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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튜] 북한판 ‘붉은 지평’

  • LV admin 웹지기
  • 조회 27
  • 2018.08.17 05:40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8-08-14         
     
냉전 시대 때 공산주의 독재 정권의 언론 검열로 인해 공산주의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일반 사람들이 받는 실제 고통을 쉽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민주주의 국가로 망명한 동유럽 사람들의 증언은 아주 귀중한 정보였습니다. 특히 고위층 망명 인사의 보고는 더욱 그랬습니다.

2004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사망한, 북한에서는 ‘뽈스까’라 불리는 폴란드 군출신, 당시 74세이던 리차르드 쿠클리느스키 대령은 가장 유명한 동유럽 망명객 중 한명이었습니다. 냉전 시절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1970년부터 서유럽과 미국의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폴란드와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알려줬습니다. 1981년 12월 폴란드에서 노동조합에 의한 반공산주의 운동이 격화된 후 폴란드 공산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기 직전 쿠클리느스키 대령은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쿠클리느스키 대령이 망명한 후 폴란드 공산 정부는 그에 대한 궐석재판을 통해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폴란드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체제가 등장하자 쿠클린스키 대령은 다시 권리를 회복했을 뿐만아니라 영웅으로 인정돼 훈장도 받았습니다.

냉전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하던 동유럽 나라인,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저의 조국인 루마니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차우체스쿠 공산 독재주의 국가의 해외정보국 대장이던 미하이 파체파 장군은 1978년 7월 서독으로 출장을 갔다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사실 그는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차우체스쿠가 가장 많이 믿었던 측근 중 한 명이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와 그의 아내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었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놀라운 사실을 많이 폭로했습니다.

미국 망명에 성공한 파체파 장군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우체스쿠 정권의 인권유린, 정치탄압과 모든 악행들을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파체파 장군의 망명은 차우체스쿠 독재 정권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파체파 장군을 완전히 믿었는데, 그의 망명으로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한 차우체스쿠는 그때부터 배신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1971년 방북 이후 북한식 개인숭배를 추진 중이던 차우체스쿠는 파체파 장군 망명 사건 이후 정부 기관의 대다수 요직들에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을 기용하는등 주요 권력을 가족, 친척과 함께 나눠 거머줘 루마니아를 완전한 개인 숭배 국가와 1인 독재 국가로 만들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우체스쿠에 대해 루마니아 공산당 내부에서도 자기 가족,친척들만 챙긴다며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89년 말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공산당 고위 관리들은 루마니아의 독재자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또 반공산주의 혁명 이후 루마니아가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향하는 전환기에 들어섰을 때 공산주의 시절 고위 관리이던 많은 사람들이 루마니아의 새로운 기업가와 억만장자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공평한 과정은 아니었겠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과거 공산당 고위관리직에 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질수 있었습니다.

1978년 미국으로 망명한 미하이 파체파 장군은 1980년대 ‘붉은 지평’이라는 책에서 차우체스쿠의 생각, 사고 방식과 행위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폭로했습니다. 파체파 장군의 ‘붉은 지평’은 차우체스쿠가 가장 두려워했던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비밀 경찰은 온갖 수단을 다해 이 책이 루마니아로 흘러드는 것을 막았습니다. 저도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는 그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지만, 집에서 몰래 듣던 ‘자유유럽방송’이나 ‘미국의 소리’와 같은 외국방송을 통해 그 책의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붉은 지평’에 따르면, 차우체스쿠와 그의 아내는 밀고자와 도청을 통해 루마니아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며, 특히 차우체스쿠의 아내인 엘레나는 당 간부들의 사생활과 연애 사건은 물론 부부관계까지 직접 감시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루마니아 비밀 요원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 외국에서 마약과 무기를 밀거래 하곤 했는데 ‘붉은 지평’에서 파체파 장군은 이들이 악명 높은 국제 테러리스트와 연계해 움직인다는 사실도 폭로했습니다.

북한의 고위급 망명 인사 중에는 남한에 망명했다 2010년 말에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주체 사상의 입안자로 알려진 황 전 비서는 남한으로 망명한 후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의 인권 유린과 관련된 많은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여러번 미국을 방문한 황장엽 전 비서가 북한의 상황은 과거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체제보다 10배는 더 열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서울에서 황 전 비서가 개인 연구소인 ‘민주주의 정치 철학 연구소’ 출범식을 가졌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 인민들을 굶겨 죽이고 인권을 유린하는 생지옥을 만들고 식량배급마저 유지 못해 시장 경제의 문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독재의 산물이지 외국 원조의 산물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황장엽 전 비서 이후로 지위가 가장 높은 탈북자는 태영호 전 공사입니다. 2016년 8월에는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의 고위 엘리트 계층에 속하던 인물입니다. 태영호 전 공사는 단마르크 (덴마크), 스웨리예 (스웨덴), 유럽연합 담당 과장을 거쳐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돼 10년 동안 영국에서 근무했습니다. 태영호 전 공사는 2015년에는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유명한 가수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동행할 정도로 김씨 일가와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지난 2018년 5월 태영호 공사의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그 책에서 태영호 공사는 평양 심장부, 또한 김씨 일가에 의한 노예제 해방을 위해 의미있는 글들을 많이 썼습니다. 태영호 공사의 책을 읽으면서 북한 주민들을 탄압하고 착취하고 굶기는 김씨 일가와 북한 지도부의 목표, 북한 외교 전략, 기만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태영호 공사가 펴낸 책이 루마니아 고위 망명자 파체파 장군의 ‘붉은 지평’처럼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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