도 더 긁자면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자네에겐

더 유리할 텐데... 안 그래?

 

해설 여하튼 한태규는 강기수보다 한 수 위다. 이 한순간에만도 강기

수는 그것을 진하게 느껴본다.

 

기수 (에코) 상대의 태도와 입놀림을 보고서도 전후사연은 물론 깊은

속셈까지 짚어내는 노회한 놈인 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

만 역시 대단해...

해설 그렇다고 내친걸음을 중도에서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기수 한소장님 말이 맞소. 난.

태규 (말 자르며) 됐네!

해설 한태규는 상황 고려도 없이 주절거리려는 그의 말을 중도에서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태규 아 뭐해? 빨리 들여오지 않구!!!

M 브릿지

 

E (방안..오프에서 바다의 소리 들리고)

행우 (힘겨운) 문기..정아 엄마는..?

문기 김행우..당신이 시킨대로 장에 나갔소..

행우 다시 찾아 와 줘..고맙네..

문기 가족까지 내고내고 하고 싶은 말이 뭐요?

행우 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지금껏 살아왔네.

문기 (비아냥의 헛웃음..)

행우 아니 살았다기보다 그저 숨을 쉬는 송장에 불과했지...

주위의 도움을 받아도 헤쳐 나오기 바쁜 이 세월에 죽이려고

피를 물고 덤비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수로 내가 버틸 수 있었

겠나...

문기 정아어머니는 알고 있소?

행우 아니..몰라..한태규가 피를 물고 덤비는 것보다 더 가슴 죄인 것

은 내가 저지른 그 수치스러운 일이 내 아내나 아이들에게 알려

지는 것이었네. 그건 차마..

문기 ... 흐음...

행우 (두려움에) 문기 날 용서해 주게. 내가 지은 죄는 나 한 사람만

으로 끝나야지 않겠나. 그 죄가 내 가족에게까지 들씌워진다면..

흑흑..

문기 걱정마시오..

행우 내 어린것들의 눈동자에 추악한 아비의 음영이 조금이라도 비껴

든다면 아, 난 죽어도 그 죄를 다 씻지 못할 거네...

그러나 한태규는 그걸 요구하고 있네...

문기 설마..자식에게 발설하지는

행우 아냐..아냐.. 충분히 그럴 사람이야.. 문기, 자네만이라도 날 좀,

내 가슴속에 끓어 번지는 마지막 소원만이라도 헤아려 날 용서

해 주게. 자네까지 끝내 날 용서 못한다면 내 생은 너무도 비참한 것 아닌가... 응..

 

해설 피를 토하듯 부르짖는 행우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문기도

가슴에 응어리졌던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얼음 녹듯 풀어졌다. 뼈저린 자책과 후회 속에서 살면서도 언제 한 번 세상 앞에 떳

떳한 자기 얼굴 한 번 내보일 수 없는 생이라면 그건 너무도 가

혹한 것이다.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의 가족에게까지 액운을 안겨준 한태규.

문기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M 브릿지

 

E (역전동 아지트..방안)

주모 (상 놓는..돌솥에 장국 보글보글 끓는) 두부와 감자, 송어 토막을

넣고 토장을 풀어 끓인 장국이요

태규 (떠먹으며) 어. 잘 끓었군..(술병 집으며) 자네 한 잔 할 텐가?

해설 상 밑에 놓인 바이주 병을 잡으며 한태규가 한 마디 하자

주모 아이구 원 물어 보나 마나. 병 이리 줘요! 내가 한잔 드리지

(잔에 따르는 )

태규 아, 난 싫어. 아직도 머리가 욱신거리는데... 난 밥을 좀 먹어

야겠어 (밥 게걸스럽게 먹는 소리)

주모 에구머니나.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날 때도 있네. 자 밥 잡술

분은 밥 잡숫고 아저씬 나하고 한 잔 합시다. 자

기수 (잔 살짝 부딪히고 마시는..)

주모 코가 비뚤어지게 마실 모양이네...호호

태규 (게걸스레 국밥 먹는)

주모 아니 며칠 굶었어요? 하긴. 내가 끓인 장국 맛있지요?

말해 봐요. 맛있어요. 없어요? 에구나. 볼 미어지겠네...호호

태규 흐음..(밥만 먹는)

 

해설 여늬 때 같으면 술상에 화기가 돌 여인의 아양이겠으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잡아먹을 듯한 눈총으로 한

번 치 떠보고는 그냥 국밥만 입 안에 쓸어놓는 한태규. 말없이

앉아 조금씩 술 마시는 흉내만 내는 강기수.

 

주모 (일어나 나오며) 찬바람이 쌩쌩불어 앉아 있을 수가 없네..

 

해설 눈치 빠른 여인은 자기가 호들갑을 떨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아차린 듯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나왔다.

M 브릿지

 

E (방안..산속의 밤 소리들..오프에서.)

 

신철 (격앙) 말하자면 네가 다리까지 잘리면서 그래봤자 누가 알아주

는 사람도 없는데 결국 손해 본 건 너뿐이 아니냐 그거 아니요?

신미 넌 이젠 겨우 스물 두 살이야. 네가 몸으로 덮은 수류탄 문제도

그래...자칫 실수하면 수많은 귀중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실탄

훈련장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을 내세웠다는 건 그의 교육을 책임진 지휘관의 잘못이야..(목메임) 난 내 동생이 전쟁에 나가서 두 다리를 잃었다면..이렇게 비통하지 않았을거야.. (울음 호흡..)

 

해설 신미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지나간 위

훈보다 눈앞에 생생한 불행이 더 가슴 아픈 법이다. 그 불행을

등에 진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의 친혈육이고 보면 그 가슴 저

린 안타까움을 영웅이라는 한 장의 증서로 다 메워 버릴 수 있을까? 2000만이 넘는 이 땅의 인구 중에 신철이와 같은 영웅이 도대체 몇이나 되나? 아무리 어려운 고난의 행군 시기여도 이런 영웅들에게 쌀 한 줌 공급 못해 주는 사회라면? 허망한 일이 아닌가. 실권을 쥔 자들은 산해진미에 배를 두드리고 자신의 향락을 위해 별의별 추악한 짓을 다하고 있을 때 영웅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미워지는 것은 리영식과 같은 추물이었다.

M 브릿지

 

E (행우 방안..오프에서 밤 바다 소리들)

행우 (가쁜 숨..) 문기..난 더 이상은 못 살 거 같네..

문기 한태규 개자식..무슨 무슨 권리로 이미 지나간 문제를 가지고 이

리도 악착스럽게 달라붙어 한 인간의 인생을 초개처럼 짓밟아 버리는 것인가...그렇다면 한 미숙도..한태규가 보낸 사람?

옥가락지 사연까지 물어보던 한미숙...

해설 이 순간 춘희의 옥가락지 문기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그건 한태규와 김춘희 사이의 애증물이다. 버림받고 떠나오면서도 춘희가 그 옥가락지를 부디 한태규에게 남기고 온 것은 언제건 자기 옆에 그가 돌아오기를 기원해서였다.

문기 우리는 한태규가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 것을 잊을 것이라 했는

데.. 오히려 그 세월이 흐를 수록 복수의 칼날을 갈았구나..

해설 숨을 깔딱거리는 김행우를 눈 앞에 둔 문기의 머리속에 무엇인

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복수로 빚어진 무지한 칼을 품고 이를 갈아 온 것 한태규다.

M 브릿지

 

E (밤 파도 소리..)

E (저벅 저벅 모래사장을 걷는 발걸음 소리)

태규 (걸음 멈추며) 흐음..

기수 흠..(서는)

 

해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부두에서 멀리 떨어진 삐죽삐죽 제 나

름대로 튀어나온 바위들에 밤 파도가 철썩이는 모래기슭에 두 사내가 마주 서 있다. 정전이 되었는지 깜깜한 도시를 배경으로 우중충하게 들어선 벼랑을 옆에 두고 마주 선 두 사내는 한태규와 강기수다.

 

E (파도 소리..)

해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소리 뿐. 무인도 같은 무시무시한 정적

만이 깃든 바다 기슭이었다. 이미 불필요한 대화는 지나간 듯

무섭게 상대를 쏘아보며 한태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태규 왜 김춘희를 없애지 않았어. 그 속내는 뭐야?

기수 잠시 뒤로 미루었을 뿐이오.

태규 뭐야? 그게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말했지?

만약 그걸 어길 적에는 그와 상응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거라구! (분노에 찬 호흡으로 다가서는)

기수 (뒤로 밀리며 두려운 호흡)

 

해설 주먹을 부르쥔 한태규가 한 발 다가섰다. 그와 함께 강기수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얼핏 보더라도 두 사람의 육체는 상반되

는 모습이다. 한 쪽은 거구, 한 쪽은 약골이다. 키는 서로 비슷했지만 그 둘레는 어림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똑같은 길이의 미역으로 비교하면 하나는 생미역 다른 쪽은 마른 미역이다. 진이 다 빠져 쪼글쪼글한 놈이 생생한 놈을 아예 죽이기라도 할 듯 서슬 푸른 기상으로 다가든다.

 

태규 내가 너를 용서할 것 같으냐? (기수 바닷쪽으로 미는 호흡)

기수 (에코/밀려가는 호흡) 바짝 말라빠진 게 기운으로 해보겠다고?

리영식은 열차 지붕에서 떨어뜨려 자연사로 위장하라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아예 선제 타격으로 요절시키는 수밖에..

저 검푸른 바다에 바위들과 함께 처 매여 던져 넣어주지.

태규 (계속 압박하는 호흡) 왜 김춘희를 죽이지 않았지..? 말해봐

기수 에잇(OL/발에 뭔가 걸리는 호흡..날라차기해서 가격하는)

태규 (OL/날카롭게 기수 넘어뜨리는) 이 자식이~

기수 (철퍼덕 나가 떨어지는)

 

해설 한 발 한 발 다가드는 한태규를 향해 뒷걸음치던 강기수는 뒷

발이 무엇인가 걸리는 찰나 그것을 발판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여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다. 의외로 쓰러진 것은 강기수

였다.

M 브릿지

 

E (산속..밤 깊은 소리들..)

신미 (마당에 나와 서성이는) 오늘..난 내 마음 속에서 강기수를 지웠

다..리영식에게 몸을 빼앗긴 이상..강기수를 바라봐서는 안 돼..

그러나 강기수가 어느 편인지는 분명히 알고 싶어..그리고 나 자신도...어린 김춘희가 몸을 더럽히고 사지로 내몰렸듯이..나도 그전철을 밟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일 시로 들어가서 춘희언니와 아저씨를 만난 후 이 집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

내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렇게 불안할까...

E (깊은 밤 산속의 소리들..up & down)

M 브릿지

 

E (파도 소리..)

기수 (모래 사장에 쓰러진..괴로운 신음 소리)

태규 어떠냐..?

 

해설 강기수는 그처럼 예리한 타격은 생전 처음 받아 본다. 언뜻 무엇

인가 자기 명치를 향해 다가드는 느낌을 받은 순간 갑자기 정선이 땡 해지고 전신의 피가 모두 빠져버리는 듯 했다. 허탈 상태에 빠져 맥을 놓고 널부러진 강기수는 정말 마른 미역이 되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태규 (담배불 붙여 무는 호흡) 개 자식.. 아예 죽여 없애려다가 그쯤해

둔다. 네 놈이 도대체 누구 앞이라고 ..강기수가 한태규에게 먼저

발길질을 하다니..

 

해설 담배가 소리 없이 타들어 가건만 한태규는 빨아 볼 생각도 없는

듯 쓰러진 강기수의 흉한 몰골을 내려다보며 깊은 사색의 바다를 헤치고 있었다.

 

태규 아침에 리영식과 강기수 니가 한체 타고 가는 걸 봤다..

분명 이 놈은 리영식의 뒷심을 입은 것만은 사실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방자할 수는 없지..

후~~ 리영식의 뒷심이라는 것이 뭘까?

M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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