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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토리가 싫습니다."

  • LV 4 북극곰
  • 조회 407
  • 2018.02.21 08:42

얼마 전에는 남한에 와서 알게 된 형님 벌 되시는 친지 한분이 오랜만에 지방에나 한번 다녀

오자고 전화가 왔었다. 마침 주말이라 쾌히 합의가 이루어지고 다음날 중낮이 될 쯤에 우리는

 즐거운 기분을 안고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승용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달렸는데 친지분이 이제 조금 가면 아는 집이 하나있는데

거기에 들려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잔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응했고 얼마 후 자동차는 큰

도로에서 벗어나더니 어느 외진 마을의 평범한 주택 마당가에서 멎어섰다. 

 

"자! 내리게" 라는 친지분의 말과 함께 나는 "여긴 뭐하는 집입니까?" 라고 물었다.  

"응, 이집이 도토리음식을 아주 잘하는 집이야. 그래서 나는 여기를 지날 때마다 들려서

점심을 먹고 가군 하네. 자 어서 들어가자구"

 

“도토리 음식”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신경이 곤두서고 그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

머리 속에서 꿈틀 거렸다. 차에서 내리려던 나는 차문도 도로 닫으며 "도토리 음식이라구요?

나는 싫습니다. 그냥 갑시다." 하고 내쏘았다.

 

의외의 나의 태도에 놀란 친지 분은 "아니 왜 그러나? 도토리 음식은 건강에도 좋고 ...또 이집

음식은 다른 집과는 달라. 자 빨리 들어가자구." 이 소리와 함께 벌써 주인집 마당에서는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고 주인아주머니의 반가워하는 인사말 소리가 뒤를 따랐다.

 

그러하니 내고집이 아무리 센들 어찌하랴 .., 나는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대충 인사를

나누고는 그들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오가는 웃음 섞인 말들과 함께 친지

분께서 사전에 연락을 해놓았었던지 빠르게도 요리들이 들어 왔다.

 

손님으로 따라 간 나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대접 앞에서 불편한 심기를 보일수도

없고 하여 할 수 없이 썩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여러 가지 도토리 요리들을 먹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모두 참 맛이 좋았다.

 

아마도 나를 데리고 간 친지 분보다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아니, 자네 아까는 도토리 음식이 싫다더니 이게 웬 일인가? " 하는 친지분의 농담도

귓등으로 흘러 보내면서... 또 내 입이 참으로 요사스럽다는 생각도 하면서 한마디의

말도 없이 도토리 음식들을 먹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그 도토리 음식들을 가슴속으로 울면서 먹었다.

 

나는 1950년대 초에 북한의 어느 외진 산골에서 평범한 뗏목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아버지가 임산 노동자여서 우리 집은 국가의 배급을 타먹는 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혼자 일을 하시다보니 집에서 아버지만 혼자 700그램의 배급을 타시고는,

우리 형제들과 신병으로 일을 못하시는 어머니는 모두 하루 300-400그램씩의 배급을

받았다.

 

그러니 항상 식량이 모자라서 우리 5형제는 배고픔에 허덕이었다. 봄철에는 몰래

산 밑이나 강둑을 뚜지고 옥수수나 감자를 조금씩 심어도 어떻게나 귀신 같이

아는지 안전원과 리 와 군의 간부들이 찾아 와서는 “정 그러면 다음 달부터는 배급을

자른다.”라고 호통치고 자본주의의 싹을 없애버린다며 커가는 농작물들을 짓밟아 버리군

했다.

 

해마다 우리 집은 할 수 없이 봄부터 여름 동안은 알곡 절반에 풀 절반으로 살았고

가을에는 어머니가 산에 가서 주어오신 도토리로 다음해 봄에 새 풀이 돋아날 때 까지

겨울을 지내군 했다.

 

가을에 주어온 도토리를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는 그것을 물에 며칠 우려낸

다음 강냉이 쌀과 도토리 쌀을 5:5로 섞어서 밥을 해 먹군 했었다. 그러나 그 도토리

마저도 많이 열리지 않는데다가 북한사람들 모두가 주어다 먹는 판이니 그것마저도

흔치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은 점심은 항상 굶다시피 했었다.

 

북한의 속담에 “개밥에 도토리 격”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굶주린 개도 제 밥그릇에

섞인 도토리만은 씁쓸해서 먹지 않고 골라낸다는 뜻에서 나온 말 일진데 어찌 짐승도

아닌 사람이 아무리 배가 고픈들 그것을 맛나게 먹을 수가 있었겠는가?

 

철없는 그 시절에 나는 도토리 밥이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려 매도 많이 맞았고,

어머니를 많이도 울렸다. 유년시절을 씁쓸한 도토리 밥으로 살아온 나는 그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자식들에게 만은 꼭 쌀밥을 배불리 먹이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 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무역부문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우리 한

가정에서만은 나의 결심이 실현되어 갔었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온 나라는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 을 요란히도 떠들어 대는 속에서도 수백 수천의 북한 인민들이 여전히

도토리도 없어서 지금도 굶어죽어 가고 있다.

 

나는 가을에 떨어진 도토리가 수북이 쌓여 그대로 썩어져가는 외국의 들판을 거닐 때

마다 항상 배가 고팠던 나의 유년시절과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나의 조국

북한을 생각하군 했다.

 

그 후에 나는 대한민국으로 왔고, “사람 못살 생지옥” 이라고 비웃던 바로 이 남한

땅에서 일생에 다시는 입에 대고 싶지도 않았던 그 도토리음식들을 맛나게 먹었던 것이다.

 

나는 도토리 음식들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해방 후 같은 시각에 출발선을 떠난 남과

북이 어찌하여 아래쪽은 너무 배가 불러서 도토리를 건강식품으로, 별식으로 먹을

정도로 되었으며, 위쪽은 도토리묵은 고사하고 생도토리마저도 없어서 민족이 굶어

죽어가는 나라로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는 결심했다. 내 살아생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제는 나의

자식들뿐만 아니라 북한 동포들 모두가 도토리를 건강식품으로, 특식으로 먹는

나라를 세우는데 나의 혼심을 다 바칠 것이라고.

 

또 생각했다.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 거의 모두가 도토리도 없어서 혹심한 굶주림에 가족들을 다

잃고 정든 고향을 눈물로 떠나온 인생들일진대 어이하여 가슴 쓰린 옛일들을 쉽게

잊고 하루하루를 허송세월 할 수 있을 테냐고...?

 

나는 그 집을 나오며 말했다.

"주인아주머니 저는 오늘 정말 저의 인생에서 제일 귀중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

탈북자 김태산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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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 guest 금나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런 일 겪었어요. 얼마전 하나원을 갓 나온 탈북여성들을 고급 산나물 식당으로 안내했는데 그들이 "우리 이런거나 먹자고 왔나"며 "고기사달라"고 말했어요. 한쪽으로 어이가 없었지요. 맘먹고 고른 풍경좋고 품질좋은 음식점에서 인상이 굳어진 신입탈북민들을 보니 저의 첫 입국시기를 떠올리게 했어요. 고기보다 비싼 음식점이었거든요. 저희는 정착 10년이 넘으니 고기를 되도록 먹지 않고 있는데 이들은 아직 처음이라 고기가 좋은가 봐요. 이들도 10년이 지나야 고기를 물리고 야채를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 한국에 처음 입국한 탈북민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웃지못할 장면이죠.
LV guest 필자
금나래님!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좋은 댓글 남겨 주심에 감사합니다.
LV 1 명랑옵퐈
도토리를 요리해 먹는 민족은 우리가 유일하다는군요. 전라도나 제주도에 생선 젓갈(썩은 듯 퀴퀴한데 풍미가 있어 저절로 침이 솟죠)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이런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외국인들은 버리는 것도 곧 잘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것을 보면, 늘 전쟁과 착취로 살아온 민족임이 느껴져 씁쓸한 웃음이 나옵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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