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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Pen) 망명북한센터 연간 문학지 제4호(2016년) 발췌

  • LV 12 이지명
  • 조회 330
  • 2018.02.19 12:43

“김일성 훈장, 옥수수 빵 한 개와도 안 바꿔주더라”... 문학으로 증명된 北 실상

국제펜(Pen) 망명북한센터 연간 문학지 제4호(2016년) 발췌

월간조선 뉴스룸 

                            

 

2017년 5월 25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열린 2017 와글바글 장마당에서 학생들이 북한 꽃제비를 재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에는 공식적인 탈북작가들의 문인 단체가 조직돼 있다. 바로 2012년 세계문학단체인 '국제펜클럽에' 가입된 국제펜망명북한센터(이하 ‘망명펜센터’)다. 현재 탈북 등단작가 1호인 김정애 소설가가 이사장이 돼 이끌고 있는 망명펜센터는 연간 문학지를 발행한다.
 
망명펜센터 탈북작가들은 매년 이 문학지에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자유통일을 촉구하는 문학 작품들을 발표해 싣는다. 시·소설·수필은 물론 북한에서 직접 보고 들은 실화 또한 일기처럼 구성해 수록한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과, 그들을 억압하는 세습 독재 치하의 모순적인 사회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하 2016년에 발간된 해당 문학지 제4호에 수록된 문학작품들의 여러 대목을 인용해 싣는다. 최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는 남북 대화 국면에서 다시금 북한 사회의 허실을 간파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그들의 뜻대로 통일될까 겁이 납니다”
 
망명펜센터 연간 문학지 제4호에 ‘통일의 그날까지’라는 제목의 발간(發刊) 축사를 쓴 이길원 망명펜센터 고문은 해당 글에서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 사각 지대”라며 “경제 문제 또한 세계 최빈국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통일 운운하며 핵개발이나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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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펜센터에서 발간하는 연간 문학지. 사진=망명펜센터
이 고문은 “그들(북한)의 뜻대로 통일될까 겁이 난다”며 “이런 북한의 현실은 북한 최고 권력자가 사라지기 전에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망명북한 작가들은 이런 북한의 실상을 문학으로 표현해 제대로 알리는 문인들”이라며 “망명북한펜센터 회원들의 이와 같은 노력은 조국이 통일되는 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해당 축사의 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북한 주민의 인권은 외면한 채, 북한 정권과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 탈북 작가는 ‘북한에서 살다 온 우리들도 있는데 한국의 종북 좌파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도 축사에서 “저는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문학 단체에도 소속돼 있고 대학의 교수이기도 합니다만 더 이상 북한의 인권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한다”며 “이 일(탈북문학)은 매우 중요하며 꼭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뭇매 맞아 피 흘리면서도 젊은이는 무를 삼키려 한다”
 
제4호 문학지에 탈북 시인 이룡하씨는 ‘저승길’이라는 제목의 시편을 발표했다. 이 시인은 해당 시편에서 “먹고살기 위해 떠난 것이 죄 붙잡힌 것이 죄다”라며 “죄 값 치르느라 모진 고통, 온갖 노역, 굶주림에 / 허덕이면서도 지친 몸으로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그렸다.
 
그는 특히 해당 시편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려다 붙잡힌 한 북한 청년이 배고픔에 무 한 조각을 주워 먹다 맞아 죽는 참상을 묘사하기도 했다.
 
“살길 찾아 중국으로 가려다 잡힌 그 / 중국 밥 한 그릇 먹어보지 못하고 애석하게 잡혀온 그 / 땅에 뒹구는 무 한 조각 주어 먹으려다 / 동갑내기 계호원에게 사정없이 두드려 맞는구나 / 차이면서도 무 한 조각 기어코 입에 넣는다 // 당장 뱉으라고 소리치는 계호원의 소리 / 아득한 공간에서 들리는 먼 소리일 뿐 / 청춘은 정신없이 무만 씹는다 // 뭇매가 이어졌고 뭇매를 맞아 피 흘리면서도 / 젊은이는 무를 삼키려고 한다. 삼키려고 한다. (...) 팔다리 부러진 애젊은 청춘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 채 삼키지 못한 무 한 조각 입에 물고 마침내 절명하고 말았다 // 젊은이 죽음 앞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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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5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열린 2017 와글바글 장마당에서 학생들이 북한 꽃제비를 재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 망명펜센터 이사장인 탈북 소설가 이지명씨는 제4호 문학지에 ‘금덩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다. 북한 정치범관리소에 잡혀온 노인 ‘윤칠보’의 시선을 통해 북한의 비정상적 배급제를 비판하고 아사(餓死)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1997년에 들어서며 삼 년째 계속되던 ‘고난의 행군’이란 굶주린 악귀가 사람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국가 식량 공급이 끊겨 굶어 퉁퉁 부은 사람들이 전국 어디나 차고 넘쳤고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녔다. 뭐라도 건지면 그날은 숨을 쉴 수 있었고 빈손이면 숨을 멈춰야 하는 비몽사몽의 환각 같은 날들이었다. 아침이면 돌덩이처럼 굳어진 시신을 실은 달구지며 리어카가 집집에서 나와 곡소리도 없이 산으로 향했다. 하도 많이 죽으니까 사람 죽었다는 소리가 나중에는 향방 없이 짖어대는 건넛집 개 소리같이 들렸다. 노인의 큰딸도 그런 굶주림 때문에 자리에 누웠고, 작은딸은 먹을 것을 찾아 가출해 버렸다.”
 
곡식이란 곡식은 군량(軍糧)으로 쓰여... 굶어 죽는 주민들은 외면
 
소설 속에서 노인은 가을임에도 가족들이 쌀을 구경조차 못하는 상황이 되자 곡식을 관리하는 북한 농장관리위원회에 간다. 노인은 굶는 식구들을 보다 못해 “분배 몫에서 얼마간 먼저 떼어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위원회 간부의 싸늘한 박대다.
 
“굶는 게 어디 당신 집뿐이요? 지금 탈곡한 식량은 전량 군부대로 수매될 식량인데 지금 그 양이 형편없이 모자란단 말이오, 가서 한 달만 기다리우. 알겠소? (...) 눈이 있으면 좀 보오. 탈곡장을 에워싼 저 총 든 군대 안 보이오? 수매량을 맞추지 못하면 군법에 의해 처형당할 수도 있는 판인데, 누구 죽는 꼴 보려고 이러우? 나가우. 어서, 아, 빨랑.”
 
다음날 노인은 퇴근 무렵 남몰래 허리춤에 강냉이를 훔친다. 굶어 죽어가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절도였지만 그나마도 ‘총 든 군인에게 잡혀 부대가 주둔한 건물로 끌려’ 가고야 만다.
“노인은 식량 도둑으로 체포됐고 군법에 의해 속전속결로 다스려졌다. 이를 갈던 군부대 수뇌부의 결정에 의해 시범처벌대상이 된 노인은 결국 그날 밤으로 어디론가 끌려갔다. 끌려간 후 나도는 말은 도적질보다 노인이 토한 울분 때문에 더구나 용서받지 못했다는 소문이었다. 나라를 원망하고 군대가 백성을 말려 죽인다는 그 말 때문에 결국 저승사슬을 목에 걸었다고 숙덕거렸다.”
 
이 같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비단 서민들만의 고통이었을까. 북한에서 이른바 ‘영웅’ 칭호를 하사받을 정도로 나름 ‘인재’ 대접을 받았던 사람들은 편하고 배부르게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까.
 
제4호 문학지에 ‘노력영웅의 소원’이라는 실화(實話) 수기를 발표한 탈북 작가 이주성씨는 해당 글에서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심재만도 다를 바 없었다”며 “그는 굶주림을 참다못해 혹시나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없나 집안을 뒤적거리다 훈장들과 먹거리가 될 만한 것을 바꾸어 보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해당 이야기가 북한의 실화 수기라는 점을 감안, 글 전체 분량 중 절반가량을 요약해 옮겨 싣는다.
 
〈피골이 상접한 7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 남자가 10평도 되나마나 한 작은 방 안에서 장롱 문을 열더니 안쪽에서 무엇인가 뒤적거린다. 힘이 없는 모양이다. 조금 움직이다가는 멈추기를 반복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입은 반쯤 열려 있다. 그의 나이는 60세를 갓 넘긴 사람이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급 기업소 유선탄광에서 이름을 날리던 심재만 노력영웅이다. 그는 유선탄광 성남갱 굴진 중대장으로 10여 년간 죽기 살기로 일을 해왔다. 데리고 일하던 아래 직원들만 100명 가까이 되었다.〉
 
‘영웅’ 칭호 받은 국회의원급 인사도 먹을 게 없어 객사(客死)
 
〈밤색 옷 칠을 한 작은 나무함을 꺼내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텅 빈 장롱문을 닫는다. 나무함은 가로 세로 붉은 천 포장 띠로 묶여 있다. 그는 띠를 풀어 헤친다. 길게 한숨을 몰아쉬고는 손을 천천히 움직인다.
 
나무함 뚜껑을 열어 놓으니 그 속에는 금박으로 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장이 찍혀 있는 빨간 비로도 천의 주먹 크기의 네모 박스 3개가 들어 있다. 조심히 박스를 하나씩 방바닥에 꺼내놓는다. 나무함 안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노력영웅 훈장 증서’ 금박 글씨로 박힌 검은 밤색의 마분지로 되어 있는 두터운 훈장증서가 보인다.
 
북한 정권이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한 심재만은 북한 정권의 최고 통치자였던 김일성을 미친 듯이 숭배하고 충성했던 핵심 노동당원이며 일꾼이었다. 그는 북조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까지 한 북한 정권에서 말하는 조선로동당 핵심 정수 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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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을 지고 행군하는 북한 군인들. 사진=조선DB
수천 길 지하 막장에서 수십 년간 북한 정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한 대가로 얻은 것은 노력영웅 훈장과 국기훈장 1급 3개를 비롯해서 공로 메달만도 수십 개나 되었다. 그러던 그가 수개월째 낟알 구경을 하지 못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선택을 하고 있었다.
 
심재만의 아내는 자식들이 하늘나라에 떠난 지 몇 달 동안 낟알 한 알 없이 지냈다. 풀만 먹다 보니 풀독이 올라 온몸이 부어 며칠을 앓더니 끝내 남편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하직했다.
 
아내마저 없는 심재만을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두부비지와 술을 뽑고 남은 찌꺼기를 가져다 줬고, 심재만은 그것을 조금씩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었다. 그것도 며칠간이다. 어디서 도움받을 데가 없어진 심재만은 산에 올라가 풀뿌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먹다 움직일 기력이 없어지자 산마저 가지 못하고 집에 들어 누워버렸다.
 
그는 굶주림을 참다못해 혹시나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없나 집안을 뒤적거리다 훈장들과 먹거리가 될 만한 것을 바꾸어 보려고 생각했다. 자식들과 아내가 굶어죽었을 때도 팔려고 생각지 않던 영웅훈장을 죽음이 목전에 다다르자 먹을 것과 바꾸기로 결심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여해 주신 영웅 메달과 훈장들인데 쌀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못 받아도 강냉이(옥수수) 50kg은 받을 수 있겠지? 조금씩 죽을 쑤어 먹으면 죽지는 않을 거야.’
 
“여보게, 먹을 것 있으면 노력영웅 메달과 바꾸지 않겠나.”
 
한 집, 두 집 문을 두드려 노력영웅 훈장과 국기훈장들을 낟알과 바꿀 수 없는가 물어 보았더니 한 사람 같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밀가루 빵을 팔고 있는 아낙네에게 훈장들이 들어 있는 나무함을 들이밀며 빵 한 개와 바꿀 수 없는가 하고 애원해 보았으나 시끄럽다는 욕설뿐이다.
 
옥수수 50kg과 바꾸어 보겠다던 영웅메달과 훈장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가주석 김일성 동지께서 하사한 공화국 공민의 최고 훈장인 노력영웅 메달과 훈장이 옥수수 빵 한 개와도 바꿀 수 없는 동조각에 불과한 것임을 심재만은 그때에야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회령시장 입구에서 멀지 않은 길거리에 심재만 노력 영웅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하늘을 향해 눈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가.〉
 
월간조선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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