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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비핵화·經協보다 北 개방시키는 게 더 중요… 그러면 다 해결돼”

  • LV admin 웹지기
  • 조회 224
  • 2018.05.24 06:42
2018년 5월 23일 (수)
 
▲  탈북 소설가 이지명 국제PEN망명북한펜센터 명예이사장이 16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작가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개방에 초점을 맞춰 정상회담이 진행돼야 한다”며 “북한 주민의 자유와 평화에 초점이 맞춰져야지, 왜 김정은 정권을 살려주려는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탈북 소설가 이지명 

‘천안함·연평도’ 얼마나 됐다고   
김정은 호감도 상승? 말도안돼  

經協 시작되면 배급제도 부활  
北주민들 다시 독재의 노예化  

女종업원들 남한온지 이미 2년   

北送땐 선전 이용당하다 ‘희생’  

98년 굶어죽은 이웃 20명 묻어  
中서 일한 만큼 돈 버는것 알아  
강제북송 됐다 재탈북…南으로  

北선 체제문학… 스킨십도 못써  
탈북 뒤 먹고사느라 창작 못해  
써논 작품 방송타면서 글 재개
 

“김정은에 대한 호감도가 80%까지 오르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북한 체제의 속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탈북 소설가 이지명(65·사진) 작가는 지난 16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가 높아지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10년간 군 복무를 하고 일찍이 노동당원으로 가입해 북한 체제에 충성했다. 조선중앙작가동맹 소속으로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대한 찬양 작품을 썼다. 북한 엘리트 중 엘리트로 불렸지만 배고픔을 피해 1998년 중국에 넘어가 자유를 맛본 뒤 이를 잊지 못하고 강제 북송된 뒤 다시 200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리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탈북 등단작가 1호’ 김정애 씨와 함께 총 10편의 단편소설집 ‘서기골 로반’을 내기도 한 그에게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비롯한 평화 분위기와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탈북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에 대한 국내 호감도가 상승했다.

“김정은에 대한 호감도가 80%까지 오르는 게 말이 되는가. 아직도 천안함 46명 용사가 바다에 수장돼 있다. 대낮에 연평도에 포격을 당한 지, 우리 장병이 목함지뢰로 장애인이 된 지 얼마나 지났나.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를 총살하고 형을 독살했다.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며 인민무력부장도 기관총으로 사살했다. 호감도가 올라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북한 주민 3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정치범수용소에는 30만 명이 넘는 수용자가 갇혀 있다. 이러한 역사의 죄를 정상회담에서 평화 분위기가 펼쳐진다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 탈북인은 북한에 대해 너무 잘 안다. 학자들은 이론을 알아도 북한 체제의 속성에 대해서는 체험해보지 못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탈북자는 격분할 수밖에 없다.”  

―남북경협 분위기가 활발해지는 것은 좋은 신호 아닌가.

“남북경협이 시작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남북경협이 시작되면 김정은 정권을 살리기 위해 경제적 지원이 들어간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해제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 배급제도가 다시 생긴다. 배급제도는 종속관계다. 사람들을 체제에 종속시키기 위해 배급제도를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줄 게 없어서 중지된 상태다. 대북 지원이 시작되면 북한 주민들은 다시 독재체제에 종속된 노예가 되는 것이다. 경협보다는 북한의 경제적 개방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개방이 되면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지고, 정권이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주민을 상대로 해야 진정한 평화인데 왜 정권을 살려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북한 비핵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금까지 70년간 북한 정권이 추구해오던 핵 노선을 이 순간 버렸다고 생각하는가. 김정은은 미국과 맞서려면 힘을 동등하게 키우라는 유훈을 받들고 있다. 김정일 때부터 추진해온 게 핵 개발이고, 미국과 협상하기 위해 만들어 온 핵이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 방안이 있나.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말하지 못한다. 평화 무드라고 하는데, 평화 무드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는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행사를 진행한다고 치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만들어놓은 핵을 그 넓은 땅속 지하 어딘가에 감춰두면 알 수 없다. 냉각탑을 폭파해도 다시 핵실험을 할 수 있다. 1만5000여 명의 핵 기술자가 북한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남북 군사적 긴장 분위기는 많이 완화됐다는 평가다.

“북한은 절대 먼저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 남한 사람들은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일촉즉발의 상태까지 갔다가 다시 평화로 돌아오니까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는 놀아나는 것이다. 정부에 대해 비판하거나 칭찬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싶지만, 문재인 정부처럼 하면 절대 북한을 길들일 수 없다.”

―최근 북한이 탈북 여종업원 소환을 들고나왔는데.

“왜 이 시점에서 탈북 여종업원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넘어온 지 2년이 넘었다. 과연 북한으로 돌아가서 인간답게 살 수 있겠는가. 정치 선전에 이용당하다 어느 날 보위부에 끌려가 산 채로 묻어버리면 끝이다. 보위부에 끌려가면 가족들도 언제 잡혀갈지 몰라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야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근에 북송에 대해 묻는 의원 질의에 ‘말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넘겼다. 이는 북한 억류자와 교환까지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북송 준비’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안점을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핵 폐기보다는 북한의 개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탈북자들이 계속해서 북한에 돈과 소식을 들여보내면서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민심을 타고 반대 세력이 일어나서 정권이 바뀌면 무조건 개혁개방으로 가게 돼 있다는 점이다. 개방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 핵은 없어지게 돼 있다. 저 (김정은) 정권은 절대 핵 폐기를 못 한다. 핵을 폐기하는 대신 체제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어느 국가가 독재체제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가. 그러나 북한은 개방을 안 받아들일 것이다.”

―북한의 조선중앙작가동맹 회원이었는데, 주로 어떤 작품을 썼나.

“북한에서는 짧은 희곡을 썼다. 10∼20분 진행되는 무대작품이다. 김일성·김정일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지도자들에게 충성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그린 정형화된 작품을 썼다. 북한에는 순수문학 자체가 없다. 북한 노동당의 문예이론에 따르면, 순수문학은 예술지상주의일 뿐이다. 순수한 사랑은 없다. 동지와 동지의 사랑, 혁명전사들의 숭고한 의리에 기초해서 연애도 진행돼야 한다. 이걸 무시하면 어느 순간 나태한 비사회주의적 현상으로 지탄받을지 모른다. 북한에선 손을 잡거나 스킨십을 하는 게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머릿속이 텅텅 비어 있고, 충동도 못 이기는 사람들로 치부된다. 충동을 못 다스리면 당에 충성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북한에는 오직 체제 문학뿐이다. 지금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쓸 수 있다. 이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중국으로 탈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에서 500여 편의 작품을 썼지만 1998년 북한에 닥친 식량난으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엄청난 고생을 했다. 굶어 죽은 이웃 주민 20여 명을 내 손으로 땅에 묻었다. 엊그제 옆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다음 날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배가 고파서 아사(餓死)한 것이다. 당시 당국에서 벼 뿌리와 옥수수 속갱이를 갈아서 대용식품으로 먹게 했는데 석 달 만에 폐지했다. 사람이 먹을 수는 있지만, 소화를 못 시켜 항문을 굳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끼리 그걸 꼬챙이로 파내기도 했다. 사람들의 아우성이 커지자 당국에서 이를 중단시켰다. 사람 목숨이라는 게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사라는 게 경험해 보지 못하면 모른다. 이상할 정도로 힘이 빠지면서 자리에 눕게 되는데, 반듯하게 편하게 누울 수도 없어서 높은 베개를 베면 아침에 시체가 되는 것이 아사다. 술을 구할 돈도 없어서 단맛이 나는 풀을 물에 풀어서 제수로 썼다. 그런 고난 속에서 글이 다 무엇이었겠나. 글을 쓸 여유도 없었고 일도 할 수 없어서 중국에 계신 외삼촌에게 돈을 빌리러 갔었다.”  

▲  이지명 작가의 왼손 검지와 중지가 한 마디씩 잘려 있다. 이 작가는 “탈북 후 중국 제지회사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며 “그래도 일하는 만큼 돈을 벌고 자유가 있는 곳이 더 낫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2년 동안 옌볜(延邊)에서 생활했다. 외삼촌이 빌려준 돈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옌볜으로 나와 일을 해서 돈을 벌자고 생각했다. 북한에서 탄광 기사를 했었으니, 탄광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때 일하는 만큼 돈을 버는 맛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당시로는 큰돈인 5000위안을 정산받으러 사무실에 가는데 북한 공안에서 둘이 들어와 그대로 잡아갔다. 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당국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큰 고문 없이 풀어주더라. 그런데 이미 나는 한번 자유의 맛을 본 사람이 됐다. 더는 북한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노동 강도는 중국이 더 셌지만, 중국은 그래도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시 국경을 넘어 재탈북했고, 하얼빈(哈爾濱)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됐다.”

―한국에 온 뒤에는 어떻게 생활했나. 

“사실 먹고사는 건 남한이나 북한이나 거기서 거기다. 다만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글 한 자 써보지 못했다. 돈을 벌기 위해 택배 일도 하고 이삿짐센터 일도 해봤다. 우거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장이 돼서 운영도 해봤는데, 미얀마 토란 값이 3배나 뛰면서 부도 직전에 정리했다. 아무것도 안 되더라. 중국에 있을 때 썼던 ‘삶은 어디에’라는 작품이 라디오 드라마로 나가면서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최근에 현역 북한 작가로 알려진 필명 ‘반디’에 대해 알고 있나. 북한 내에서 원고가 반출돼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데 어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 작품을 보면 북한 사람이 쓴 것이 맞는다. 북한 실태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북한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절대 쓸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문학계에서는 반체제 작가이자 ‘제2의 솔제니친’이라고도 불리더라. 북한에서 작품 활동을 해 본 사람으로서 그런 작품을 써서 외부로 반출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학 자체로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하고 싶고, 그게 세계에 알려져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에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탈북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랄 뿐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북한에 3600명 정도의 시인이 있는데, 북한 보위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그 사람을 잡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북한은 굉장히 조직화된 정부이고, 작가의 수가 많지도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필력만 조금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반디라는 작가가 무사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작가 생활의 목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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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이 얼마나 남았겠나. 끝까지 북한 인권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 만약 통일이 된다고 해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사연은 엄청나게 많다. 그것에 대해 글을 쓸 것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한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


△1953년 함경북도 청진 출생 △1974년 노동당원 가입 △함경북도 명천탄광 현장기사 △1984년 북한지질대학 입학 △1990년 조선중앙작가동맹 △2004년 11월 3일 대한민국 입국 △국제PEN망명북한펜센터 명예이사장 △문학지 ‘망명북한작가PEN문학’의 편집장
e-mail 김다영 기자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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