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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균형 혹은 대칭<1>우한용

  • LV 6 이지명
  • 조회 1925
  • 2016.05.27 08:01

공감적 발문(해설이 아님)

 

무시무시한 균형 혹은 대칭

      (이지명의 장편소설 포플라워를 읽고)

                                                     禹漢鎔(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Tyger! Ty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Dare frame thy fearful symmetry?

                                                                                        - William Blake, The Tyger

1.

 

나는 소설 하나를 집어들 때마다 늘 이런 유혹에 빠진다. 이 작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살아온 사람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나이는 얼마나 먹었는가, 대학은 다녔는가, 다녔다면 어느 대학인가, 결혼은 했는가, 부부생활은 탈이 없는가. 나아가 어떤 이념을 지닌 사람인가도 궁금해진다. 이 작가가 소설 쓰는 것은 운명적인가. 이런 궁금증은 내가 공부한 것들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별로 소용이 닿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치달리게 하다가 종당에는 텍스트 허무주의에 이르게 한다.

작품은, 특히 소설은 남의 이야기고,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기보다는 시대전망을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가라고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는데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텍스트가 그 자체로 자율성을 지닌다고 배운 것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작품을 작가론적 상관물로 치부하는 식으로 생각은 돌아가는 것이다. 아마 어떤 작품이든지 작가의 자서전적 요소를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작가가 진주를 품었던 조개껍데기에 불과하다 해도 그 생애의 시공간을 초월하기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자신의 시공간에 충실한 작가라야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은 시대의 증언이고 비판이다. 그래서 우리는 텍스트에만 집착하지 않고 슬그머니 작가의 약력을 확인하고 머리말에도 음험한 눈길을 준다. 그 알량한 선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읽는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섬뜩하게 다가온다. 당신 이런 세상 살아 봤어? 그런 질문을 던져오기 때문이다. 소설이 경험의 문학이고 기억의 문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당신의 그 말랑말랑한 슈크림 같은 경험과 한 폭의 수채화 틀에 갇힌 산뜻한 기억으로 정갈하게 처리된 소품의 세계에서 내가 산 세상을 이해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들이대는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탈북작가라고 이름 붙은 이 작가는 <장자>의 도척(盜跖) 편을 떠올리게 한다. 공자가 도척을 찾아갔다가, 호랑이 머릴 쓰다듬고 수염을 당겨서 그 아가리를 벗어나지 못할 뻔한 참담한 이야기를 장자는 호쾌하게 써 놓은 것이다. 공자 생각으로는, 형이라는 자는 마땅히 아우를 교화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친구 유하계(柳下季)의 동생 도척을 찾아가 유세하려든다. 유하계는 당신 아는 것은 나도 다 알아, 하면서 질러대는 소리는 이렇다.

공구야 네가 말한 것은 모두 내가 버린 것들이다.”

죽어 내 점심 반찬 되기 싫으면 돌아가라는 호통을 듣고 전전긍긍하며 줄행랑을 치는 공자의 모습은 가련할 지경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혹심한 질타로 낯을 붉힐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척 앞에서 꼼짝없이 당하는 공자의 이념이라는 것이 허위로 취급되는 것처럼 관점을 바꾸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작가가 우리들에게 짐지워주는 사유의 과업인지도 모른다.

남한과 북한을 같이 체험한 작가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최인훈이 창조해낸 이명준의 뒤를 잇는 문학사적 의미만으로도 이 작가의 존재이유는 충분하리라 본다. 물론 작품의 가치는 뒤에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2.

작가 이지명은 북한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소설을 쓰다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정착하여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이지명의 <포 플라워>는 그가 살았던 북한에서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여 벌이는 정치행각 가운데 주로 숙청의 과정을 박력 있는 플롯 속에 그려 넣고 있다. 북한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실상을 알지 못하면 쓸 수 없는 소설이다. 특히 권력의 암투를 속속들이 알아야만 쓸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나처럼 남한 세계에 기반(羈絆)된 작가는 이 작가의 경험 자체가 하나의 콤플렉스가 되어 돌아온다.

이 작품은 나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인간이 하는 행동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인간은 어떻게 조직되고 그 조직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 그 일들은 옳은 것인가 그런 질문들을 앞에 두고 나는 호흡을 고르기조차 어려웠다. 잠시 책을 놓고 생각을 가다듬기로 했다.

나 스스로가 스스러워지는 데서 철학은 출발한다. 스스럽다에서 스스럼이라는 단어가 파생했다. 스스럼없이 라는 부사도 같은 계열이다. 스스럽다는 말은 자신이 남처럼 느껴져서 어설프고 척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스럼이 없다는 말은 주객의 통일이 완벽해서 아무런 걸거침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도무지 뭐하는 사람인가,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어지러운가, 이 세상이 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가, 세계는 전망이 있는가 그런 질문이 철학으로 가는 초입에 장승처럼 우뚝우뚝 서기 시작할 때, 그 질문은 내가 나 같지 않고 남처럼 어설프고 그래서 나를 남처럼 대하면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들의 의식은 주체가 양분되는 분열을 체험한다.

이와 비슷하게 문학은 무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극해서 의식을 촉발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그 의식이 내면에서 발동하기 시작하면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그런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의식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역사란, 정치란, 윤리란 그리고 나아가 인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의식인 혹은 깨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교양인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을 찾는다. 문학은 근원적으로 나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일종의 의미회답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직접 답을 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본다. 이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살피는 것이 역사일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살피는 일은 사회학이나 정치학의 분야가 된다. 이런 분야를 견문이라 한다면 우리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공부하고 글을 읽고 여행을 한다. 그래서 세계를 내 의식의 범주 안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소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둘러싼 문제를 언어적으로 형상화해서 인간이 무엇인지 묻는 작업이다. 우리는 이지명의 이 작품에서 그러한 질문을 이끌어낸다.

 

3.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이 정권을 물려받은 것은 세계가 놀랄 만한 스캔들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삼대 세습(世襲)이라니 말이나 되는가 했는데 각종 사건과 소문 가운데 북한은 그대로 나라꼴을 유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김정은 암살기도가 있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소설은 김정은 암살음모 사건으로 집약되는 김정은 집권초기의 피바람이 이는 동토의 나라 북한의 내부 권력다툼과 숙청 등을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전개하고 있다. 김정은에게 서재은이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사년마다 꽃이 피는 희한한 화초가 있는데, 이를 김정은과 함께 사화(四花, four flower)라고 이름붙이면서 사랑이 점점 깊어진다.

서재은의 부친은 국가의 고위직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숙청 대상이 된다. 서재은은 김정은에게 자기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눈물로 하소한다. 그런 애원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듯이 총살형에 처해진다. 아버지를 죽게 한 원수 김정은을 암살하겠다는 독기를 품고 정치적 음모의 틈바구니를 비껴나가면서, 몸을 바쳐 원수 갚기를 도모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소설은 원한의 발생과 그 진행 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 골격을 짜 나아간다.

원한을 품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원한과 복수의 비극이라는 고전적소설양식을 차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고전이란 가치개념이 아니라 양식개념이다. 원한과 복수가 주요 스토리라인을 형성하는 소설을 뜻한다. 그런 양식의 전형 가운데 하나가 <장화홍련전> 류의 고소설이다.

욕망과 권모술수 그리고 관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사라지는 권력지향 인간들의 처절한 싸움 가운데 망가지는 인간들을 보게 된다. 그런 권력의 암투 가운데 김정은과 서재은이 다른 가닥의 암투를 벌이는 맥락이 이 소설의 골간이다. 전체 스토리는 독자가 읽어내야 할 몫이기 때문에 요약하기는 약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뼈대에 북한 정권의 타락과 그 타락 가운데 숙청당하고 처형되는 정치권력의 허무한 도생(圖生)이 소설의 살에 해당한다.

이 소설은 낯설음과 낯익음이 부정교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인상은 작가가 살았던 공간의 성격과 연관이 있다. 북한, 평양, 북한 정권의 실상 등은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기실 정확히 아는 바는 없다. 북한에 대한 이해가 이런 모순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잘 아는 듯 한데 잘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의식은 분열을 겪게 된다.

그 시대 그 땅이 소설의 양식을 창출한다. 소설은 일종의 시대적 인식구도이다. 소문에 의해 낯익어진 세계, 이러한 낯익음을 깨뜨리기 위해서 작가는 허구를 통해 낯설게 만드는 방법을 동원한다. 작가의 허구적 설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 소설은 읽기 불편하다. 문장은 시원시원해서 잘 읽히는데, 소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러한 불편함은 북한이라는 정치집단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대한 혐오감에 기인한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왕조시대에나 통용되던 숙청이 눈앞에서 전개되는 작중현실을 북한의 실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떤 임금이 새로 권좌에 오려면 적대세력을 숙청하는 것이 왕실정치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 숙청 대상은 이전 왕을 받들던 신하들, 적으로 간주되는 무리들, 나아가 친족, 외척, 형제 등을 포함한다. 그래야 왕권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왕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어야 하는 것이 왕권수호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인권의 유린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북한을 하나의 절대자, 군왕을 그대로 복제한 폭군의 왕국으로 설정하고 있다.

내부의 적이 사라지면 그 칼을 외부를 향해 겨누기 시작한다. 적이 있어야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치집단에게 외부로 설정되는 일차적 대상이 남한이다. 남한은 같은 민족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주적으로 설정된다. 그래서 막강한 병력을 확보해야 하고, 군비를 확충해야 하며,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 이런 지점에서 독자는 민족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정서와 논리의 괴리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불편하다.

소설론 몇 줄이라도 읽은 독자라면, 이 소설에 전개되는 내용이 허구라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러한데도 불편한 것은 북한이 같은 민족이 갈라져나가 만들어진 정치집단이라는 점 때문이다. 북한이 이 지경까지는 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기대가 이 소설을 읽어가는 가운데 용서없이 좌절된다. 그러한 좌절을 현실인식의 한 양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인식이 사실의 확인 그 자체는 아니다. 사실을 엮어서 논리를 세울 때라야 인식의 단계로 상승된 지적작용이 된다. 여기에는 대비항이 필요해진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어떠한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은 현실인식을 위해 예비하고 있다.

독자들은 정권 교체기 몇 년에 걸쳐 전개되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허구이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기대는 금방 배반당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작중인물들이 실각된 권력자들이라는 것을 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래도 그게 바로 그 사람인지는 확인하려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구적으로 설정된 인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성택의 경우는 다르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은 만고의 역적이라는 비판의 서슬에, 동료들 앞에 오랏줄에 묶여 무릎을 꿇고 결국 총살형을 당했다는 것을 모르는 독자는 없다. 소설에서는 김정은이 소년시대에 사랑을 알게 해준 서재은의 아버지 처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고모부에게 애타게 호소했다가 그 뜻이 좌절된 걸로 설정되어 있다. 작중인물 장승택은 북한 정치권력 핵심이었던 장성택이다. 장승택의 처형은 김정은의 원한감정과 연관되는 맥락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소설적 리얼리티를 높여준다.

이처럼 원한감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이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제에서 사는 독자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낯선데 그게 익숙한, 애정과 혐오감이 같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비애가 공존하는 이 양가감정을 다스리면서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평명한 비평정신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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