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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균형 혹은 대칭<2>우한용

  • LV 6 이지명
  • 조회 1963
  • 2016.05.27 08:04

심정적으로 북한은 같은 민족이고 우리의 동포(同胞). 동포란 같은 부모에게 포태(胞胎)된 형제자매를 뜻한다. 이른바 핏줄이다. 그 핏줄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덜어낸 자리에서 이 소설을 읽을 때라야, 남한과 북한을 양립시킬 때의 그 북한은 낯선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이라는 체제에 대한 허구적 인식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소설은 독자의 기대충복을 위한 오락물에 머물 수 없다. 또한 정치학이나 철학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소설은 구체적인 개인이나 어떤 국가에 일어났던 현실적 사건을 넘어서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데에 소설다움이 있다.

 

4.

소설의 언어는 시대의 언어와 작가의 언어인식이 결합되어 형상화된 결과이다. 소설의 언어는 작가가 세계를 파악하는 인식장치이다. 작가의 인식은 당대의 시대정신과 밀착되어 있다. 소재에 따라 언어가 운용되는 방식이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당대의 문학적 관습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다. 소설의 수사는 시대적 통념의 척도인 셈이다. 이 소설의 첫머리로 다시 돌아가 읽어보기로 한다.

 

-태양이 지글지글 끓는다. 도로변의 활엽수도 강변의 버들잎도 생기를 잃고 축 늘어졌다.

끓는 듯한 보통강 물에 떠 있는 개구리마저 입만 짝짝 벌리며 헐헐거린다. 아마 태양이란 저것이 서산마루에 걸릴 즈음엔 모두 생기를 찾아 다시 일어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 문제다. 나무만이 아니었다. 아스팔트도로도 쏟아 놓은 팥죽처럼 흐물흐물해졌다.

거리를 횡단하는 시민들 얼굴도 태양빛에 아예 녹초가 돼 버렸다. 먼지 오른 허름한 옷을 진이 빠진 야윈 몸에 걸치고 모두 무거운 배낭들을 졌다. 양산쯤 손에 든다면 조금 해탈될지 모르지만 그런 건 이미 돈깨나 모은 자들의 사치로 변한 지 오랬다.

앙상한 손으로 손부채를 만들어 휘휘 저어보지만 폭염을 물리치기엔 어림도 없다.(인용문)

 

자연의 횡포는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자연을 묘사하는 언어는 과장으로 넘쳐난다. 지글지글 끓는 태양, 끓는 듯한 강물, 팥죽처럼 흐물흐물해진 아스팔트, 녹초가 된 시민들 등은 우리가 익숙해진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시민과 부자의 극단적인 대조 또한 문체특성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주관적 묘사는 서술자의 감정을 거름장치 없이 생짜로 드러내는 문체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평양시 당 책임비서였던 아버지 서윤기의 사형장에서 딸이 보여주는 태도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식구들의 비명소리가 귀를 찢었지만 여인의 눈은 오히려 독 오른 맹수의 밤눈처럼 파란 빛을 발한다.” 이 부분에서 앞에 제사로 인용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호랑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너무 먼 거리의 상관물을 들이대는 것일까 싶지를 않다. 이러한 시각은 다음과 같이 일반화된다.

 

-사람은 상상을 초월한 참상 앞에서 그때까지 지탱했던 이성을 모두 잃게 마련이다. 공포의 세포는 바로 그 순간부터 맹렬한 속도로 사람의 육신을 점거해 버린다. 이 여인에게만은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사멸되려던 이성이 다시 복수로 번진 무서운 인상이다. 사려 문 입귀로 진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총탄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아버지의 시신 앞에 식구들 모두가 엎드려 대성통곡해도 한 점 눈물조차 볼 수 없는 냉정한 얼굴빛이다. (인용문)

묘사 중심의 객관미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소설 언어를 여기서 만나게 된다. 소설의 서술자는 작가나 작중인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객관미학의 주장이다. 앞에 인용한 두 단락에서는 작중인물의 심리와 서술자의 서술태도가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다. 존재 사이에 심리적 물결이 넘나든다. 심리적 거리를 소거했을 때 최상급이 동원되고 전칭판단이 넘쳐난다. 상상을 초월한 참상이라든지 이성을 모두잃게 된다는 서술이 그 예가 된다. ‘이 여인에게만은이라는 조건은 최상급의 다른 예이다. 식구들 모두의 대성통곡과 한 점 눈물도 없는냉정한 얼굴빛의 대조도 이러한 예의 변형이다.

원색적인 묘사는 사려 문 입귀로 진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라는 구절이라든지, 인용문 뒤에 이어지는 다음 구절은 이 소설의 문체특성을 잘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사형 집행관 중 한 사람이 아까부터 그녀의 모습을 아니꼽게 살펴보다가 재빠르게 달려와 억센 주먹으로 사정없이 면상을 후렸다. 땅바닥에 쓰러져 입귀로 줄줄 피를 흘리면서도 쏘아보는 안광에 집중된 초점은 예리했다.” 가격과 피가 낭자하는 장면이 직결되어 있다. 이러한 서술 방법은 엽기적 서술로 이어지기도 한다. 육담을 소설문면에 직접 도입하기도 하고, 단언적 발언이 일상화된 모양을 소설 텍스트 안에 이끌어 들이기도 한다. 구체적인 예를 찾아 읽고 비판하는 일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성의 사물화 또는 성의 물신화가 문면에 그대로 등장하고, 성에 대한 반성 없는 과도한 노출도 보인다. 이성을 잃고 육체에 탐닉하는 정치 권력자들의 성격은 과도하게 단순화되어 있다. 이는 내밀성이 상실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문화적 상관물 역할을 하기도 한다. 행위와 의식의 분리 내지는 괴리, 의식이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육체탐닉은 언어적으로 세련된 거리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문체는 소재에 함몰되어 있는 형국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문체가 소재에 함몰될 때 산문적 긴장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다.

 

5.

 

이 소설은 의미가 왜곡된 세계를 징그러울 정도로 철저하게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장자>로 돌아가게 된다. 천하의 대도로 이름나 있는 도척이 공자를 향해 비난하는 말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너는 스스로 재사인 양 성인인 양 하지만, 노나라에서는 두 번이나 쫓겨났고 위나라에서는 발자국을 지우고 숨었으며 제나라에서는 곤경에 처했고 진나라 채나라에서는 포위를 당했다. 천하에 제 한 몸 용납할 수 없는 네가 자로를 가르쳤으니 자로는 절임을 당해 죽는 환난을 당한 것이다. 위로 자기 몸을 다스릴 수 없고 아래로 남을 다스릴 수 없는 너의 도를 어찌 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장자, 601)

어떤 인간을 판단할 때 인간 자체라는 개념은 무용지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한 어떤 판단도 오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위나라, 진나라 같은 나라들이 얼마나 혼탁했는지, 당시 세객(說客)으로서 공자를 대하는 그들의 시각은 정당성을 지니는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내뱉는 도척의 말은 의미가 왜곡된 언어의 한 전범이 될 만하다. 이 소설에서 위에 인용한 것처럼 의미가 왜곡된 사회를 발견하는 것은 동족으로서 눈물겨운 일이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간파했을 것이지만, 이 소설은 언어의 무서운 대립을 보여준다. 충성 : 반역, 의리 : 배반, 정치 : 성욕, 국가 : 개인, 이성 : 욕망, 영혼 : 개짐승, 존엄 : 비천 등이 그 대립의 항목들이다. 대립과 양분법이 무서운 까닭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또는 존재 가능한 점이지대(漸移地帶)의 의미론적 스펙트럼을 지워 없앤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지역에서는 의미의 극단과 극단이 맞물려 언어의 이성적 처리가 불가능해진다. 충성이 곧 반역과 동의어가 되고, 정치는 육욕의 해소를 위해 동원되는 수단이 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시궁창에서 굴러야 한다.

이 지점에서 앞서 제사로 인용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타이거>라는 시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둠으로 덮여 있는 숲속에서 탐욕과 저주의 눈빛을 번득이는 호랑이, 그런 호랑이들이 득실거리는 숲 가에서는 양들이 풀을 뜯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포악하기 짝이 없는 호랑이는 분명 신의 창조물이다. 순수와 고결함의 표상인 양 또한 신의 작품이다. 같은 신이 호랑이와 양을 함께 창조했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모순과 불합리의 심연이다. 그 앞에서 신은 자기가 한 작업에 대해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시인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시에 나타난 호랑이가 인간의 신성과 악마적 속성인 마성을 상징하는 걸로 보면 이 또한 대칭이다. 이러한 대칭은 양과 호랑이를 마주세우는 균형의 의미를 넘어서는 심연이다.

동포, 동족, 형제로 비유되는 민족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북한과 남한이 섬뜩한 대칭으로 맞서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강력하게 환기한다. 이는 이성과 논리로 극복되는 의미론적 대립이 아니다. 이러한 대립과 대칭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인간 타락의 문학적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게 하는데 이 작품의 힘이 있는 걸로 보인다.

넌 네게 허리를 굽히는 모든 사람들의 존엄도 너와 똑 같은 것임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있어?”

작중인물 서재은이 김정은 암살 시도 직전에 김정은에게 하는 말 가운데 한 토막이다. 서재은은 결국 자기 총으로 자살하는 걸로 결말이 처리되어 있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단하는 이 행동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방법이다. 이 소설은 결국 타락한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통해,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독자는 처절한 암투와 권모술수, 그리고 개처럼죽어가는 인간군상의 피비린내와 성적 노예로 전락한 인간의 말로를 참고 견디면서 읽어 나가야 한다. 그 일은 얼마간의 성실성을 요하기도 한다. 독자의 이 성실한 독서는 이 작품이 남북한 통합문학사에서 어떤 자리에 놓일 것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제기하게 한다. 그 질문의 끝자락에 이 소설에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대칭이 극복되는 공간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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